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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작가 Jun 19. 2024

저는 카카오톡이 없어요?

노발대발한 친구의 음성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0. 내 핸드폰에는 인스타그램이 없고, 유튜브가 없고, 넷플릭스가 없고, 지메일이 없고, 그리고 카카오톡이 없다.


1. 지메일까지는 그러려니 하다가, 카카오톡이 없다는 대목에서 인상이 찌푸려진다. “엥? 너무 불편할 것 같은데?” 맞다, 진짜 불편하다. 약속 시간을 급하게 변경하거나, 친구가 어디쯤 와있는지 알아야 할 때, 실시간 소통이 필요할 때 나는 먹먹한 투명 인간이 된다. 웬만한 인증은 카카오톡을 거쳐가야 하고, 카카오 페이로 받은 송금도 모바일 앱 없이는 받을 수 없다. 


2. 나는 매일 주중 오후 3시경 카카오톡을 PC로 한 번 확인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대통령이 아니고, 의사가 아니다. 나는 내가 하루 건너 결정한다고 해서 큰일이 날 인물이 되지 못했다.


3. 피씨가 없고, 길바닥에 있을 때, 그런데 꼭 카카오톡이 필요할 때, 그때 잠시 앱을 깔아 소정의 목적을 달성하고 이내 지운다. 인스타그램도 마찬가지다. 콘텐츠를 업데이트할 때 잠시 깔았다가 할 일이 끝나면 이내 바로 지운다.


4. 아주 귀찮다. 아주 귀찮다. 앱을 깔고 지우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 것도 아니다. 나는 이 앱이 내 핸드폰에 있음으로써 실시간으로 주의를 전환시키는데 탈진했을 뿐이다. 앱을 깔고 지우는 데는 5분이면 충분하지만, 별 목적 없이 앱을 확인하고 방황할 시간은 5분으로 될 턱이 없다.


5. 앱은 괴물이 아니다. 앱은 여러모로 편리하다. 앱의 효용가치와 무관하게, 나는 내가 앱을 사용하는 방법을 정했다.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어린 친구들은 카카오톡을 쓰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들을 따라 한 건 결코 아니다) 특정 앱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나도 써야 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6. 나는 현재에 머물 수 있는 방법을 부단히 찾는 인간이다. 그것이 앱을 지우는 일로 시작될 수 있다면, 기꺼이 불편함과 귀찮음을 감수할 수 있다. 나일이와 더 자주 새를 함께 보고, 인내심을 가지고 꾹꾹이를 교육할 시간을 확보한다. (나일이는 어디서 배웠는지 내 목 또는 얼굴에 꾹꾹이를 하는 편이다. 배에 할 수 있도록, 아니 목이랑 얼굴 빼고 아무 데나 할 수 있도록 교육 중이다.)


7. 그러던 어느 날 전화를 받았고, 노발대발한 친구의 음성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다음 편에)


어흥!


누나 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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