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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작가 Jun 19. 2024

주말에 폰을 꺼두는 싸가지 없는 인간에 대해

싸가지의 정의는 신비롭다

0. 내 친구는 내가 카카오톡을 지운 것에 대해, 내가 주말에 종종 핸드폰을 꺼두는 것에 대해, 내가 주중에도 4시간 넘게 연락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 노발대발했다. 그에게 나는 예의가 없고, 배려심이 없고, 정리하자면 싸가지가 없는 인간이었다.


ㅆㄱㅈ없는 나


1. 화는 신념이다. 나는 이 개념을 처음 알고는, 기뻐서 자리에서 일어나 콩콩 뛰었다. 어떤 것에 화가 난다는 것은, 그것도 노발대발 격하게 난다는 것은 어떤 것에 대한 <강한 신념>이 있는 것이다. 


2. 나는 한때 음식점에 갔는데 음식이 맛이 없으면 화가 나곤 했다. (물론 화를 내지는 않았다) 음식점 주인은 이토록 본인 생계에 책임감이 없을 수 있나? 이 화는 “생계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라는 내 강한 신념에서 잉태됐다. 하지만 그것은 진리인가, 나의 신념인가? 게다가 나는 음식점 주인의 생계 사정에 대해 하등 알지 못한다. 꼴값이다.


3. 내가 그의 신념을 가만히 듣고만 있자, 그는 갑자기 회유 모드에 돌입했다. 본인이 얼마나 나를 걱정했으며, 본인뿐만 아니라 내 가족이 걱정할까 염려했으며, (정작 내 가족은 포기한지 오래다) 남들에게 내가 싸가지가 없는 인간으로 비칠까 봐 두렵다는 것이다.


4. 나는 가만히 듣고 있는 동안 그런 생각을 했다. 남 걱정은 종종 상대를 향할 때보다 그 자신을 향할 때가 있다. 내가 죽었을까 걱정되는 것보다, 본인이 나를 통제권에 두지 못해 답답한 게 아니냐고 묻고 싶었다. 묻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금이야 옥이야 한 존재라면 내가 핸드폰을 끄는 이유가 궁금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다. 말하지 않았다.


5. 대신 나는 그를 위해 4시간마다 알림을 맞춰두고 예의 바른 연락을 취했다. 싸가지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이 사회에 발맞춰 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6. 8년도 더 된 일이다. 20대 뜨거움이 철철 흘렀을 때 일이다. 지금 내 주위에는 3시경 카톡을 하거나, 답답할 땐 문자를 남겨두는 사람만이 남아있다. 내가 카톡이 있든 말든, 전화기가 꺼져 있건 말건, 알아차리지도 못하거나 그러려니 있어주는 사람만이 남아있다. (귀한 소수의 친구들..)


내 친구들 사랑이야


7. 8년 후의 나는 뭐가 달라졌을까? 뜨거움이 증발한 걸까? 싸가지의 정의가 바뀐 걸까? 싸가지의 정의는 신비롭다. 오늘도 같이 밥을 먹는데 내 수저만 놓는 것에 대해 열난 토론을 했다. 같이 밥을 먹는데 내 수저만 놓는 것은 싸가지가 없는 것인가?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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