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작가 Jun 20. 2024

싸가지 없는 인간이 되는 가장 쉬운 방법

수저 놔주는 게 뭔 대수라고?

0. 싸가지 없는 인간이 되기는 참 쉽다. 같이 밥을 먹는데 딱! 내 수저만 놓으면 된다. 나는 이 문제로 몇 번 혼이 났고, 몇 번 대들다가 싸가지 없는 인간임을 증명했다. 


이미 수저 놓여진 레스토랑 가면 안 혼남


1. 싸가지의 기준은 신비롭다. 내 몸이 어느 문화권에 있느냐, 어느 시간대에 존재하느냐, 어떤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가에 따라 싸가지 바가지가 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2. 지금은 정성스럽게 수저를 대신 놓아준다.(노력은 한다만, 편한 상황에서는 왕왕 까먹고 왕왕 혼난다) 수저 밑에 왜 휴지를 깔아야 하는지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이게 문화고 예의?라니까 한다.


3. 하지만 내가 내 수저만 놓는 것에 대해 스스로 정당한 이유가 있다. 이를 몇 번이고 설명하려고 했지만, 변명같이 취급되거나 뇌의 구조가 참으로 신박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똑 부러지게 말을 못 하고 어버버 했던 내 탓도 크다. 앞으로 내가 할 얘기는 반사회적이고, 비상식적일 수 있음을 미리 말해둔다. 이를 견디지 못할 사람은 지금이 이 글을 떠날 완벽한 타이밍이다.


4. 나는 수저를 대신 놓아주는 게 비위생적이라고 느낀다. (아예 개인 수저 통을 목에 매고 다니지 그래?) 감기 바이러스는 손잡이, 테이블과 같은 표면에서 24시간 살아남는다. (얼씨구?) 바이러스는 주로 손이 눈을 접촉함으로써 전염된다. 오히려 코는 안전한 편이다. 코는 털도 있고, 비강이라 부르는 코안의 빈 공간 또한 강력한 세니타이저 역할을 한다. 하지만 눈은 직방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눈을 만진다. 그것도 많이 만진다. (나는 아닌데? 너도 그래) 특히 사람을 만나면 거의 무조건, 무의식적으로 눈을 만진다는 것을 밝힌 연구가 있다. (왜 그런지는 아직 연구 중이다) 상대가 감기에 걸리지 않았더라도, 상대의 손에 타인의 바이러스가 있을 확률은 꽤 현실적이다. (감기 강박 자인가 보다. 맞다.) 그래서 남이 내 식기를 만지고, 내가 그 식기를 만지고, 그 손으로 내 눈을 만졌을 때 전염 가능성 또한 비현실적인 드라마가 아니다. (비현실적인데?)


5. 정리하자면, 식기는 사람 손을 덜 타면 덜 탈수록 좋다. 바이러스를 100% 차단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을 씻는 것처럼, 내 식기는 내가 놓겠다는 거다. 그게 다다. “나는 딱 내 수저만 놓아야지! 그럼 상대가 기분이 나쁘겠지?”와 같은 의도가 있었을 리 만무하다. “남도 내가 식기를 만지는 걸 싫어하면 어쩌지?” 하는 내 나름의 미친 배려는 살아남지 못했다. 내 주변에 딱 3명의 사람만이 내 설명에 격하게 동의했다. (이번 글은 눈으로만 보고 따라 하지 마세요.)


6. 참고로, 동양권에서는 물리적인 청결에 대한 의식이 강한 반면 (침대에 신발 올리는 거 절대 못 참아), 서양권에서는 세균과 화학적 오염에 대한 우려가 더 큰 경향이 있다고 한다 (입 가리지 않고 재채기하는 거 절대 못 참아). 물론 개인마다 다르고 절대적인 차이는 아니다. 나는 이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묘한 위로를 받았다.


7. 내가 맞니, 네가 맞네를 따지는 건 논점이 아니다. 중요한 건 내 입장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야… 너는 어떻게 니 수저만 놓니? 그거 되게 예의 없는 거야.”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기겁해서 어버 버버 “수저 대신 놔주는 거 더러워…” 하게 된다. 우리에게 남는 건 싸가지와 정적이다. 내가 의아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종종 사용하는 방법은 궁금해하는 거다. (애정 하는 사람에게만 쓴다. 그 외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비꼬지 말고, “그럴 수 있지!”를 바탕으로 진짜 궁금해하는 거다. “우와, 수저는 왜 너만 놓는 거야? 나 궁금해!” (여기서는 상대가 편하게 자기 얘기를 할 수 있게 만드는 톤이 핵심이다.) 보통은 다 그들만의 이유가 있다. 나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세계가 뒤짚히는, 소스라치게 놀라운 이유를 들을 때 기쁘다.


8. 남이 내 수저를 놓아주지 않는 것이 엄청나게 불편하지 않다면, 그냥 내버려 두자. 남이 자기 수저 좀 놓아달라고 하면 그냥 놔주자. 수저 놔주는 게 뭔 대수라고? 식은 죽 먹기다.


누가 수저를 놓을 것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