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아프다는데 왜 상담 센터에 가라는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0. 나는 14년 차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 그동안 정확히 11명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다. 내 상담의 메인 주제는 <불안>이다. 불안을 느낄 이유가 하등 없는 경우에도 늘 불안한 상태, 스스로 심장 박동을 느낄 수 있는 두근거림이 있다.
1. 항불안제 약물 치료는 금방 그만두었지만, 그림을 이용하거나 여러 가지 이완 요법을 활용한 상담을 지속했다. 대면 상담뿐만 아니라 비대면이나 전화 상담도 이용했다. (전화가 은근 괜찮다. 대면 대비 비용도 저렴하고, 스스로도 놀랄 만큼 솔직해지기 쉽다.) 쉬어가는 기간도 있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제법 꼬박꼬박 받았다. 지금도 받고 있다.
2. 몸이 아픈 사람만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듯, 꼭 마음이 아프다고 상담을 받는 건 아니다. 마음이 힘들면 힘든 대로 받았고, 마음이 건강할 때도 나를,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받았다.
3. 불안 증상의 호전은 지옥스럽게 더디지만, 매 상담이 끝날 때마다 마음이 급격히, 한결 좋아졌다. 상담 비용으로 차라리 친구랑 맛있는 거 먹고 수다 떨어도 좋겠다는 생각에 미칠 정도로 편해졌다. 책으로도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수준에 오자, 철학, 심리학, 뇌과학, 양자역학, 영성 책을 게워내듯 읽었다. 그럼에도 상담은 전문가의 관점으로 개인적인 가이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족집게 속성 과외와 같다.
4. 길고 긴 과외를 통해 내 못 말리는 불안, 분노, 그리고 고집을 하나씩 헤쳐 분해할 수 있었다. 불안할 때 대처하는 방법, 분노를 이해하는 방법, 제대로 쉬는 방법, 타인과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 등을 체계적으로 배웠다. 학교에서는 알려주지 않았지만, 어떤 과목보다 중요한 삶의 정수를 배웠다.
5. 내 첫 상담 기억은 젊다. 내 학창 시절을 깡그리 바쳐 들어가게 된 꿈의 미국 대학교에서 나는 심장이 아팠다. 말이 안 됐다. 이렇게 훌륭한 환경에서, 뛰어난 친구들과, 아무런 걱정 없이 공부만 하면 되는 이 시점에서, 일상이 불편할 정도로 심장에 통증이 있었다. 급히 심장 검사를 받았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대신 학교 내에 있는 상담 센터에 가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6. 심장이 아프다는데 왜 상담 센터에 가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홀린 듯 그곳에 들어섰다. 설명할 수 없지만 문 하나를 두고 미세하게 존재했던 온도 차이, 새하얀 벽에 덕지덕지 붙여져있는 포스트들, 인위적으로 따뜻했던 주홍빛 조명. 그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다음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