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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작가 Jun 26. 2024

미국 심리 상담 센터에서의 충격적인 첫 경험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아니었다

0. 심장이 아프다는데, 심리 상담을 권유받았다. 황당했다. 내 첫 심리 상담은 미국 대학교 내 마련된 상담 센터에서 시작됐다.


1. 센터 문을 열었다. 문 하나를 두고 느껴지는 미묘한 온도 차이가 있었다. 새하얀 벽에는 형광색 포스트들이 덕지덕지 붙여져있었다. 인위적으로 따뜻했던 주홍빛 조명이 뇌 정중앙을 찔렀고, 나는 즉시 미간을 찌푸렸다. 학생 번호를 적고, 대기실에 앉았다. 고개를 푹 숙였다. 뒤통수가 뜨거웠다.


2.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아니었다. 나는 제때 수업에 가고, 성적도 좋았다. 운동도 하고, 춤도 추고, 학년 대표도 맡았다. 내가 심리 상담이 필요하다면, 영희도 철수도 필요하다. 걔네가 제일 필요하다. 어쨌건 나는 아니다. 나는 진짜 아니다.


3. 뒤통수로 대기실을 둘러봤다.


4. 내 또래 학교 친구들이 앉아 있었다. 다들 멀쩡하게 생겼다. 과제를 하고 있거나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없었다. 거기서 아는 친구를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이상했다. 요즘 본인이 어떤 주제로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있는지를 나누기까지 했다. 기이하고도, 경이로웠다.


5. 얼마나 경이로웠던지 14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조도, 온도, 습도, 냄새, 표정까지 선연하다. 상담 센터를 내 집처럼 드나들게 되면서 어쩌면 내가 미래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육체에 투자하는 것만큼, 정신에 투자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정신을 다시금 들여다보고, 대규모의 열린 대화를 나누고, 재평가하게 될 것이다.


6. 그리고 그 미래는 천천히 도래하고 있다. 우선 정신 건강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면서, 심리 상담의 문턱부터 낮아졌다. 정부에서도, 기업에서도 이례 없는 지원과 투자를 하고 있다. 주변에서도 어떻게 상담을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기 시작했고, 내가 뭐 하러 14년 동안이나 상담을 받는지 궁금해했다.


7. 물론 아직 더디다. 정신건강실태조사가 밝힌 한국의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은 12.1%(2021년) 정도다. 반면, 미국은 43.1%, 캐나다는 46.5%, 호주 34.9% 수준이다. 정신과 기록이 남느냐 마냐가 두려워 병원에 가길 꺼리거나, 정신 건강에 있어 쉬쉬하는 경향이 아예 없는 건 아닌 것이다.


8. 그럼에도 쉬쉬해도 좋고, 떠들어도 좋은 시대가 왔다. 몇몇 사람들이 떠들기 시작했고, 점점 많은 사람들이 떠들기 시작한 덕분이다. 그들 덕분에 나는 오른쪽 팔의 근육이 약한 편이라고 말하는 감각으로, 불안에 취약한 인간이라 말할 수 있다. 나도 기쁘게 소리를 보태본다.


정신보다 건강한 육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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