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혼혈의 선택은?
"박사님 집은 한일전 때 어디를 응원해요?"
어릴 적 아빠 회사의 송년 가족모임에서 들은 질문이다. 아빠는 허허 하고 웃어넘겼다. 엄마 역시 그저 미소를 지었다. 아저씨는 스스로 재치있는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신나보였다. 나는 그 아저씨가 다소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가족을 골리려는건가. 왜 저런 걸 물어보지?
내 머리 한 구석에 남겨둔 이 사건(?)에 대해 최근 엄마와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는 웃으면서 '그냥 궁금해서 그랬나 보지'라고 말했다. 엄마 말을 듣고보니 단순 호기심에 장난조로 그런 질문을 던질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어색한 분위기에 아이스브레이킹의 개념이랄까. 엄마는 낙천적인 성격이라 그런지 이런 일들에 대해 나보다 덜 민감하다. 하지만 뭔가 찝찝해. 어린 애도 아니고 왜 저런 질문을. 감정이 섞인 기억은 오래 남는다.
그런데 문득 나도 궁금증이 든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축구 경기에서 아빠 나라와 엄마 나라 중 누구를 응원할까? 당연히 개인차가 있겠지만 내 대답은 '글쎄...'이다. 스포츠 종목에 딱히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굳이 고르라면 한국을 더 응원하는 건 맞다. 나는 한국에 더 오래 살았기 때문에 한국이 내 나라라는 인식이 강하다. 축구경기를 봐도 내가 아는 선수는 한국인밖에 없기에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다.
하지만 어쨌든 한일전이 벌어진다고 하면 말수를 아끼게 된다. 정보도 적극적으로 탐색하지 않는다. 이유는 크게 둘인데, 하나는 피곤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일본에 대한 역사적 감정이 좋지 않기에 정보를 검색하다보면 갖가지 상스러운 말을 접하게 된다. 공연히 그 단어들을 확인하고 기분 나쁠 필요는 없다. 또 하나는 엄마한테 괜시리 미안해서이다. 엄마 성격상 별 생각 없겠지만, 딸이 한국 팀이 이기고 일본 팀이 지기를 열렬히 응원하며 휘파람을 분다면 섭섭하지 않을까. 내가 엄마라면 좀 슬플 거 같아서 그냥 '아 그렇구나'식으로 넘어간다. 애초에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게 다행인듯 싶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박사님 집은 한일전 때 어디를 응원해요?" 이 단순한 질문은 십수년 전 다문화 가정의 아이에게 부정적 감정을 남겼다. 지금에야 웃으며 생각할 수 있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한국에서 혼혈로 산다는 것(1) , 한국에서 혼혈로 산다는 것(2)과 같은 경험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이런 이슈에 예민해졌던 것이다. 보편적인 사람들과 다른 특징을 가진다는 것은 그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들기도 한다. 단순한 물음에 대해서도 그 저의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하지만 펭수 말마따나 '외로우면 특별한 별이 되지!' 하고 외치며 나쁜 생각을 떨쳐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