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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Jan 17. 2020

한국에서 혼혈로 산다는 것(2)

초딩들의 재판에서 낸 용기



어릴 적 혼혈이라는 이유로 날 놀렸던 오00에 이어, 김00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놀림'이라는 단어를 보자 그가 불현듯 떠올랐다. 고등학교에서 복학생으로 진학한 그와 조우했을 때도 기억이 나지 않던 사건이었는데. 왜 갑자기 기억이 떠오른걸까?



지금의 나는 사회 겁쟁이지만 초딩때는 꽤나 용기있는 소녀였다. 초딩 때 내가 일본 혼혈이라는 이유로 놀리는 급우들이 몇몇 있었다. 누군가는 곁눈질로 나를 흘끔흘끔 쳐다보았을테지만 김00이라는 친구는 달랐다. 워낙 목소리가 컸고 남자 애들 사이에서 꽤나 영향력 있는 아이었다. 내 어머니가 일본사람이라는 이유로 그는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고 나는 너무 슬펐다.



그 당시 담임 선생님은 반에서 꽤나 혁신적인 일들을 벌였다. '재판'도 그 중 하나였는데, 억울한 일을 당한 학우가 피고 학우를 재판에 회부하는 형식이었다. 재판 과정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회의시간에 교실에 있는 모든 친구들이 판사가 되어 사건을 판단했던 것 같다. 아무튼 나는 그를 재판에 올렸다. 그리고 예정일에 우리 반 친구들은 모두 교실에 모여 재판을 진행했다. 나는 '내가 혼혈이라는 이유로 그에게 모욕을 당했으며, 이는 분명한 그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상대도 목소리 높여 뭐라고 했던 거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결과는 그의 잘못으로 판단됐다. 땅땅땅! 나는 그 자리에서 그에게 사과를 받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우리는 모두 잘잘못을 가릴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는 일화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내가 재판 도중 감정이 북받쳐 울었다는 점이다. 재판장에서는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좋았을 것인데... 근데 뭐. 겨우 11살 아이가 어떻게 그 슬픔을 참을 수 있었을까.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항상 날 마음 조리게 만들었는데, 그런 공식석상(?)에 서니 더 눈물이 났나보다. 한편, 학생들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도록 유도한 담임선생님의 교육방식이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학급 친구들이 자신도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부당한 행동을 하지 않았는지 자발적으로 반성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물론 피고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은 금하셨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15년이 지난 지금은 자세히 생각도 안나는 일이지만 그 당시의 나에겐 매우 큰 이슈였다.



고등학생이 되어 그의 소식을 들었을 때 순수함을 많이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연히 마주쳤을 때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아마 그는 그 때의 일도, 나도 잘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상처 준 자들이 보통 그러하듯이. 그리고 부당함에 대해 용기를 내었던 과거의 소녀만이 그 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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