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잘 참고, 누군가는 안 참고도 그럭저럭 산다
지섭이는 한 달 전 건설회사에 취직이 되었다. 나이 서른. 엄마와 아빠에게 마지막 걱정을 떨치게 해 준 해당 회사와 문지섭에게 정말 깊은 감사함을 느낀다.
최종 면접에서의 광탈과 백수생활로 지친 문지섭은 지금 취업의 기쁨에 취해 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안전모를 쓰고, 회사 유니폼을 입고 있는 셀카를 가족 카톡 단체방에 가끔 보낸다. 지난 주말에는 명함 사진을 앞뒤로 찍어 보내왔다.
설비기사.
설비기사라고 쓴 문지섭의 명함을 가만히 보게 된다.
지섭이는 결국 아빠가 하던 일과 비슷한 일을 하게 되었다. 문선비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나. 삼십 년이 넘도록 전기 기사일을 하며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공부를 시켜서 키운 아빠의 아들은 아빠처럼 현장에 있게 되었다.
여름에는 해가 뜨겁고, 겨울에는 바람이 차가운 현장. 문지섭이 그 현장에서 앞으로 얼마나 자주 아빠를 떠올리게 될지를 상상한다.
건물을 짓고 있는 곳에서 전기 공사를 하려면, 일단 그곳에는 조명이 없다. 전기가 연결되지 않아 냉난방이 되지 않는다. 천장에 등이라도 달라고 하면, 사다리에 매달려 고개를 90도로 꺾은 자세를 유지하게 된다. 해가 뜨는 새벽부터 해가 지는 저녁까지, 아침 6시부터 저녁 일고 여덟 시까지. 난방이 없는 실내와 뜨겁거나 차가운 야외를 마른 몸으로 부지런히 오가며 일했을 아빠의 모습을 상상한다.
오늘처럼 겨울 날씨가 영하 15도가 되는 날에는 아빠를 떠올린다. 오늘 아빠가 출근을 하였을까. 현장에서 고생하는 아빠와 아빠의 동료들을 떠올린다. 그러면 나는 추워도 춥지가 않다. 내가 어떻게 춥다고 할 수가 있나. 나는 출퇴근길에만 잠깐 이렇게 떨면 되는데. 나는 하루 종일 난방이 잘 돌아가는 사무실에 앉아서 복닥거리기만 했는데.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는 아빠와 아저씨들은 열두 시간씩 잘 참고 일하는데, 나는 추워도 안 춥다, 안 춥다, 하고 있는데 콧물이 찍- 하고 흐른다.
먹고사는 일.
다들 잘 참고 산다. 오늘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나도 잘 참고 산다. 평소에는 잘 참고 어떤 날에는 많이 쓸쓸해하면서.
2018년 2월 5일 씀
-
라고 작년 겨울 이 일기를 쓰고 나서 문지섭은 3개월이 채 되지 않아 휴직을 했다. 그리고 또 곧 3개월이 지나지 않아 퇴사를 했다. 역시, 문지섭에게 조직 생활은 무리였다는 것을 문지섭도, 나도, 문선비도 알고 있었다. 문지섭은 자기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회사를 곧 구해서 억지로 잘랐던 머리도 다시 기르고, 역시나 억지로 잘랐던 콧수염과 턱수염도 풍족하게 기르고 산다.
먹고사는 일.
누군가는 안 참고 산다. 제 멋대로 살기도 한다. 안 참고도 그럭저럭 잘 산다. 먹고사는 일. 역시 정답은 없는 거지. 안 참고 잘 살아도 어떤 날에는 문득
많이 쓸쓸한 것도 비슷하겠지.
2019년 1월 2일 그림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