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하고 착한 우리 할머니

한때는 그녀도, 우리도 언젠가.

by 문인선


2014년 08월 그림_아줌마 시리즈 / 한때는 그녀도, 우리도 언젠가



지난 화요일에 할머니가

전세집 한 칸, 은반지 두개,

잃어버린 줄 알았던 손목시계, 증명사진, 옷,

가방, 그릇같은 살림살이,

마지막 몇개월간 사용하셨던 기저귀들을 놓고

잠들어 버리셨다.


마지막 두달간 바싹 말라버려

아기처럼 가벼웠던 할머니가 1인실 병원 침대에 누워계신 모습은

정말 잠이 든것처럼 보였다.


할머니, 하고 자꾸 부르면

사르르 눈을 뜨고는 베시시 웃어보일 것 같아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할머니가 이십년전에 미리

당신 수의를 마련해놓고

옷장 저위에 분홍 보자기로 싸서 올려두신 것은 모두들 알고 있었다.


빈소에서 수의를 꺼내기 위해

보자기를 열었을때

자식 며느리들 입으라고

흰 소복과 삼베 두루마기까지 해놓으신 것을 보고

이모도 엄마도 아빠도 언니들도

다시 한 번 울었다.


나는 슬플새가 없이 조문객에게 음식을 차렸고

음식이랑 음료수가 떨어지기전에 주문하고 영수증을 챙기고 오가며 심부름을 하느라 바빴다.

상을 치루던 3일은

명절 연휴에 고속도로 휴게소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처럼 바빴다.


이십년전에 맞추신 거죠?

제가 딱 보면 알아요.

이 수의가 이십년전에 유행하던 스타일이에요.


세월에 더 빳빳해진 수의를

힘들게 입히던 장례사 아저씨가 말했다.


장례사 아저씨는

틀니가 빠져 쏙 들어간 할머니의 입속에

천을 채워넣어주고

입 양꼬리를 손가락으로 들어올렸다.

눈썹을 엄지손가락으로 쓰윽 쓸어내려주었다.


그저께 병원 침대 위,

아파서 미간 주름이 잔뜩이던 할머니의 얼굴보다 좋아보였다.

눈썹도 웃는 모양,

입꼬리도 웃는 모양이 예뻐보였다.


장례사 아저씨께 고마운 마음이 들어

입관식이 끝나고 여러번

감사합니다,하고 말했다.


20150317



할머니를 하늘로 보내고 온

비일상적인 시간 속에 있다가

다시 출근버스, 매장 전화, 계약서가 반복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비워둔 시간만큼 산적한 일을 해치우느라 감정을 다독일 시간도 없이 하루하루가 휘몰아치듯 지나간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제대로 애도도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번 한 주는 퇴근 버스를 타면

할머니가 퍼뜩 떠올라 매번 급히 울음이 터진다.


퇴근 버스에 혼자 앉아

할머니를 위한 30분 애도를 한다.


똑똑하고 착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랑 큰아들 만나서 좋은 곳에서 따뜻하고 편히 지내세요.


2015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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