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일도, 나의일도 모두
생각해보면 모든 일이 가치롭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옛말은 그 의미 같다.
모든 직업에 귀하고 천한 것 없이 모두가 평등하다는 뜻인 줄 알았는데, 문득 ‘모든 일이 가치가 있다, 지금 너의 일이 가치있다’고 말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묘한 차이지만, 이전에는 ‘평등’만을 생각했는데, 오늘 퇴근 길에 갑자기 ‘직업소명, 동기부여’와 연관하여 생각하고 싶어졌다.
일단, 아빠의 일이 그렇다. 건물의 골격이나 시멘트 외벽만 있는 곳에서 아빠는 전기를 끌어와 빛을 만들어내는 전기 기술자다. 호주에 가면 큰 돈을 번다는 일렉트로닉 엔지니어다.
누군가에게는 ‘노가다’*라는 큰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일이다. 한 때 엄마가 가장 많이 쓰고, 또 여전히 종종 쓰는 ‘노가다’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일이다.
아빠는 자기 일을 좋아한다. 처음 일을 시작하던 청년 시절부터 그랬을까. 내가 중고등학생이던 그때부터 아빠가 자기 일을 좋아하는 것은 분명하다. 덥고 추운 한 여름, 한 겨울에도 아빠는 불평이나 불만을 한 일이 없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시원한 물에 샤워를 하고 나와 저녁밥을 먹는 그 순간마다 아빠는 한결같이 상쾌하고 개운한 모습이었다. ‘난 이렇게 샤워하고 나와서가 제일 기분이 좋아’ 하고 자주 말하고는 했다. 어떤 날에는 계획한 대로 아무런 사고 없이 일이 착착 처리되었다고, 또 아주 빠듯한 스케줄 안에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일을 마쳤다고, 그 날 저녁에는 큰 목소리로 정말 바쁘지만 신나는 하루였다고 말하고는 했으니까. 아빠는 당신의 일을 좋아하셨다. 지금도 그렇고.
또 주위의 일들, 뭐가 있을까.
재난을 대비하고 생존에 필요한 것을 가르치는 수영강사의 일이 가치 있다. 아픈 허리를 튼튼하게 하고 잠시라도 마음에 평화를 들게 하는 요가 강사의 일이 가치롭다. 지하철 기관사의 일이 가치 있고, 직원식당 영양사의 일이 가치 있다.
군자역 지하철 출구에서 호두과자를 굽는 긴 머리에 수염을 기른 총각의 일상이 가치 있다. 그는 호두과자를 미리 구워 두지 않고, 주문과 동시에 굽기 시작한다. 호두과자에 대한 그 소신이 가치 있다.
그렇지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그 사람들도 자기 일이 가치 있다 생각하지 못하고
지치고 지겹고 권태롭고 불만이지 않을까. 오늘의 나처럼.
바꿔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일기 속에서 나의 일도 가치있다고 여겨지지 않을까. 저 사람들처럼.
매일 동료들에게 치이고, 자잘하다 생각되는 반복 업무를 해치우는 일이 다른 시선으로 본다면 가치 있을지 모른다.
오랫동안 영업 업무만을 하던 내가 작년부터 영업부서를 지원하고 있는 이 일이,
이게 내 자리가 맞나? 하고 자꾸 나를 헷갈리게 하는 이 일이,
그래서 또다시 불평 불만 권태가 찾아 들게 하는 이 일이,
어쩌면, 어떤 의미에서 또는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분명 가치로울지 모른다.
내가 그 가치를 못 찾아서 그렇지,
가치를 못 찾고 있는 나의 어리석음 탓이지,
일 자체는 분명 가치로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최면
201805 #mooninsun
*노가다 (일본어]dokata[土方])
1. 행동과 성질이 거칠고 불량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2. ‘막일(1. 이것저것 가리지 아니하고 닥치는 대로 하는 노동)’의 잘못.
3. ‘막일꾼(막일을 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의 잘못.
아무래도 앞으로 ‘노가다’라는 단어는 쓰지 말아야겠다.
잘 그리겠다는 부담 갖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부지런히 그림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