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마흔에는 생각대로 살 수 있을 것인가

by 문인선
오랜만에 그림일기 참 못그렸다 201805 문인선



나도 마음만 먹으면 자리에 앉아 글을 퐁퐁 찍어내던 때가 있었다. 초중고등학교 때의 독후감이 그랬고, 백일장 대회 같은 것이 그랬다. 대학교에 가서는 학보사 일 년, 대학 잡지사에서 2년 정도 글을 쓰면서도 그랬다.

기사 같은 글은 정말 기계처럼 써 버릇해서 글이 멋도 없고 재미도 없었다. 그래도 한 꼭지당 1만원, 2만원씩 원고료를 주니까 A4용지 한 두장 짜리 정도는 머리를 굴려가며 퐁퐁 써냈다.

말하기보다도, 그림 그리기보다도 내 서른 평생에 제일 편안한 표현 매체는 글쓰기였다. 그걸로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서른넷의 나는 이제 한글이나 워드 프로그램을 열어놓고, A4용지 반장을 채우는 일이 버겁다.
이제 나는 출퇴근 길의 지하철 두정거장 거리, 딱 그 시간에 문득 드는 잠깐의 감상을 핸드폰 메모장에 적지 않으면 아무런 것도 쓸 수 없게 되었다. 감상이나 사고 또한 딱 그 잠깐의 시간 밖에 하지 못하게 되었다.

먹고 사는 일이 다시 완전히 지쳐버릴 때에는 나와 상반된 길을 걷고 있는 어떤 사람들을 떠올린다. 회사를 나와 동양화를 배우는 누군가, 일러스트레이터의 길을 시작한 누군가, 동화작가가 된 누군가, 프리랜서 자유기고가, 1인 출판사 대표 등 그들의 일상을 상상해본다.

내가 자신 없어서 선택하지 못한 길, 이제 부러워하지 않겠다고 철떡 같이 다짐하고 꽤 오래 잘 버텨왔는데도 어느 순간에는 바로 무너져 버린다. 소주 반 병쯤 취한 상태에서 누군가가 갑자기 ‘너 이거 지금 니가 원하는 거 아니잖아? 너 하고 싶은 거 있잖아. 그런데 지금 뭐하고 있어?’ 하고 말하는 순간, 아무런 방어도 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이 기분, 오랜만이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장바구니에 담아둔 원피스를 고민없이 결제하는 것, 아빠에게 명절이나 생일에 금강 구두를 사드리고, 엄마에게 정기적으로 서울 미용실로 나와 파마를 해드리는 것, 큰 마음 먹고 밍크 목도리나 코트를 사드리는 것, 마트에서 장을 볼 때 얼마가 나올지 두려워하지 않고 플라스틱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는 것.

이 안정된 일상이 내게는 가장 우선의 가치라 자신 있게 말해왔다. 모든 것이 더 안정적으로 견고해지면, 나는 그때 다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겠다고 자신 있게 말해왔다.
그리고 그 시간이 벌써 코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마흔에는 생각대로 살 수 있을 것인가.
내가 말해온 대로 살 수 있을 것인가.
왜 나는 오늘 쓰고, 지금 그리지 않는가.

20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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