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페인터, 앙리루소
A hommage to Henri Rouss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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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4년 프랑스,
앙리 루소는 함석공*의 자녀로 태어났다.
스무살, 지원병으로 육군에 입대했고 군악대에서 클라리넷 연주자로 근무했다.
4년후 스물넷,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의가사제대하고 파리에 머물렀다.
파리 세관에서 세관원*으로 일하며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평일에는 일하고, 주말에만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다 해서 사람들은 훗날 그를 ‘선데이 페인터’라고 부른다.
Sunday Painter
특별한 훈련없이 한가한 시간에 그림을 그리는 아마추어 화가
약간 틀어진 얼굴의 형태나 몸의 선, 그 왜곡된 비례가 오히려 독창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을 주어서 인상적이었다. 형광펜처럼 번쩍이는 생생한 색깔이 좋아서 십년 전, 반고흐만큼이나 좋아했던 앙리 루소가 선데이 페인터였다는 것을 얼마 전 잡지를 보다가 알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열병에 걸려 쩔쩔매던 스물셋에 알았으면, 지나간 내 선택들에 덜 괴로워하지 않았을까.
그때는 당장 그림을 그릴 수 없는 나의 용기를 탓했다. 부자 남편을 만날 수 없는 내 외모에도 원망을 해보았고, 가장 쉬운 남의 탓. 왜 우리 엄마 아빠는 나에게 돈을 대어줄 수 없는 걸까, 하는 생각도 수없이 했다. 휴학을 하고 집 앞 미술학원에서 매일 다섯 시간씩 그림을 배웠고, 복학한 지 1년만에 졸업을 앞두고 미술관에서 3개월간 인턴을 했다. 졸업 전, 구직준비를 못한 탓에 졸업 후 5개월간의 백수 시절도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용기와 재능, 광기가 부족한 나의 탓으로 깨끗하게 체념하고 회사에 들어왔다. 그래놓고도 술에 취하면 비겁하게 다음 생에는 부자로 태어나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주정을 종종하고는 했다. 돈을 벌면서도,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다는 자기비애에 빠져 자주 헛헛해했다. 회사생활이 바닥을 치던 4년차에 다시 노트를 열어 그림을 그렸다. 실은 아직도 그림이라기에는 부끄러운 낙서 같은 것들.
그 소재는 주로 회사생활에서 느끼는 감상이 되었다. 누군가의 비난, 스스로의 좌절, 동료와의 문제, 출근 길 노숙자와의 만남, 회식 후 취중 이런저런 감상. 아빠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의 사수라면 어떻게 했을까.
회사 생활, 출퇴근길에 느끼는 감상을 적어 그림을 그린다.
물론, 어린이대공원 산책을 하며 저 좁은 우리 안에 있는 코끼리와 원숭이, 바다사자의 기분을 그리고 싶을 때도 있다.
해가 빨갛고 꺼뭇하게 지며 높은 빌딩 옥상 뒤로 불처럼 빛나는 장면을 그리고 싶을 때도 많다.
비가 쏟아지는 여름에는 횡단보도에 물이 떨어져 튀어 오르는 모습. 늦은 퇴근 길의 까만 밤, 도로에 꽉 찬 자동차들의 앞뒤 헤드라이트가 화려하게 번쩍이는 모습을 그리고 싶다. 산등성이에 또렷하게 보이는 소나무를 가지까지 그리고 싶고, 바닷물이 꽉 차올랐다 쓸려 내려간 갯벌 위의 바싹 말라 죽어버린 불가사리를 그리고도 싶다.
그리고 싶은 것을 더 완벽하게 그리고 싶고,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에 주저없이 바로 그리고 싶다. 좀더 능숙해지고 싶다. 그러면 또다시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지금의 생활에 반감을 갖고, 스스로를 불쌍해 하게 된다.
그런 요즘, 십년 만에 앙리 루소가 나타났다.
나는 선데이 페인터였다고. 나도 평일에는 세관원으로 쏟아지는 여행객들의 캐리어와 화물을 검사하는 공무원이었다고. 매일 사람들의 가방을 열었다 닫는 지루한 생활, 반복되는 일상을 지냈다고.
일요일마다 그림을 그리고, 마흔한살 첫 출품을 시작으로 매해 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했던 꾸준함. 쉰에 가까운 나이까지 24년간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그의 성실함.
못 배운 그림이 어때서. 그림을 꾸준히 배우지 못하는 것이 뭐 어때서. 특별한 훈련을 받지 못한 것이 뭐 어때서.
나도 이제 주말에 밀린 드라마를 보며 누워있지만 말아야지, 성실하게 일하고 꾸준하게 쓰고 그리며 나아가야지. 못 배운 그림 꾸준히 그리면서 이 안전하고 평화로운 일상에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겠다고
오랜만에 일요일 늦은 점심이 되고서야 부지런을 떨어본다.
201804 쓰고 201806 그림
*함석공: 전문적인 기술을 가지고 얇은 금속판이나 함석을 이용하여 물건을 만드는 사람
*세관원: 공항ㆍ항구ㆍ국경 지대에서, 여행하는 사람들의 소지품이나 수출입 화물에 대하여 검사ㆍ허가ㆍ관세 사무를 맡아보는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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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그리겠다는 부담 갖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그림일기 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