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세 미술관 특별전; 제임스 티소, 애매한 모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파리의 미술관들은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으며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으나 여전히 관객들을 맞이하지 못한 전시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파리의 이동 금지령이 시작되는 주에 개관하기로 되어있던 제임스 티소 오르세 특별전이 그중 하나이다. 샌프란시스코의 파인아트 뮤지엄에서 지난 2월까지 선보였던 전시로,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3월 24일에서 7월 19일까지 열린다. 어쩌면 늘 여행자로 가득했던 오르세에서 파리지앙들만을 위한 전시로 끝날 지도 모른다는 슬픈 예감이 든다.
제임스 티소는 인상주의 미술관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오르세의 상설전에 몇 점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애매한 모던'이라는 전시의 제목처럼 인상주의 시기에 굉장히 애매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화가이다. 전통적인 아카데미 화가로 분류하기에는 그가 다루었던 소재들이 지극히 동시대적이었고, 인상주의 혹은 모던 화가로 분류하기에는 그의 스타일이 너무나 고전적이었다. 전통적인 초상화나 역사화에나 어울릴법한 테크닉으로 그가 그린 대상은 일상적인 사람들의 취미생활이나 신흥 부르주아들의 일상, 집안의 여인 초상 등이었으니 말이다. 당시 파리에서는 보들레르의 '모던한 삶의 화가'에 걸맞은 마네와 드가식의 스타일이 예술계의 아방가르드로 이해되고 있었다. 급변하는 삶의 속도를 포착하기 위한 현대적인 마네와 드가의 방식은 동료 예술가들의 지침이 되고 있었다. 이런 유행 속에서 티소의 그림은 일견 고루하고 보수적인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완벽한 회화적 테크닉만은 모두의 감탄을 불러일으켰으리라 짐작해본다.
1. 파리의 모던한 삶
1864년 티소는 살롱에서 아래의 초상화를 선보였다. 거대한 캔버스에 그려진 동시대 신흥 부르주아 집안의 소녀. 흰색, 빨간색, 검은색이라는 파격적인 색상대비와 옷 장식, 화려한 벽지의 패턴과 의자의 디자인까지. 패션과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오르세에서 이 그림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이미 그는 20대 후반부터 섬세한 데생과 대조적인 색상의 사용, 벽지와 사물에서 볼 수 있는 치밀한 관찰과 완벽한 마무리라는 스타일을 완성했다. 당대 유행하던 복식과 취미, 집안의 인테리어를 그대로 재현해 내,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이런 질감에 대한 섬세한 표현의 시작은 모자가게와 직물상을 하던 부모에게서 자란 영향이었을 것이다.
혁명적이지는 않은 혁신가.
그의 이런 위치는 당연히 동시대 댄디와 부르주아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과거의 귀족은 아니지만, 그 귀족들의 삶의 양식을 답습하고 싶은 새로운 지배계급의 취미에 한없이 잘 조응하는 작품들은 이미 30대 초반의 티소를 성공가도에 올려놓았다.
2. 런던의 이방인
1870년 보불전쟁이 끝난 직후, 티소는 런던으로 이주한다. 화가로서의 새로운 경력을 시작해보고 싶었던 그는 빅토리아식 귀족사회에 안정적으로 흡수된다. 엄청난 초상화를 의뢰받았고, 실제로 친구였던 드가가 그 소문을 듣고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대체 얼마를 벌었는가 친구' 하고 말이다. 모자와 의상 직물을 팔던 부모뿐 아니라 어릴 적 나고 자란 -쥘 베른의 도시로 알려진- 낭트의 항구 풍경은 고스란히 그의 작품에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어린 시절 보았던 항구의 풍경은 템즈강이라는 이름으로 그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었다.
강에 정박된 화물선들, 산업사회를 상징하는 뿌연 매연, 그 강가에서 뱃놀이를 하는 잘 차려입은 군인과 여인들. 변화하는 런던 사회와 그 안에 여전히 남아있는 전통이 프랑스에서 온 외국인의 눈에 비친 모습이었다. 아마 제임스 티소라는 화가의 이름은 모를지라도 낯익은 그림들은 다 이 시기에 그려진 것들이다. 우아한 몸짓과 옷차림으로 사교를 즐기는 사람들의 한가한 모습. 반복적인 주제들 안에서 이루어진 구도의 변주들, 유연한 공간 구성이 돋보인다.
템즈강 시리즈와 더불어 공원의 피크닉도 이 시기의 티소가 반복해서 그린 소재였다. 휴일 공원에서 한가로이 티타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인물의 내면보다는 눈으로 보이는 시각적인 풍경에 더 주목하고 있었던 티소의 관심사를 보여준다. 실제로 그의 그림에서 정치색이나 주제의식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그의 그림은 정확히 보들레르의 '덧없는 순간'을 보여준다. 마네와 드가가 그랬던 것처럼.
이방인의 눈으로 본 런던의 순간.
그의 런던 시기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은 카트린이라는 티소의 유일한 뮤즈이다. 23세의 이혼녀인 카트린과 사랑에 빠져 이 여인만을 그리는데, '정원의 벤치'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카트린과 그녀의 아이들이다. 만난 지 5년 만에 그녀는 결핵으로 죽게 되고, 그녀의 죽음을 계기로 티소는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3. 신비주의자
카트린의 죽음 이후 티소는 당시 유럽에 유행하던 신비주의와 심령술에 심취하게 된다. 보수적인 가톨릭 전통에서 자란 그는 자신의 신앙에 이 신비주의를 결합시키게 되고, 마침내 자신의 예술가적인 마지막 사명으로 예수의 세계를 그리겠노라 선언한다. 인생의 말년 3번의 팔레스타인 성지순례를 떠나게 되고, 그렇게 그려진 예수의 생애 시리즈를 발표한다. 이제까지의 제임스 티소의 그림에 이미 익숙해진 사람들이라면 놀랄만한 '영적인 그림'들을 그리게 된다.
그의 신비주의는 예수의 모습을 당대의 인물이 아닌 '성스러운' '신비스러운 형상'으로 재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팔레스타인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풍속과 풍경, 의상은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자신의 시대에 미술사의 주류 장르에 편입되지 않고 경계를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했던 제임스 티소라는 화가의 다양한 얼굴은 여전히 매력적인 볼거리가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