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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산균 Dec 11. 2019

아웃사이더 아트? 인사이더 아트?  

두아니에 루소에서 세라핀까지 @파리 마이욜 미술관

미술사의 거대 담론에서 밀려나있던 잘 알려지지 않은 나이브 아트( art naÏf 소박파)의 세계를 정리, 소개하는 전시가 파리에서 열리고 있다. 나이브 아트를 '소박파'라고 번역하여 소개하곤 하는데, 이미 미술사에 존재하는 원시주의와 구분하기 위한 번역어인듯하다. 사실 '소박하다'가 의미하는 바가 좀 모호한데, 그림의 결과물이 소박하다는 뜻일 수도 있고 사용한 매체가 별거 없다는 뜻일 수도있을 것이고,  아카데미 화파의 화려함과의 대조일수도 있겠다. 여튼 소박이라는 중의적인 번역어보다는 나이브아트라는 원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더 좋을것 같다. 미술사에서조차 이들을 설명할 만한 합의된 정의는 없지만, 보통 직업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닌,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이들을 나이브 아트로 분류한다. 주중에는 자신의 직업에 맞춰 노동을 하고 남는 시간에 그림을 그린다는 뜻으로 일요일의 화가라는 말은 이미 존재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고갱같은 인물. 더 올라가면 외교관이었던 루벤스도 일요일의 화가가 아니었을까?  어쨌든 이 모든 설명의 결론은 이들을 하나의 사조와 형식으로 묶을 만한 어떤 근거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동시대에 활동했지만 (주로 1890년대부터 1930년대) 서로 교류하거나 친분이 있었던 경우도 없었다. 


이 전시에서 소개하는 화가들은 '다행히' 뒤늦게라도 자신을 알아봐주는 콜렉터들에 의해 미술시장에 진입하게 되었고, 비록 생전에 그림을 생계를 유지하지는 못했더라고 이렇게 자신들의 작품을 남기게 되었다. 덕분에 화가는 자신의 이름으로 호명되기 보다, 후원자의 이름을 거쳐 '재호명'되곤 한다. 피카소의 두아니에라거나, 르 코르뷔지에의 앙드레 보샹이라는 식으로. 그래서 전시장의 시작은 이들의 후원자 혹은 콜렉터들을 예술가와 같은 중요도로 소개한다. 


콜렉터 디나가 후원했던, 아직은 화가가 아니었던 화가들. 



전통적인 회화가 생산했던 장르(정물화, 인물화, 풍경화)를 전혀 다른 분위기로 그려내는 이들은 그들이 살던 동시대에는 아방가르드로 취급 되었을 법하다. 원근법이 고안되기 전인 르네상스 이전의 그림처럼, 그러나 일부러 없앤 게 아닌 원근법과 규칙에 무지한 채로 의식하지 않은 작품들은 정말 아이들의 그림같다.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지 않아도 되어 느긋해진다.


이러한 작품들이 콜렉터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완벽한 기술에 대한 시대의 강박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가만히 들여다 보면 모더니즘의 시작과 함께한 유럽의 주류 예술계의 균열, 세계 대전이 가져온 인간 소외와 산업화의 분위기가 그림 곳곳에서 느껴진다. 기계적인 재생산 시스템이 시각적인 상상력에 가져온 변화도 알아볼 수 있다. 변화하는 외부 세계에 직면한 인간을 ‘초현실주의’의 탈주가 아닌 ‘일상에 대한 천착’의 시선으로 보여준다는 점이 오히려 그들의 작업을 아마추어적이고 소박한 사적 작업으로만 취급할 수 없는 이유이다.


전시에서는 정말 대규모의 콜렉션을 선보이고 있는데, 특히 개인적으로는 잘 몰랐던 이름을 발견해내는 재미가 있었다. 


사진은 비록 흔들렸으나 공간 장식이 맘에 들어서 첨부


세관원이었던 앙리 두아니에 루소의 작업을 한번에 다양하게 볼 수 있고, 파리의 식물원 방문 후 상상으로 만든 이국적 풍경은 물론 인물화에 이르기까지. 루소를 좋아하는 이들을 감동시킬만한 콜렉션이 준비되어 있다. 

파리의 엽서 일러스트같은 루이 비뱅의 작업이 맘에 들었고, 기괴한 정물화와 과장된 인물들을 선보이는 카미유 봉보아(camille Bombois)는 반가운 발견이었다. 장 이브가 그린 식탁은 아카데미가 그렸던 교훈을 보여주는 장치가 아닌, 퇴근후 앉아 식사를 하는 진짜 밥상이다. 도미니크 페이로네가 그린 바다와 하늘은 사진과는 다른 회화만이 줄수 있는 '손맛'을 느끼게 해주었다.단순화된 선과 색은 오히려 자연앞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감정과 맞닿아있다. 앙드레 보샹(andré bauchant)같은 화가는 상상력이 가미된 원시 자연의 세계를 표현한다. 잃어버린 파라다이스를 보여주는 그의 작업은 나중에 자연도감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앙드레 보샹이 푸줏간, 
장 이브의 굴과 정물
페이로네의 바다 그림들
봉보아의 이상한 나라의 재미나게 생긴 인물들
루이 비뱅의 사냥. 동물들의 자세와 움직임. 간결하고 힘있다. 


르네 랭베르의 구름과 집들 그림


영화로도 만들어진 루이즈 세라핀의 작업의 물질성이 인상적이었다. 작품의 사이즈는 벽의 반이상을 차지하고, 하녀의 신분에 재료를 살 돈이 없는 그녀가 누구에게나 공평한 자연의 영감을 받아, 자연의 재료와 푸줏간의 동물피, 성당의 호롱불 기름으로 그려낸 작품들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듯한 그로테스크한 강렬함을 뿜는다. 



거대한 신전같은 미술관에 놓인 '스펙타클함'을 따라잡을 수는 없겠지만, 정직한 노동과 일상의 관찰이 담긴 이 작품들을 한눈에 보고나니 오랜만에 눈이 피로하지 않은 전시를 보았다 싶었다. 그리하여, 자신의 업이라 믿는 그 일을 꿋꿋하고 소박하게 해나가는 그들에게 경례를…




전시는 2019년 9월 11일에서 2020년 2월 23일까지, 파리 마이욜 미술관에서 열린다. 

https://www.museemaillol.com/fr/douanier-rousseau-serap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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