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메르쇼이(Vilhelm Hammershøi, 1864-1916)
나는 항상 아무도 없는 방일지라도 방 자체가 가진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방에 아무도 없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던 덴마크 화가 함메르쇼이(Vilhelm Hammershøi, 1864-1916)의 작품 40여 점을 작년에 자크마르 앙드레에서 한 번에 볼 기회가 있었다. 북유럽 회화 특유의 차분한 색조와 작은 판형에서도 느껴지는 깊이 있는 공간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고요하게 머리를 비우고 싶을 때 보면 좋을만한 작품들이다. 테크닉적으로 뛰어나다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 사람을 끌어들이는 공간.
처음 볼 땐, 그게 그거 같은 세트장에서 조금씩 카메라 앵글만 바꾼듯한 단조로운 그림이지만 아주 작은 변주- 문을 다 닫고 그린 것, 하나만 닫고 그린 것, 문고리를 그린 것 안 그린 것 등등-를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그림을 위해 집안의 장식을 다 배치하고 아내의 위치를 직접 정했다고 한다.(윽!) 상복 같아 보이는 옷차림, 모노톤의 집안 색조를 통해 금욕주의적 프로테스탄트가 주를 이루었던 북유럽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림의 인상으로는 뭔가 고요하고 강박적이고 내성적일 것 같은데, 예상과는 달리 아내와 여행을 자주 다니고 (여행에서 본 풍경 전혀 안 그렸음!) 그 당시 가장 힙했던 파리의 미술계에서도 잠깐 활동하고, 네덜란드의 그림을 배우러도 갔던 열정적(?)이었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파리의 다이내믹한 예술계가 그의 그림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아마 외부세계의 영향보다 내면세계의 에너지와 호기심이 더 컸던 사람이었을 것 같다.
윗동네 특유의 금욕적인 분위기와 옷차림이 눈에 띈다. <다섯 명의 초상화> 같은 그림은 친구들의 사교 모임을 그린 건데 거의 장례식 분위기처럼 보인다. 인물들이 그림을 위해 포즈를 취했다기보다는 연극의 한 장면을 재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구둣 발바닥이 그림의 전경에 떡하니 있는 과감한 구도를 시도했다.
베르미어와 호퍼의 20세기 초 덴마크 버전이라고 할 만한 연관성들이 눈에 보인다. 예를 들어 창문을 통해 실내의 빛을 이용하는 방식(아마 네덜란드 시절의 영향인듯하고), 수직과 수평의 틀을 이용해서 공간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 공간을 보이는 대로 모방하고 있기보다는, 철저하게 재구성하고 있다는 점등이 다른 시대와 공간을 살았던 세 화가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베르미어의 실내공간에 비해서는 간소하다 못해 썰렁하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호퍼의 그림에 비해서는 외롭지 않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그림을 하나 꼽으라면, 이 작품. 아무도 없는 공간의 아름다움. 함메르쇼이의 의도를 가장 잘 반영한 듯 보이는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