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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산균 Oct 05. 2020

루이 수테르, <전조 un présage>

손가락 회화 시리즈 @ 카스텐 그레브 갤러리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마레의 골목길을 걷다 만난 루이 수테르(스위스, 1871-1942)의 말년 작품들은 흐린 회색의 날씨와 잘 어울린다. 갤러리 카스텐 그레브에서는 ‘전조’라는 제목으로 그의 1937년부터 죽은 해인 1942년도까지의 데생과 페인팅을 소개하고 있다.


20세기 초 스위스의 위대한 모던화가의 반열에 오른 루이 수테르는 그 자신의 이름보다는 그를 세상에 소개한 장 지오노 같은 작가, 화가이자 컬렉터인 발로통 형제, 건축가이자 수테르의 사촌이기도 했던 르 코르뷔지에를 경유해 알려져있다. 어려서부터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건축가로 일하다가 바이올리니스트로 전향했다는 점만 보아도 그는 사실 늘 예술계 속에 살아가던 사람이었다.


화가로서의 수테르의 시작은 어린 시절 연습장에 그렸던 그림들이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작품들을 연상시키는 초기의 작품들, 형상에 주목한 중기 작품들은 기술적으로는 뛰어나지만 아직 수테르만의 개성과 스타일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이런 이유로 화가로서의 수테르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번 전시는 말년의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때에 말로 수테르만의 화가로서의 스타일이 완성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어느 화가에게나 말년의 작품은 그의 예술세계가 가장 정점에 달한, 화가 자신은 알지 못했으나 세상에 내놓은 유서같은 역할을 한다. 특히 수테르의 이번 전시에 모여있는 작품들은 ‘손가락’에 잉크를 묻혀 그린 그림들이라는 점에서 좀 특별하다.


그가 활동하던 1.2차 세계대전 시기의 미술계는 데생과 회화의 경계, 모노크롬과 색채화의 경계가 분명했던 시대였다. 그는 이 경계를 비켜가고 있다. 검은 윤곽만이 보이는 마치 그림자와 같은 인물들은 모노크롬의 일부처럼 보이고, 마치 그들이 감옥에 있는 듯 보이는 철창의 격자와 성화에서 볼 수 있는 후광, 인물을 비켜나 있는 오브제들에서 보이는 강렬한 원색은 색채화에 걸쳐있다.


전쟁이 가져온 비극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시기에 사지가 어디엔가 묶여있는 듯 보이는 인물들의 모습은 처연하다. 이 주제를 관통하고 있는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모습도 영적이고 신비롭기보다는 메달린 신체덩어리로 표현된다. 그리스도의 몸을 검은 손가락으로 그리고, 그 위에 붉은 피를 덧바르며 신체를 만지는 과정은 신체와 정신의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전쟁기였던 말년에는 요양원에서 관절염과 손가락 변형을 겪으면서도 그림을 그렸고, 그렇게 홀로 쓸쓸하게 삶을 마감했다. 그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45년 장 뒤뷔페가 기획했던 <아르브뤼>전시에서 였다. 따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미술계에 속하지 않았던 화가들의 작품을 모아놓은 이 자리에서 뒤뷔페는 거칠고 투박한 수테르의 작품을 소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예술계에 있던 사람임을 강조하며 정확히 아르 브뤼의 작가로 규정할 수는 없음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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