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예약제로, 사랑은 자유롭게
평일 오후 1시부터 5시. 별 일이 없다면 이 시간은 우리 부부가 함께 집에 있는 시간이다. 오전에 각자 시간을 보내고 점심까지 따로 먹는데도 무려 4시간을 매일 둘이서만 있다. 부부가 모두 휴직을 하고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면서 생긴 시간이다.
"둘이 그 긴 시간을 얼굴 보고 앉아서 뭐 해? 아직도 그렇게 좋아?"
지인들은 우리가 애정에 불타서 그 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 줄 안다. 그럴 리가. 우리는 연애 기간 5년에 결혼 5년 차 커플이다. 한 마디로 서로 옆에 둔 지 엄청 오래됐다. 좋기야 하지만 막 불탈 정도는 아닌데 '그렇게나 좋다'라고 표현할 순 없다. 그럼에도 나는 말없이 빙긋 웃는 쪽을 택한다. 부부 사이의 온도는 날마다 다르고 그 기온차는 우리만 알아도 충분해서다. 그러거나 말거나 웃는 반응은 상당히 모호한 것이어서 결국 우리는 잉꼬부부가 되어버린다. 좋을 때다, 하는 반응과 함께.
비밀에 싸인 우리의 4시간은 사실 건조하고 조용한 분위기다. 대화는 별로 없고 각자 할 일을 하느라 바쁘다. 보통 남편은 책을 보거나 유튜브 영상을 보고 나는 글을 쓰거나 육아 정보를 찾는다. 내 책상과 공용 컴퓨터가 모두 안방에 있기 때문에 가끔 둘이 한 방에서, 같은 방향을 보고 앉아있을 때도 있다. 그럴 때도 타닥타닥 타자 소리, 휘잉 에어컨 소리만 날 뿐이다. 함께하는 4시간은 사실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기보다 각자 자기 계발에 몰두하는 시간인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서로 얼굴을 보고 있는데 정말 대화 한마디 없을까. 간혹 얘기는 한다. 다만 대화를 하려면 상대에게 "혹시 지금 잠깐 시간 돼?" 하고 물어야 한다. 그리고 상대가 지금 집중 중이라 어렵다고 하면 다음에 이야기한다. 거절하는 입장에서는 언제 대화가 가능한지 말해주는 게 매너다. 육아 상황이 아닐 때 상대의 시간을 최대한 존중하는 게 우리만의 룰이기 때문이다. 대화할 시간을 조율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보통 말을 거는 쪽은 나기에 답답한 부분도 없지 않다. 특히 육아와 관련해 당장 의견을 나누고 싶은 게 있는데 남편이 이따 얘기하자고 막아버리면 얘기할 내용을 계속 생각하고 있어야 해서 불편하다. 그래도 기다릴 수 있는 이유는 부부 모두가 준비된 상태에서 하는 대화가 대게 치유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배려받았으니 잘 들어보기로 마음먹는 청자'와 '그동안 말할 거리를 조리 있게 정리해 둔 화자'의 만남인 셈이다. 좋게 포장해 봤지만 이 역시 수많은 대화를 통해 합의된 방향이고 서로 받아들이는 데 진통이 좀 있었다. 아무튼 그건 과거의 이야기고, 막상 해보니 편한 부분도 많아서 이제는 서로 만족도가 높다.
준비된 청자와 화자는 어떤 대화를 하는가. 최근엔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부모가 되고 나면 자녀들에게 원인을 알 수 없는 미안함을 갖게 된다. 내가 첫째에게 갖고 있는 죄책감은 좀 더 크게 낳아주지 못했다는 거였다. 첫째는 남자아이에다가 달수를 다 채워 낳았는데도 2.67kg 밖에 안 됐다. (2.5kg 미만의 아이는 저체중으로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 다행히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지만 이후 성장할 때도 늘 성장 백분위가 앞 쪽에 있었다. 구체적인 숫자를 들먹이지 않아도 작은 아이인 것은 계속 티가 났다. 2년 뒤에 태어난 동생보다 뱃구레가 작아 조금씩 먹었고 날씬하게 컸다. 결정적으로 또래랑 있을 때는 유독 작아 보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엄마의 입장에선 마음이 영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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