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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언니, 언니

미워하고, 존경하는

by 미지의 세계

유독 입에 잘 붙지 않는 단어가 있다. 나에겐 그게 언니, 오빠다. 친가와 외가를 다 합쳐 가장 먼저 태어난 아이다 보니 누군가에게 "언니", "오빠" 하고 부를 일이 없었다. 그래서 챙겨주는 오빠들한테 그렇게 쉽게 마음을 빼앗겼나. 긴장인지 호감인지 모를 두근거림을 느끼면 상대는 자상하게 내 기분을 살펴주곤 했다. 그 중 한 '오빠'와 결혼했는데, 결혼 후에도 어쩐지 '오빠'란 말은 잘 쓰지 않게 된다. 좋을 땐 '여보', 나쁠 땐 '누구 씨', '어이'라고 불러서다.


반면에 언니는, 시작은 오빠처럼 어색했으나, 갈수록 입에 착착 붙어가는 중이다. 여고와 여대, 그리고 여초 집단인 아나운서 지망생과 오전 수영 강습반을 거치면서 주변에 자연스럽게 언니들이 많아졌다. 물론 시절마다 언니에 대한 인상은 아예 다르다. 어떤 언니는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것 같고, 어떤 언니는 지금도 고맙다. 어떤 언니는 자꾸 엄마를 생각나게 한다. 오빠는 설레고 기대고 싶었던 정도의 인상이라면, 언니는 좋아하고 미워하며 사랑하고 또 존경도 하는, 훨씬 복잡한 인상의 인물들이다. 그래서 후자에 대해 더 많은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대학 시절 교내 방송국 동아리에선 선배들을 전부 "언니"라고 부르는 문화가 있었다. 선후배 간에 생길 수 있는 위화감을 줄이고, 빨리 친해져서 동아리 생활을 잘해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그곳은 선배가 들락거릴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는 곳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선배들을 '언니'라고 부르는 것은 오히려 팍팍한 분위기를 더욱 조성할 뿐이었다. 게다가 재수를 해서 또래보다 한 학번 늦게 들어간지라, 심지어 나보다 생일도 느린 바로 윗 기수 선배들을 언니라고 하는 게 영 어색했다. 선배들 이름 자체가 그냥 언니다, 생각하고 나서야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을 언니라고 부르는 게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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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프리랜서 방송인, 현직 남매 엄마이자 과학해설사. 스스로에게 가장 엄격해요. 매일 검열하고 싸우면서 문장을 써요. 그래도 결국은 따뜻하고 재미있는 글쓰기를 소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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