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에서 시작된 질문
"그러고 보니 할아버님이 냉장고 하나 남기셨네."
남편이 고요한 적막을 깼다. 아이들은 은은한 조명 아래서 각자 놀고 있고 우리 부부는 소파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밤이었다. 꿈에서 깨어나듯 부엌 쪽을 보니 큰 가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연식이 오래되고 철 지난 디자인의 꽃무늬 냉장고다.
냉장고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우리 집으로 가져온 것이었다. 우리는 신혼 때 대부분의 가전을 중고로 들였고 크기도 최소로 했었다. 배우자가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며 불필요한 소비를 거부한 덕분이었다. 그래서 당시 냉장고도 아주 작았다. 친정 엄마의 말에 따르면 '뭐 어디 자취방에나 어울릴 것 같은' 크기였다.
하지만 그 아담한 가전은 이내 한계가 보였다. 아이들이 태어나자 보관해야 할 음식들이 많아진 것이다. 그즈음 친정 엄마한테 연락이 왔다. "할아버지 댁에 남아있는 가전을 처분한다고 하더라. 너 냉장고 필요하면 가져가라."
추운 겨울날, 할아버지 댁으로 가서 냉장고를 살펴보고 안에 있는 것들을 모두 청소했다. 마음을 다잡고 열었지만 냉장고를 열자마자 꿉꿉한 냄새가 났다. 냉동고엔 성에가 가득 차 있었고, 냉장고엔 약간 곰팡이 핀 것들과 많이 부패해 버린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치매 증세가 심해져 요양원에 가시기 전까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생활을 가늠할 수 있었다. 자식들은 효심이 깊었지만 멀리 살았다. 그래서 철마다 산해진미로 만든 음식을 주기적으로 가져다 드렸는데, 그걸 데워 드실 생각도 못 하고 그냥 무력하게 지내신 것 같았다. 밀폐되어있던 생수 몇 병과 맥주 캔만 챙기고 땀을 뻘뻘 흘리며 전부 버렸다. 그리고는 우리 집으로 냉장고를 가져왔다.
물건만 놓고 보면 할아버지는 진짜 냉장고만 남기고 가셨다. 하지만 고작 '냉장고 하나'로 할아버지의 유산을 전부 설명하는 건 부족하다.
일단 그는.... 내 이름을 남겼다. 아름답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라는 생애 첫 축복을 주려고 몇 날 며칠 고민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는 젓가락질하는 법을 가르쳤다. 어딘가에서 돌을 주워와서는 나와 내 동생에게 젓가락으로 옮기게 했다. 지금은 종교색이 약해졌지만 신앙도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할아버지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어서, 나 역시 고민 많던 사춘기 시절을 성당 공동체의 아늑한 품에서 보낼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그가 동지에 대해 우리 남매에게 설명하던 때다. 문제를 맞히면 100원씩 주겠다며 초등학생 둘을 앞으로 앉히시더니 동지와 관련된 여러 퀴즈를 내셨다. 동지는 낮이 긴 걸까, 밤이 긴 걸까?, 동지에 하는 놀이는 뭘까? 당시에 엄청 집중했고, 그 기억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걸 보면 아마 그때 할아버지는 국민 MC에 버금가는 진행 실력을 보이셨던 것 같다.
또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라는 직업적 특기를 살려 우리 남매의 초등학교 공부를 책임졌다. 맞벌이 부모 대신 우리 남매의 숙제를 봐주었고 가끔 매도 들었다. 과거에 '호랑이 선생님'으로 이름 좀 날리셨다던데, 그래도 손주들에게는 뭔가 많이 인자한 호랑이였다. 덕분에 더 큰 세상에서 덜 물어뜯기며, 우리 남매는 무사히 어른이 되었다.
이 외에도 할아버지와의 추억은 참 많다. 첫 손주라 특히 사랑을 많이 받았다. 할아버지의 낡은 캠코더 안에는 오로지 나만, 어린이집 시절부터 초등학생 때까지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었다. 어디서 재생해야 할지 모를만큼 오래되고 작은 카세트테이프에는 이제 겨우 삐약거리는 내 목소리도 있었다. "저는 상계동 살고요.. " 하는 종알거림을 담기 위해서 할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질문을 던졌을지 눈에 그려진다.
다만 이 테이프들은 내가 스무 살 성인이 되었을 때인가 받았는데 이사를 몇 번 다니면서 없어지고 말았다. 개인적인 과거 기록을 잃은 것도 아쉽지만 나를 줄곧 바라봐주던, 화면 프레임을 줌 인 하며 손녀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담던 그 시선을 느낄 수 없다는 게 가장 아쉽다.
방송에 나오고, 공부도 잘하고,...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어떤 면에서 나는 그분의 자랑스러운 손녀였던 것 같다. 하지만 스스로는 딱히 자랑스럽지 못하다. 그분이 떠나고 나서야 고작 냉장고를 치우면서 그분의 우울감 가득한 마지막 시간들을 가늠했기 때문이다. 돌릴 수 없는 시간에 대해 마음 놓고 애도하는 이 모습조차도 별로 좋은 것 같지 않다. 할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깊은 만큼, 스스로의 효심을 평가하는 데는 박하게 굴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할아버지의 발인이 끝나고 엄마와 작은 엄마들이 남아서 할아버지의 유품들을 정리했다고 했다. 할아버지의 손때 묻은 물건들과 옷가지를 정리하다가 엄마는 어느 순간 오열했단다. "왜? 시아버지인데도 그렇게 슬펐어?" 철없이 묻자 엄마가 소리쳤다. "야, 너무하네! 나도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있잖아!" 그제야 할아버지가 누군가의 남편, 아버지, 아버님, 선생님- 이런 다양한 역할을 해냈다는 걸 떠올렸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다양한 모습으로 남아있다는 것도.
부엌 한쪽의 냉장고를 다시 본다. 죽은 사람은 물건과 기억을 남겼다. 덕분에 그가 만들어 준 습관과 흔적이 생각났다.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거칠 것이다. 결국 한때 세상에 머물렀던 이는 이렇게, 여러 사람들을 거치며 스스로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