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에서 내려온 후에

인생이여, 만세

by 미지의 세계

'인생이 이렇게 즐거워도 될까?'

심오한 생각이 든 건 어느 저녁 준비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반찬 세 개를 열심히 만든 직후였다. 어묵 볶음과 볶음 김치, 그리고 닭볶음탕이 저마다 하얀 김을 내고 있었다. 살짝 맛을 보니 그럴듯했다.

베란다 문을 열어뒀지만 부엌은 아직 열기가 식지 않아 따뜻했다. 앞치마를 벗는 손에 자신감이 있었다. '양파를 각 요리에 맞게 서로 다른 모양으로 잘라 넣다니.' 요리 과정을 떠올리며 혼자 웃었다. 유능한 엄마 요리사가 된 것만 같았다.


아이가 없던 시절, 흔히 자녀 있는 사람들이 '전생'이라고 부르는 그 시절에는 요리를 잘 못했다.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회사 생활이 바빠서 식사 시간이 늘 불규칙했다. 집에 늦게 돌아오는 날도 많았다.

게다가 먹는 양도 적으니 식재료가 상해 가는 시간을 따라갈 수 없었다. 만들어진 음식을 사 먹거나, 아니면 아주 간단히 식사를 때우는 게 효율적이었다.

"결혼하면 어쩌려고 그래?"

요리가 싫다고 당당히 말하는 내게, 주변 어른들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시에는 이렇게 받아쳤다.

"남편은 제가 요리하는 거 기대 안 한대요."

사실이었다. 그래서 신혼부부 시절에도 화려한 웨딩 네일로 밀키트를 뜯곤 했다.

"내가 조리한 거니까 한 거나 다름없어. 많이 먹어."

농담 섞인 말을 해도 그는 피식 웃고 받아주었다. 그랬으니 요리는 영영 나와 거리가 먼 일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육아를 하니 요리를 안 할 수 없었다. 사 먹는 반찬은 비쌌고, 아이들이 먹기에 간도 셌다. 결국 장을 보고 직접 가스레인지 앞에 섰다. 처음엔 서툴러 손이 고생을 했다. 칼에 베이거나 뜨거운 냄비에 데었던 것이다.

대신 장 보는 비용이 확 줄었다. 그리고 싱싱한 유기농 야채를 직접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 입으로 들어가는 무언가가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았다.


요리가 꼭 이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직접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그리고 그 결과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배를 채운다는 것이 상상 이상으로 즐거웠다. 어디선가 읽은 책 구절이 떠올랐다. '현대인이 불행한 이유는 지나치게 분업화된 산업으로 자신이 참여한 노동의 결과물을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결과물을 눈으로 보는 지금 느끼는 행복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였다. 그래도 당연한 행복과 당연하지 않은 변화가 신기했다.


아이가 그만큼 강력한 동기일까? 딩크를 주장하던 남자가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먹고 싶은 건 돈 내고 다 사 먹던 여자가 매일 앞치마를 두르는 이 상황 말이다. 아이의 존재를 상상만 했을 땐 족쇄일 거라고 막연히 짐작했던 적도 있었다. 주말에도 아이들과 놀러 가야 한다거나, 아이들을 씻기거나...

말이 나와 말이지만 아이들을 씻기고 로션을 발라주는 건 부모인 우리에게도 꽤 회복의 시간이 되었다. 화장실 문 너머로 까르르 대는 소리, 다 씻고 나온 뽀용한 아이들의 얼굴이 예뻐서다. 물론 매번 즐거운 건 아니지만 대체로 좋은 기억이 많다. 남편이 매번 굳이 아이들을 씻기겠다고 자처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그것도 다 한 때다. 많이 즐겨둬."

아이들과 복작대니 삶이 다채로운 것 같다고, 꿈꾸듯 말하면 인생 선배들의 일침이 날아든다. 엄마로서 겪은 건 아니지만 나도 딸로서 사춘기를, 독립의 순간들을 지났다. 부모가 내 세상의 최대 적인 것처럼 싸우고 으르렁대던 날들이었다. 우리 아이들도 조금 크면 겪을 일이다. 이 역시 지금 당장은 상상이 안 되지만 말이다.

고등학생 시절 버스를 기다릴 때가 떠오른다.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 안 나는데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엄청 짜증을 내고 있었던 모양이다. 전화를 끊자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날 째려보며 말했다.

"도대체 엄마가 뭘 잘못했길래 그러니?"

아주머니한테 되묻고 싶을 정도의 적의였다. 그러나 그녀는 휙 돌아서 막 들어오는 버스를 타고 가버렸다. 벙찌는 마음으로 혼자 그 말을 계속 되뇌었다.

"무슨 일? 언제? 그 아주머니 이상하네... 뭐 안 좋은 일이 있었을까?"

당시 어머니는 내 짜증을 기억도 못 할뿐더러, 되레 딸을 감쌌다. 최근에 다시 말을 꺼내니 역시 기억을 못 하고 계셨다. 베푼 건 잊고 받은 것만 기억한다. 아마도 먼 미래의 내 모습일 것이다.


일과를 다 마치고 아이들과 나란히 누운 저녁, 습관처럼 '아이고, 아이고'하고 있으니 첫째 아이가 "엄마, 팔 주물러줄까?" 한다. 믿기 힘들어서 "엄마 팔을 주물러 준다고?" 하니 고사리 같은 손이 오른팔을 조물거린다. 그러자 이번엔 둘째 아이가 자기 오빠를 따라 한다. "엄마, 주무어 줄까?(주물러 줄까?)" 이번엔 왼팔 위에 작은 손이 꼬물꼬물 한다. 두 아이를 품에 안고 작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엄마, 너무 행복해.

형태는 바뀔지라도, 어쩌면 더 희미해질지라도
아이들과 주고받는 이 사랑이 인생을 계속 풍요롭게 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차올랐다.


콜드 플레이의 노래, Viva La Vida (인생이여, 만세!)를 듣는다. 몰락한 왕이 군중에 의해 왕좌에서 내려오고, 나중엔 거리를 청소하면서 '난 천국엔 못 가겠지.' 자조하는 가사다. 제목은 프리다칼로의 그림 중 하나에서 따왔다. 노래의 이미지를 담당하는 두 축을 보면 알겠지만 이 노래는, 마냥 즐겁고 화려하기만 한 인생을 예찬하지 않는다. 크고 작은 굴곡을 지나가면서도 결국 '인생이여, 만세!' 하는 회복을 그린다.


가사가 하나의 시 같기 때문에 원작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마음대로 해석을 이어간다. 미혼일 적 나는 회사 생활이, 내 미래만이 중요했던 독재자다. 그러다 아이가 등장하고 혁명이 시작됐다. 내 삶의 방향은 이제 아이들과 가정 중심으로 돌아간다.

과거의 왕좌가 그리운가? 그렇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새로운 삶에서도 즐거움을 발견한다. 가장 화려한 순간에서 물러나도 인생은 이어지기 때문이다. 청소와 빨래를 하고 요리를 하며 아이들을 기다리는 이 시절은 사회적 관점으로 봤을 땐 지나치게 잔잔하다. 그러나 이 소박함을 오래 음미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잘 꾸며졌지만 외로운 왕좌가 아닌,

북적북적 고달프고 벅찬 이 길에서 행복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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