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선물에 마음을 담으려 할까

오해와 이해 사이에서

by 미지의 세계

어느 친구의 생일이었다.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분기별로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였다. 쌓인 정이 있기에 각자 태어난 날 정도는 꼬박꼬박 챙긴다. 연락처만 있으면 생일을 알아서 알려주는 메신저 덕분이다.

이번엔 그녀에게 뭘 선물할까, 고민하다 보니 받고 싶은 선물 목록을 리스트업 해 둔 게 보였다.

'지난해까진 이런 목록을 안 해두더니... 불필요한 걸 많이 받았었나?'

실용적인 그녀의 성격이 보이는 듯했다. 각종 운동복과 건강식품들 사이에서 적당한 가격대를 맞춰 결제한 뒤 메시지를 따로 보냈다.

'생일 축하해. 요즘 건강에 관심이 많은가 보구나. 부디 내 선물이 네 건강한 삶에 도움이 되면 좋겠어...'


예전엔 누군가가 뭘 받고 싶다고 정하면 괜스레 서운했다. 마치 맡겨 놓은 물건을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선물은 받는 맛도 있지만, 주는 맛도 있다. 즉 선물을 준비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필요하고 어울릴 법 한 무언가를 고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니 뭘 사달라고 지정하는 것은 그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지금은 상대가 선물을 지정해도 전혀 서운하지 않다. 오히려 고맙다. 사실 무언가를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 에너지가 많이 든다. 게다가 선물을 열어볼 때 찰나로 스치는 솔직한 반응은 마치 갑자기 치러지는 시험 같다. 센스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되는 순간이다. 찰나지만 어쩔 땐 그게 너무 긴장감 있어서 유독 못 견딜 것 같을 때도 있다.

주는 이와 받는 이, 모두가 아는 선물을 준다면 그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 길게 고민하고 찰나에 판단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갈수록 고민할 것도 많은데 친구 선물을 고를 때만큼은 조금 수월하게 해도 될 것 같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정작 스스로는 선물 리스트를 해놓는 걸 매우 주저하는 편이다. 앞서 언급한 그런 이유들 탓인데 평소 전혀 쓰지 않던 물건들을 받아 사용해 보려고 '노력'해 본 뒤로는 몇 가지를 리스트업 하기도 했다. 필요 없는 물건을 받아 처리하는 과정이 꽤나 스트레스였기 때문이다. 꾸역꾸역 써보려고 하다가 결국 구석에 처박아둔 것을 이사할 무렵에나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거린 적도 있다.

'이런 걸 내가 샀었나?'

결혼 후에는 이런 '선물 파묘'도 불가능한 것이 되었는데, 미니멀리스트 남편이 가만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쓰지 않을 물건을 중고 장터에 팔던지 해서 빨리 치우라고 성화다. 준 사람 성의가 있는데 이걸 어떻게 파냐고 하면, 이런 논리로 답한다. 이미 상대는 소유권을 내게 넘겼다, 축하의 마음도 이미 건네받았다, 고로 그 선물을 어떻게 처리하든 그건 이제 받은 이의 마음이란 것이다.

마침 그 무렵 정리 잘하기로 소문난 모 연예인의 사례도 이 미니멀리스트의 주장에 힘을 싣는 듯했다. 선물 받았지만 필요 없는 건 사진 찍어두고, 실물은 바로 팔아버린다고 했다.

당연하지!
깨끗한 집을 위해선 저렇게 해야 돼!
정 없는 게 아니라니까?

그는 정 못하겠으면 자기가 팔아주겠다며 내 '중고 새 제품'들을 가져갔다. 그리고 자주 좋은 거래를 하면 '매너 온도'가 오르는 모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한동안 물을 팔팔 끓일 온도를 유지했다.


꼭 취향을 전부 파악하는 사람한테만 선물하는 것도 아니고, '신혼부부', '30대 여성' 이런 식으로 큰 키워드만 잡은 선물도 있다 보니 이런 일도 있다.

'신혼부부 집에 가면 공간마다 다른 냄새가 난다. 거실에선 교보문고 책 냄새, 화장실에선 이솝 냄새...'

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비슷한 상상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성의 안에 담긴 선의로 감사하게 받지만 실용성과는 멀어지는 경우다.


먼저 임신한 친구에게 거즈 손수건 세트를 선물했을 때를 떠올린다. 당시엔 미혼에 아이도 없어서 나름 인터넷을 검색해 가며 고른 품목이었는데 친구 답이 인상적이었다.

'나 손수건 너~무 많아. 이건 뭐, 거의 휴지로 써도 될 것 같아!'

아이를 낳고 나니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했지만 당시엔 당황스럽기도 하고, 머쓱했다. 마음을 전한 게 중요하지.... 스스로 위로하며 뒤통수를 긁었다.


개인적으로는 선물과 함께 편지 건네는 걸 선호한다. 선물 고르는 시간이 많이 줄었으니, 대신 종이에 상대를 생각하는 시간을 담아 보내는 것이다. 상황이 되면 손수 카드를 사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적어가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메신저로 길게 내용을 전한다.


편지와 함께 전달된 선물은 좀 더 성의 있어 보인다. 특별하기도 하다. 앞서 선물을 건넬 땐 가끔 안목을 판단받는 것 같아 긴장된다고 했는데 편지는 받는 이가 싫어한 적 없다. 한마디로 성공률 100%의 '카드'이다. 아마 상대의 행복과 꿈을 응원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어선 것 같다. 축복은 선물과 마찬가지로 주는 이나 받는 이나 기쁘기 때문에 카드를 펼치고 글을 쓰는 게 언제고 기 좋다.


편지에 적힌 수많은 글들을 한마디로 하면 뭐라고 정의 할 수 있을까. 때론 정중하고, 때론 혼잣말 같은 이야기들은 사실 상대에 대한 오해와 이해의 흔적이다. 상대를 내가 아는 선에서 분석하고, 칭찬하며 위로하는 식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받는 이는 내가 볼펜으로 꾹꾹, 하지만 마음대로 헤맨 그 길을 보며 여러 생각을 하겠지만 결국 웃을 것이다. 그 끝이 사랑임을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 편지의 마무리가 항상 '사랑해'로 끝나기도 한다...) 편지 쓰길 좋아하는 마음은 결국 진심이 왜곡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 덕분에 가능하다.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가 코앞이다. 산타를 운운하는 거짓말은 믿지 않아도 주변에 소중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은 시기다. 아직 글씨를 모르는 아이들에겐 평소 갖고 싶어 하던 장난감을 준비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사랑이 더 크게 느껴질 나이인 것 같아서다. 물건 욕심 없는 옆지기에겐 오랜만에 긴 편지를 쓸 것이다. 매일 보면서도 말하지 못했던 사랑과 우정을 오랫동안 써봐야겠다.


다정했던 인연들에겐 문득 그가 떠올랐던 순간을 잡아 작은 선물과 편지를 전하고 있다. 공장에서 만들어낸 물건들에 정을 채워 넣는다. 구체적으로 마음을 묻지 않아 확신할 수는 없지만 감사와 사랑을 왜곡 없이 받아주리라 믿는다. 오해와 이해 사이에서 조금 헤맬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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