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나이를 먼저 먹어갈 너에게

반려견과의 에세이툰, '노견일기'를 읽고

by 미지의 세계

# 책, 노견일기

지난 주말, 책 한 권을 읽었다. 노견일기, 나이가 많은 반려견과 정우열 작가의 제주 생활을 그린 웹툰 단행본이다. 시원 시원하면서도 귀여운 그림, 반려견 풋코에 대한 작가의 애정, 성찰 등이 담겨있다. 사실 그림만 봤을 땐 '에이, 강아지가 이렇게나 귀엽다고?'라고 생각했는데 사진을 보고 깨달았다. 풋코는 그냥 만찢개 (만화를 찢고 나온 강아지)라는 걸! 그림보다 더 예쁜 모습에 깜짝 놀랐다. 내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책을 보면 알 것이다. 아무튼 난 풋코의 사랑스러움과 그 주변에서 마음을 다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을 아주 즐겁게 읽었다. 웹툰에 없는 작가와 풋코의 실사 사진과 플립 애니메이션 까지, 웹툰 구독자 뿐 아니라 반려견들 모두에게 좋은 선물이 될 책이다.


노견일기에는 이렇게 귀여운 플립애니메이션이 들어가있다. ..귀엽다.


작가는 노견일기를 2018년 겨울날 처음 연재했다고 한다. 이유는 이번 겨울이 ‘내 개의 마지막 겨울일까 싶어서’. 친구이자 자식, 연인, 가족같은 반려견을 곧 보내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인 것이다. 상상만 해도 마음이 아려온다. 그럼에도 작가는 반려견 풋코와 함께하는 그 순간의 행복에 더 집중하는 듯 보인다. 그건 아마도 헤어짐을 미리 슬퍼하기보다, 기억할 추억을 더 많이 만드는 것이 반려견과의 동행을 연장하는 일임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이 갈라놓는 이별은 슬프지만 돌이킬 수 없기에,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한다.’고 할까. 종족에 상관없이, 사랑하는 대상 모두에 해당되는 다짐일테다.



# 반려인의 마음

혼자 살기도 벅찬 프리랜서 직장인이라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지만, 나 역시 반려인의 마음을 어느정도는 안다. 이를테면 누군가에게 강아지를 지칭할 때 '우리 강아지'라고 하지 않고, '우리 아이'- 라고 하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고 할까. 그런 마음을 알게 된 건 탱구라고, 할아버지 댁에 살고있는 미니핀 때문이다. 아, 생각만 해도 힐링되는 아이, 탱구. 말이 나온 김에 우리 탱구를 소개하고 싶다.


탱구는 늘씬한 몸에 검정 털이 윤기나는, 4살의 미니핀이다. 귀는 쫑긋하지만 나나 가족들이 쓰다듬어주면 뒤로 한껏 젖혀지고 꼬리는 자기 감정을 잘 드러낼 수 있도록 아주 길다. 걸을 땐 말처럼 가느다란 다리로 또각 또각 우아하게 걷는다. 미니핀은 원래 그렇게 걷는다는데, 나는 우리 탱구가 유별나게 우아하다고 믿고 있다. ‘내 자식은 천재’라고 믿는 부모처럼 보일까 조금 염려되기도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그 아이가 총총 걸을 땐 작은 말이 걸어가는 것 같다. 게다가 무척 영리하다. '손'은 물론이고 대소변도 화장실에 가서 처리한다. 안 예뻐할 수가 없다.


탱구는 하이파이브도 할 줄 안다. 물론 잘 안해준다. 간식을 들면 확률은 올라간다. 사실 하이파이브를 하나마나 늘 사랑스럽다.


탱구는 아무 사람한테나 덥석 안기는 강아지가 아니다. 하지만 한번 마음을 열면 엉덩이부터 스윽, 그 사람 다리에 올려놓고는 앉아 있는다. 좀 더 친해지면 배를 쓰다듬어달라며 벌렁 누워버리거나, 손 밑으로 주둥이를 들이민다. 배를 쓰다듬어줄 때 탱구 표정을 모두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있고 눈을 살며시 감고 있는 그 표정 말이다. 하지만 카메라를 들이밀면 어떻게 귀신같이 알아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표정관리를 한다. 이 사랑스러움을 우리 가족들만 알아서 진심으로 안타깝다.



탱구가 할아버지 댁에 온 건 2018년 12월 31일이었다. 3개월 뒤에 내가 그 집에서 독립했으니 탱구와 나는 엄밀히 말하면 3개월 인연인 셈이다. 그러나 고맙게도 탱구는 3개월짜리 주인을 기억하고, 내가 할아버지 댁에 갈 때마다 허리 높이만큼 뛰며 반가워해준다. 탁타타타...하고 기분 좋게 뛰어다니는 탱구를 쫓아가서 안아주면 놓으라고 바둥대지만 (네 이놈, 감동을 파괴하지마라!) 놔주면 또 내게 파고들어 안기는 아이다. 탱구를 보고 있자면 살면서 이 정도로 사랑받은 기억이 있나 싶어 괜히 코가 찡해진다. 자꾸 마음이 갈 수밖에 없다.


탱구에 대한 가족들의 마음이, 생각보다 크다는 걸 알게 된 사건이 있었다. 그 날은 내가 할아버지댁으로부터 자립하기 하루 전 날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보니 집안 분위기가 이상했다. 탱구를 잃어버렸다는 거다.

"목줄 없이 나갔는데, 동네 꼬마들이 우- 하고 오니까 휙 튀어나가버렸어야." 탱구를 데리고 나갔던 할아버지는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퇴근하면서 내가 생각했던 계획은 할아버지댁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즐기는 거였다. 하지만 탱구가 사라졌다는 그 이야길 듣는 순간, 내려놨던 가방을 다시 들쳐메고 밖으로 나왔다.


"탱구야! 탱구야!" 근처 동네를 돌아다니며 탱구를 찾았다. 소용은 없었다. 할머니는 "차라리 잘 됐다. 그거 신경쓰였었는데, 없는게 낫지"라고 했다. 말은 그렇게 하셨지만 눈이 빨갰다. 그날 새벽, 우리 가족은 전부 잠을 설쳤다. 할아버지는 몇 시간마다 한번씩 "그것이 어디갔을꼬. 그것이 어디갔을꼬." 하며 일어났고, 할머니는 묵주를 손에 쥐고 중얼중얼 기도를 했다.


그래도 다행히 탱구는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동생이 인터넷에 글을 올려보자고 한 덕분이었다. 지자체 동물보호소에 탱구 사진과 특징, 나의 연락처를 적어뒀는데 그걸 보고 동네 동물병원에서 연락이 온 거였다. 누군가가 데리고 왔는데, 잃어버린 강아지인 것 같다고 해서 보호소 홈페이지를 조회했노라고 말했다. 감사한 마음에 발견자 연락처를 알아내 연락했다. "뒷산에서 애를 발견했는데 벌벌 떨고 있었더라고요. 그런데 왠지 옷을 입고 있는 게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 같더라고요. 그래서 가까운 동물병원으로 데려갔어요." 구조자가 말해줬다.


나도 말했다. 탱구가 없어지고 나서 온 가족들이 밤을 지새웠다고. 우리 가족한테 너무 큰 선물이라고. 너무 감사하다고. 사례를 하려고 했지만 구조자가 거절해서 못했다. "그냥 그 아이가 가족에게 다시 돌아갈 수 있어서 행복해요."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천사인가, 하고 생각했다. 탱구를 다시 만난 우리는 정말, 진짜로, 한참 울었고 탱구를 꼭 안아줬다. 물론 이 때에도 탱구는 무척 발버둥쳤다. 녀석.


# 나는 너를 평생 사랑할 것이다

그 후 탱구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전하면서 글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현재 탱구는 본인을 너무나 사랑하는 가족들과 여전히 잘 살고 있다. 혹시 탱구를 또 잃어버리는 상황이 생길까봐 반려동물 등록도 했다. 생일은 우리 집에 온 날짜, 12월 31일로. 탱구는 할아버지와 텃밭도 같이 다니고, 산책도 하며, 할머니한테는 가끔씩 과일도 얻어먹는다. '손' 따위의 훈련은 안 한지 오래됐지만 여전히 나를 반긴다. 그리고 자주, 웃는 표정을 짓는다.


탱구에 대한 내 마음을 어떻게 정의하고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던 적이 있다.

'노견일기'에서 힌트를 얻어 한 문장을 적는다.


'너는 나보다 나이를 먼저 먹어갈테지만, 나는 너를 평생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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