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하면서 빚 진 이야기
몇 주 전, 가족들에게 따로 나가 살겠다고 선언했다.
“저, 이제 독립을 하려 합니다.”
학창시절 배운 독립 선언에 비하면 나약하고 미미한 문장이었지만, 가족 구성원들에게는 꽤나 충격적이었던 모양이었다. “어..언제?” 누군가 되물었고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보이려 애쓰며 말했다. “다음 주요.” 그리고 다시 침묵.
사실 그 말을 할 때에는 이미 일 하는 틈틈이 대출 상담을 받고, 방을 보러 다니다가, 알맞은 방을 찾아 계약까지 한 뒤였다. 그렇게 이미 일을 저질러놓고(?) 난데없는 통보라니, 가족들도 당황스러웠던 모양이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할 말은 있었다. 점차 뚜렷한 취향이 생기면서 또 다른 취향을 가진 어른들과 한 공간에서 사는 것이 어려워졌다. 내 생활에 간섭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지만 그 ‘거의’마저도 못 견디겠는 순간이 잦아졌다. 뭐, 물론 거창하게 말 안 해도 생물학적인 나이가 이미 독립을 해도 충분한 나이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독립을 ‘안’ 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물론 당위성에 비해 그 과정이 쉬웠던 건 아니었다. 우선 이사를 준비하면서 프리랜서라는 신분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다. 대출을 받을 때에는 다른 직장인들보다 몇 가지 서류가 더 필요했고, 그렇게 준비해도 결국 지원받지 못하는 상황이 더 많았다. (굳세어라, 프리랜서여!)
또 마음에 쏙 드는 방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어려웠다. 하필 학교 기숙사에서 떨어진 대학 새내기들이 공격적으로 방을 구하는 시기였던 것이다.
‘선생님, 방 곧 나갑니다’하는 중개사들의 재촉 문자가 이어지면, 눈물을 머금고 쿨한 척 답을 보내야 했다. ‘그럼, 그쪽이랑 계약 하세요.’ 나름대로는 이후 부동산 계약에서 주도권을 뺏기지 않기 위한 연극이었는데, 그 시기 때에는 내 말처럼 척척, 다른 사람들의 계약이 잘도 성사되곤 했다. (대체 왜!) 업무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새벽부터 새벽까지 일하는 건 기본. 정말, 다시 하라면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그래서일까. ‘앞으로 한 달에 얼마씩, 갚아나가며 살겠습니다’ 하는 일종의 노예 계약서 같은 곳에 지장을 찍으면서도 속은 참, 후련했다. 충격 받은 가족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혼자 해낸 것 치고는 무척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한 터라 더 자신만만했다. 이사를 도와주겠다는 가족들을 처음엔 거부한 이유도 그런 거였다.
‘도움을요? 저한테요? 전 아주 좋은 집을 제가 혼자 구했는걸요? 하하하하하’
하지만 특히 엄마가 혼자 절대 이사를 못 할 거라며 도와주겠다고 나섰고, 결국 엄마와 동생이 나의 독립 준비를 도와주도록 ‘그냥 두었다’.
자만심이 뒷통수를 치는 경험, 누구나 종종 겪는 일일 것이다. 이사 당일, 대체 어디서 다 나온 건지 모를 짐 더미가 쌓이기 시작했다. 망연자실한 나와 달리 엄마와 동생은 먼저 움직였고, 그제야 음료수도 나르고 청소도 하며 나 역시 움직였다. 세 사람이 장장 6시간을 움직인 끝에 겨우, 나의 작은 아지트가 모양을 갖췄다. 이쯤되면 인정해야 했다. 두 사람이 없었다면 나의 주말은 이사만 하다가 끝났을 거라는 걸 말이다. “감사해요. 다들.” 한 차례 짐 정리가 끝난 뒤 늦은 점심으로 자장면을 시켰다. 나는 면을 버무리듯 얼렁뚱땅 감사 인사를 얼버무렸다. 그리고는 뭔가 쑥스러워, 아무 말이나 주절 주절 자장면과 함께 넘겼다. 대체로 감사하다는 말이었다.
여기까지가 지난 주말의 일이다. 그 뒤로 나는 거의 매일 문 앞에 쌓여있는 택배 박스를 풀어 나만의 아지트를 마저 꾸미고, 밀린 설거지와 빨래를 하는 일상을 살고 있다. 오늘은 처음으로 반찬도 직접 만들며 스스로에게 감탄했는데 (‘와, 나 진짜 요리 잘하잖아!’) 30분 뒤 엄청난 설거지 거리를 바라보며 ‘요리 없는 삶’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다.
아, 그리고 신기한 걸 발견했는데 집안일을 하고 나면 저녁 11시 즈음이 되어버리곤 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순식간에 삭제되는 마법의 순간. 그런 시간들을 그냥 ‘어른의 삶’이겠거니 하며 살아내보고 있다.
익숙한 출근길에서는 운전하면서 노래도 따라 부르고, 다른 생각도 할 수 있는 법. 집안일이 손에 익자 요즘은 바삐 움직이면서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정도가 되었다. 최근에는 독립하기 전 생활에서의 여유가 어디서 온 것인지(또, 왜 지금은 없는 건지)에 대해서 생각했었다. 당연하게 차려져있던 아침밥, 퇴근 후 지친 마음을 풀어주던 대화들, 가끔씩 침대 맡에 곱게 개켜있던 빨래, 물리적, 심리적으로 충분히 의지하고 기댈 수 있었던 시간들... 물론 정답은 이미 알고 있다. 내 주변의 다른 누군가가 나 대신 움직이며 벌어준 시간들. 그게 모여 내가 그동안 누린 '여유'가 됐으리라. 그러니까 말하자면, 나는 독립하기 이전부터 빚을 져왔던 것이다.
주택도시기금에 진 물리적인 빚과, 소중한 사람들에게 진 마음의 빚. 두 덩어리의 빚더미를 어깨에 이고서는 비틀비틀 걷는다. 나아가는 걸음이 가벼워지려면 이 빚들을 하나 하나 갚아야 할텐데, 아득하다. 특히나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마음의 빚은 어쩌란 말인가. 하지만 이미 어른이 되기로 마음 먹었고, 이 모든 걸 책임지기로 한 이상 상환 계획은 세워보기로 한다. 낙관적인 내가 얼른 내놓은 계획. ‘갚으면 된다. 열심히 일하고, 또 주변에 항상 감사하면서.특히 마음의 빚은 절대 잊지 말기로.갚는 걸 까먹을 수도 있으니까.’
방안을 좀 더 강구하는 조건으로,
일단. 오케이, 채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