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행복하시길!"
얼마 전 고3 사촌 동생에게 초콜릿을 보냈다. 수능 100일을 앞둔 즈음이었다. 자발적 조공(?)이랄까, 6년 전 쯤 2살 터울의 사촌동생들에게 그냥 달달한 거나 사줄까 생각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다음 해가 되자 초콜릿을 받았던 동생의 동생이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고, (그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 다음 해에는 가장 친한 사촌동생이 입시를 앞두고 있었으며, (응원을 안 할 수 없지!) 이후에는 그 동생의 동생이, 그리고 또 다른 동생이 입시를 앞두고 있었다. (하...) 이왕 이렇게 된 거, 평소 사촌동생들에게 딱히 해준 것도 없는 맏언니, 누나로서 기꺼이 지갑을 열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초콜릿 노예인 셈이다.
시작은 비록 어찌어찌 굴러가듯 되었으나 그 과정을 이어가는 건 사실 즐거웠다.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는 동생의 표정도 좋았고, 초콜릿 전달식 전후로 오가는 따뜻한 대화들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수능 즈음이 되면 나는 기꺼이 사촌 동생들을 가만히 마음으로 불러보며 나이를 가늠했고, 내가 먹어본 가장 맛있고 비싼 초콜릿을 고르고 골라 정성껏 포장해 보내곤 했다.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일 손편지도 함께 말이다.
고3 동생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대략 이런 내용들이 적혔다.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최선을 다하고 네가 원하는 결과를 얻길 바란다.’... 그런데 이런 말들은 사실 상처가 가득했던 내 수험생활에 대한 위로이기도 했다. 지하철 2호선을 타는 대학생활을 꿈꾸던 19살 소녀. 하지만 평소보다 한없이 낮게 나온 점수와 다시 시작된 금욕의 시간들.... 숨 막히던 평가의 순간들이 지나고, 결국 기대했던 대학보다 낮게 평가되는 대학에 입학했던 나. 열등감과 자괴감, 쫓김의 시간들 속에서 내가 얻은 건 ‘대학이 인생의 다가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였고, 대학에 얽매여 그냥 흘려버렸던 시간들에 대한 후회였다.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건, ‘격동의 시기에 얻을 수 있는 자유가 꽤 많다’는 말이었고, 좀 더 말하자면 ‘남들이 뭐라 하든 말든, 책임만 질 수 있으면 너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된다’는 뜻이 담겨있었다. ‘최선을 다해 원하는 결과를 얻길 바란다’는 달콤함을 살짝 코팅하긴 했지만 말이다. 동생들이 그 말을 얼마나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적어간 글들은 결국 '네 멋대로 살아'의 변주들이었다.
나는 수능 성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1년을 다시 준비했다. 정말 신기한게, 나는 4살 때 기억까지도 가지고 있으면서 재수한 1년은 도무지 기억이 없다. 아마도 당시 기억이 잘 안날 정도로 재미 없고 따분한 시간이었기 때문일 거다. 하긴, 뭐가 재미있었을까. 점심은 무조건 김밥 한 줄. 한 손으로도 먹을 수 있어야 하니까. 나머지 한 손은 연필을 쥐었다. 덕분에 12시부터 1시, 남들은 밥도 먹고 나가서 바람을 쐬는 그 시간에 나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대로 원하는 대학에 갔더라면 '공부의 신'이 되어 좀 더 일찍 방송 전파를 탔을지도 모를 일이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겨우 해낸 '인 서울', 하지만 당초 어디 가서 자랑할 만한 곳은 아닌 대학에 합격하자 어머니는 앓아 눕고 말았다.
대학에 가서 1년 동안은, 나와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모여 한탄을 하며 매일 술을 마셨다. 돈 없는 대학생들이 모여 문전성시를 이루던 한 골목, 그 곳에서도 가장 저렴한 안주를 파는 술집이 나와 내 친구들의 아지트였다. 우린 젊은 꼰대처럼 "내가 옛날엔 말이야~공부를 잘했는데~" 하며 한참 웃었고, 잔뜩 취해서는 눈물을 닦아냈다. 그 때는 실패한 인생들이 모인 것만 같았다. 우리가 이렇게 슬프고 힘든 건 대학을 원하는 곳으로 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후 편입까지 실패하고 나니 정말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다. 이제 곧 준비도 없이 사회로 내던져져야 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학에 대한 집착을 놓자 다짐했다. 그리고 정말 하고싶었던 걸 했다. 그렇게 우리말을 알리는 대외활동도 하고, 예전부터 소망했던 교육 봉사도 했다. 러시아에도 처음 가봤고, 대학로에서 연극도 했다. 막무가내의 삶이었다. 특히 연애는 내가 가장 열심히 했던 일이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다니고, 움직이고, 대학을 지워내려 노력하자 그제야 나의 '대학시절'은 어떤 색을 띄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기는 이후 내가 아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나의 '대학시절'이 되었다. 취업용 자기소개서에서도 대학 이름보다 더 유용한 경험이 되어있었으니 일거양득의 선택이었던 셈이다.
말이 길어지니 꼰대가 될 것만 같아서, 내가 겪은 수능 후기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 한다. 두 번째 수능 전날 밤. 나는 아주 끔찍한 꿈을 꿨다. 피가 묻고 썩은 어금니 두 개가 내 입에서 툭 튀어나온 꿈이었다. 화들짝 놀라 일어났는데, 너무 싱숭생숭해 결국 수능장으로 가는 길에 어머니께 말을 했다. 우리 어머니는 눈에 띄게 굳은 뒤, 그 자리에서 내 꿈을 100원에 샀다. 걱정 말고 시험을 잘 보라는 어머니의 배려였다. 하지만 그 배려가 무색하게 나는 평소보다 훨씬 낮은 점수를 받았고, 원하는 곳에 못 미치는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 뒤로 썩은 어금니 꿈은 나의 원흉이었다. 판다고 팔았는데, 왠지 내게 남아 악한 기운을 끼친 것 같은 마음이 든 것이다. 아, 억울해라.
그런데 얼마 전, 얼핏 꿈 해몽 관련 글을 읽다가 내가 꾼 꿈에 대한 이야기를 찾게 되었다. 썩은 이가 빠지는 것은 문제가 해결되는 길조라는 것이었다. 순간 헛웃음이 났다. 수능을 망친 이유가, 그리고 그로 인해 내 인생 몇 년을 날려먹은 이유가 그 망할 꿈 때문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꿈을 원망했던 스스로가 민망했고 쑥스러웠다. 사실 수능을 망친 건 운이 좋지 않았을 뿐이다. 아, 물론 실력이 그냥 이 정도였을 수도 있다.
....혹시 꿈을 어머니한테 팔아서 그랬을까?
수능의 결과는 향후 몇 년을 좌우할 것이다. 그건 경험상 맞는 말 같다. 하지만 그게 인생을 좌우하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인생은 너무 길고, 또 너무 길기 때문이다.
부디 수능 잘 치르고, 자기 마음대로 행복하게 사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