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생각과 못된 입을 조심하세요
'내가 ㅇㅇ가게 사장이라면' 상상해 글쓰기
향기가 좋겠다. 아무도 모르게 누군가의 몸에 침투해 제 멋대로 움직이게 하는 데는. 아, 어떤 무서운 계략을 꾸미는 건 아니다. 남몰래 뒷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입. 그 입을 마음대로 좀 해보고 싶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향기를 맡고 내 얼굴을 보면 남한테 했던 내 험담을 그대로 이야기하게 되는 것. 어차피 험담이라는 건 당사자가 듣게 될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불안감이 있으면서도 굳이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다만 직접 말하긴 껄끄럽거나, 사안이 자잘하거나, 질투가 나니 당사자 앞에선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고.
그러니 남한테 했던 이야기를 한 번 더 하도록 해보는 것이다. 당사자의 표정과 상처받은 반응, 적대적 태도 등을 보면서 못난 자기 속마음을 좀 보라고. 무척 당황하고 난감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남 욕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최후의 구원책인 셈이다. 입술과 자물쇠가 얽힌 디자인으로, 이미 향수병까지 디자인해두었다.
성공적인 사업에는 무릇 유의미한 계기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전설이 될 향수의 시작은 2022년 1월 어느 점심시간이었다. 따로 약속한 건 아니지만 구내식당에서 만나면 함께 밥을 먹는 동료가 있었다. 그날도 이런저런 얘길 하며 식사 중이었는데 갑자기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듣고 보니 나의 신상을 소재로 직원 몇 명이서 입방아를 찧은 모양이었다.
“선생님 얘길 막 뒤에서 하잖아.
아니, 선생님이 무슨 죄야?”
벌써 한 달도 훨씬 전에 일어난 일인 듯했지만, 아니 사실 실제로 누가 어떻게 얘기했는지도 모를 만큼 모호한 이야기였지만, 막상 그런 말을 전해 들으니 상처가 됐다. 말은, 그냥 하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내용도 입을 탔다는 그 자체만으로 기분이 나쁘다는 걸 그때 알았다. 중구삭금(衆口鑠金)이라고, 쇠를 녹여내는 혀들을 계속 생각하면서 내가 무엇을 그토록 잘못했는가 한참 곱씹게 됐다. 그리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변명을 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순간의 초인적인 힘으로 입을 다물었다. 다행히도 여러 경험에 따른 진리를 생각해냈기 때문이다. 감정에 휩싸이면 후회할 말을 거듭 내뱉게 된다는 것. 그래서 잠시 웃음으로 무마하고는 머리를 비웠다. 앞에 있던 전달자의 말이 희미하게 귀 옆을 스치자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나를 정말 생각했다면 상처받을 것도 생각해 주었을 텐데... 한참 지난 일을 왜 새삼 꺼냈을까. 어쩌면 저 직원도, 뒷말의 내용에 공감하거나 아니면 배설의 즐거움에 동참하고 싶은 게 아닐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진짜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날 위하는 척하면서 큰 소리를 내고 있는 그분의 모습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아니, 이게 뭐라고 이렇게 진심인 거지! 그의 마음을 짐작하고 나니, 그가 뭐라고 하든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들었다. 내가 웃자 그 직원은 이내 다른 대화 주제를 꺼냈고 그렇게 우리는 웃으며 점심시간을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다시는, 저 선생님이랑 겸상하지 말아야지.
아무튼 험담한 사람을 무안하게 만드는 이 향기를 잘 담아 판다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구매할 것 같다. 집단 내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누군가가 증거 수집을 위해 구입할 수도 있을 테고,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시험해보고 싶은 위기의 연인, 정적의 약점을 잡고 싶은 누군가, 직원들의 애로사항을 알고 싶은 사장 등... 향수가 몰고 올 사회적 부작용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나 물건을 파는 입장에서 어디까지 고려해야 할지 막막한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물건을 사러 온 고객이 누구든 주인 된 입장에서 언제나 친절할 것이다. 그리고 주의사항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을 것이다.
지금 가게 안에도 향기가 가득해요. 나쁜 생각과 못된 입을 단단히 단속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