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톤 - 분홍색 분위기미인
「대학」
대학생활. 그것은 송유리에게 낭만도 뭣도 아닌 아픔이었다. 마음과 몸이 따로 혹은 같이 다채로운 방법으로 아팠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맥박이 빨라지는 증상 정도는 예삿일이었다. 편두통도 잦은 일이라 괜찮았는데, 어느 날에는 머릿속이 하얗게 날아가면서 땅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광경이 펼쳐져서 그건 좀 신기했다. 그리고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서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달려간 날에는 “뭐야? 쟤, 호박씨 까는 거였어?”라는 말을 들었는데, 따질 용기가 없어서 시원하게 속을 게워내는 것으로 분풀이를 했다. 또 다른 날에는 온몸의 감각이 극도로 살아나면서 평소보다 훨씬 잘 들리고 잘 보였다. 그러면 뚜뚜뚜두 소리를 내면서 초능력을 발휘하던 미녀배우 소머즈가 떠올라서 약간 흥분됐다. 그러나 그날 밤 송유리는 밤새도록 파리처럼 파르르 떨며 몸살을 앓았을 뿐이었다.
그렇게 약해 빠져 가지고 앞으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니? 그 지적은 사회적 자아가 강한 사람이 잘 산다는 걸 전제로 하고 있다는 걸, 그 전제가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송유리는 인지하고 있었다. 타고나기를 관계 면역력이 약한 사람도 있다. 사람들과 만나고 부딪칠 때마다 홍역 같은 걸 치워야 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래, 물론 최소한의 지구인으로 살아가려면 평생 숨어서 살 수는 없겠지. 힘들어도 조금씩 부딪치면서 사회성을 키워가야 한다는 건 인정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얼마나 아픈지, 아파 죽겠는지 아무도 몰라주잖아. 아니, 꼭 알아줘야 된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다그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송유리는 생각했다.
특히 무례한 사람들 ― 분명 모르는 사인데 갑자기 팔짱을 잡아끌며 동아리방으로 인도하는 사람들. 학식 먹으려고 한참 줄 서 있는데 “몇 학번?”하며 당당하게 새치기하는 사람들. 지난번 술자리에서는 실수가 많았다며 앞 뒤 없는 포옹으로 용서를 구하는 사람들. 맡겨 놓은 듯 몇 번씩 번호를 재촉하는 남자들까지. 아무리 곱씹어 봐도 이해하기 힘든 외계인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 너희들, 그러다 벌 받아!
학기와 방학은 빠르게 바통을 터치해갔다. 1, 2학년 때와 달리 3학년은 꺾이는 느낌 자체가 다르지 않느냐는 말이 자주 들렸다. 송유리는 여전히 꼭 필요한 수업시간 외에는 산책로를 쏘다니는 편이었지만, 그 말이 자꾸 신경 쓰였다. 마음 같아서는 자연에게만 눈길을 주고 싶었지만 이제는 정신을 차려야 할 것 같았다. 주변(사람)을 둘러보았다. 놀랍게도 똑같은 얼굴을 갖고 있었다. 그 얼굴에는 사냥감에 몰두하며 맹렬하게 돌진하는 맹수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이 연애든, 학점이든, 게임이든, 술이든 강한 목표의식을 가진 그들은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른다고 불평하며 신나 했다. 그런 거 없이 자연의 완만한 리듬을 따라 멍 때리는 시간을 보내온 송유리에게는 없는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