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톤 - 분홍색 분위기미인
일요일, 유리는 숲 속 도서관이 개관하는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 도심 공원 안에 작은 규모로 자리한 도서관은 한 달 단위로 새로운 책이 입고되었다. 대학도서관이나 시립도서관에서 옮겨온 책들이 대부분이고 최신 신간은 아주 간혹 들어왔지만, 상관없었다. 오래된 책은 오래된 나름대로, 신선한 책은 신선한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었으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도서관은 조용했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함부로 말을 걸지 않는다는 것이 송유리에게 큰 안도감을 주었다. 미닫이문을 열고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다.
열람실은 단 두 개. 하나는 골방, 하나는 다락방이었다. 골방은 천정이 높고 길목이 좁은 구조였고 다락방은 그 반대였다. 송유리의 취향은 골방 쪽이었다. 일찍 도착했으니 제일 좋아하는 E열 안쪽 자리도 비어 있을 터였다. 그 자리에 입구를 등지고 앉으면 나무틀로 짜인 작은 창문 한 칸을 온전히 차지할 수 있었다. 손바닥 두 개면 가려지는 그 프레임을 통해 상영되는 바깥 풍경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심장박동수가 느려졌다. 커다란 나무와 끝없는 하늘 아래로 검지만 한 사람들이 웃고 떠들고 걸었다. 책을 읽다가 그곳을 바라보면 피식 웃음이 났다. 그리고 생각했다.
― 사람들, 귀엽네!
해가 지기 전에 할 일이 있었다. 일주일 동안 자신의 친구가 되어줄 한 권의 책을 고르는 것. 아니 고른다기보다는 뽑기에 가까웠다. 과학, 예술, 언어, 문학, 역사, 철학(종교는 뺐다)까지 여섯 분류를 줄 세워놓고 사다리를 태웠다. 오른손에 연필을 꽉 쥐고 사다리의 운명을 따라갔다. 한 줄 한 줄 계단을 탈 때마다 기대가 증폭됐다. 도착한 곳은 철학 칸이었다. 송유리가 잠깐 주위를 살폈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의 책에 집중하고 있는 걸 확인한 후, 카디건 호주머니에서 주사위 세 개를 꺼냈다. 또르르 굴릴 수는 없으니까 포갠 양손 안에서 적당히 섞는 작업을 거쳤다. 작게 숨을 한번 고르고 허리를 곧추 세웠다. 숫자를 확인했다. 1, 4, 7이었다.
그렇게 여러 해 동안 매주 뽑기로 만난 일관성 없는 책들은 송유리 안에 원더우먼을 키웠다. 제각각으로 보이는 낱개의 문장들이 서로 소통하며 하나의 세계관을 형성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어느 날, 송유리는 알게 된다. 우리들은 각각의 세계 속에서 영웅이기를 자처하며 살아가고, 실제로 그 세계에서 나를 구해줄 건 나밖에 없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