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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철 Jul 24. 2023

크리에이티브의 시작 - 내어놓는 일

(사)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 배달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


1. 


대학 다닐 시절에 위 제목의 연극이 있었다. 빈부격차를 그려낸 작품이었다. 두 동네를 비교해 빈부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줄 만큼 옥수동은 달동네이고, 빈민촌이었다. 지금이야 압구정동에 부모를 둔 자식들이 독립해서 옥수동에 산다는 말이 있다. 브랜드 새 아파트도 많아졌고, 젊은 중산층들이 많이 모여 산다.


2.


2001년 무렵, 옥수동이 아직 달동네였을 때 옥수동 꼭대기 한 작은 교회에 어느 목사님이 부임하셨다. 교회 주변에는 가난한 노인들이 많았다. 청년 시절 47kg이었던 목사님은 우유를 먹고 50kg를 넘겨 공군사관학교 2차 면접을 치를 수 있었던 기억을 되살려 냈다. 그리고 가난한 노인분들에게 우유를 무료로 배달하기로 작정했다. 


3.


180ml 우유 한 팩 가격은 700원. 한 달이면 21,000원. 100명에게 우유를 배달하는 데는 210만 원이 들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던 처남과 주변 성도의 도움을 받아 100명에게 우유를 배달했다. 처남이 210만원씩 3년을, 3년 뒤에는 25명의 성도가 10만원씩 후원을 했다고 한다. 뒤에 배달의 민족을 창업한 김봉진 씨는 이때까지만 해도 자주 망하는 창업가였으며, 이 교회 성도였다고 한다. 


4.


목사님께 ‘나중에 돈 벌면 제가 우유 배달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하도 자주 망해서 김봉진 씨가 새로 개업 예배를 드려달라고 요청할 때마다 목사님은 민망했다. 6번째 개업 예배때 창세기 이삭의 말씀을 전했고, 김봉진씨는 결국 배달 앱으로 성공했다. 우유 배달 때문에 어플 이름이 배달의민족은 아니었겠지만, 2011년부터 한달에 500만원씩 우유 배달을 후원했는데, 결국 배달의민족으로 사업에 성공했다는게 신기해서 웃음이 나오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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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


5.


배달의민족에 투자했던 골드만 삭스에서는 진짜 김봉진 씨가 우유 배달에 500만 원씩 후원한 게 맞냐고 회계상 확인을 위해 목사님을 찾아왔다. 그리고 우유 배달 스토리에 감동받아 골드만삭스 15명의 이사들이 10,000달러씩 후원했다고. 15만달러, 그러니까 우리돈으로 1억 8천만 원의 현금이 생긴 목사님이 김봉진 씨와 함께 설립한 사단법인이 ‘(사)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이다. 


6.


매일유업이 '소화가 잘 되는 우유' 매출액의 1%를 이 단체에 후원하는 캠페인을 벌여서 깐느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소화가 잘 되는 우유'의 1년 매출액이 850억이라, 지금 8억 5천 만원의 정기적인 후원을 하는 후원처도 생긴 셈이라고 말씀하신다. 


더 놀라운 것은 사단법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2007년 무렵부터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어르신들의 고독사 문제도 우유배달을 활용해 해결하고 있다는 것이다. 


7.


가난한 어르신들 우유라도 드시게 하고 싶다고 시작한 일이, 고독사 문제도 해결하는 캠페인과 사단법인으로까지 확장된 것이 놀랍고, 그 사이에 김봉진 대표까지 연결되었다는 사실도 신기하다. 이야기 중 무엇보다 기억에 남았던 건 애초 무상 우유배달이 누군가가 목사님에게 주었다던 2,000만 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 . 하나님의 테스트라고 생각하고 남을 위해 쓰기로 했던 2,000만 원이 지금은 수십만 명 후원자와 노인을 연결하고 사회문제에까지 선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8.


여기까지가 내가 지난 금요일 밤에 전해들은 현실판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세상은 결국 무엇을 내어 놓는지의 싸움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작더라도 무엇을 내어놓을 수 있는 지 한참을 고민했다. 고민만 하는 사람으로 끝나지 않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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