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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구소장 Sep 10. 2018

어느 날 나는 편지를 받고

헤매는 삶을 당당히 이야기하기로 했으니.


드디어 받았다. 

남들은 다 받았는데 나만 못 받았던 것이었다. 생에 한 번 받는 것이니 평생 간직해야 한다는 그것. 

누구는 빈 봉투를 받았다고 했지만, 대부분은 또박또박 쓰여있는 글자에 취해 한 동안 춤을 췄다고 했다.

막막한 삶의 힌트가 적혀있으니 신의 선물이라고, 동아줄이라고, 기적이라고 하던 것.


주머니에서 바스락거리는 봉투를 느끼며 빠르게 걷는다. 나는 설레고 있다. 

나의 봉투. 나의 종이. 나의 삶, 그 단편.

길 위에서 차마 펼칠 수 없어 외딴 골목 가로등 밑에 왔다. 이 정도 불빛이면 충분하다 생각하고 꺼내보았다. 

낭만적이지 않은가. 신이 쓴 나의 삶을 펼쳐 보는 일. 

밝은 불 빛보다는 낯선 동네의 가로등 불빛이 더 잘 어울리지 않은가.



아. 

흐린 빛 밑에서도 선명한 구겨짐. 가장자리의 너덜함. 나는 보는 이 없이도 부끄러웠다. 이렇게 오려고 늦게 왔나. 누군가에 의해서 치워지고 치워져서 나에게 온 것이 분명하다. 눈길 조차 받지 못한 봉투였다. 가엽다. 난 나 스스로를 가여워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봉투는 조심스레 뜯을 필요도 없었다. 접착된 부분에 검지 손가락을 쑤셔 넣고는 툭, 뜯어냈다.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손바닥 만한 재생지. 그리고 그 위에 적힌 깨알만 한 문장들. 간혹 맞춤법도 틀려있었다. 띄어쓰기가 제대로 되어있을 리 만무한 글이었다. 나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러니까 지금 이게 나의 삶, 나의 단편.


눈물 사이로 글자가 읽히지 않아 몇 번이고 소매춤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잘 못 온 것은 아닌가 했지만 분명 받는 이도 나고, 주인공도 나인 문장들. 눈물 틈 사이로 이름은 읽었으니 내 것이 분명했다.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지 못하고 울었다. 나의 슬픔은 세상과는 상관없다. 이런 식이다. 


아래위로 흔들렸던 삶이 일으킨 멀미가 잦아들 무렵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제대로 읽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골목 어귀에 던져버려야지. 아침이 오면 환경미화원에 의해 영영 사라지는 것. 골목이 깨끗해지기 위해 버려져야만 하는 것.


슬픔을 마주하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이 숨이 다하기 전에 읽어낼 것이다. 한 숨에. 

나는 첫 마침표가 끝나기도 전에 주저앉았다. 나의 삶, 나의 단편.

나는 단어의 사이사이를 헤맸다. 빼곡한 문장의 숲에서 길을 잃었다. 적절한 위치에 있는 쉼표에 앉아간다. 따옴표 밑에서 비를 피한다. 괄호 속에서 태풍이 잦아들길 기다린다. 닫힌 글자 사이에 고인 이슬이 달다. 


아. 오직 나만을 위한 것. 나의 헤엄을 위해 만들어진 나만의 삶, 나의 단편. 마음에 드는 단어의 받침이 나의 몸에 꼭 맞아 온 몸 가득 온기를 느낄 수 있다니. 그 품에 뛰어들어도 다치지 않을 수 있다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걸었다. 어디로 걸어도 나의 길. 나의 삶.



길의 끝에 왔다. 이미 한 숨이 지났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가 없다. 열려있다.

길의 끝에서 무한히 남은 종이를 본다.

뒷장이 비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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