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ttato della Pittura」제5장
<다빈치, 디자이너, 그리고 GPT>는 GPT를 활용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회화론, Trattato della Pittura」을 국문으로 번역하고, 그의 사유를 현대적 시각으로 탐구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디자이너로서 다빈치와 문답하듯 그의 통찰을 재조명하며, 오늘날 디자이너의 역할과 맥락을 탐구합니다.
회화는 어느 사물에나 그려질 수 있으며,
그 평면 위에 공간을 펼친다
Come la pittura abbraccia tutte le superficie de' corpi,
ed in quelli si estende
멀리 있는 대상은 작아지고 색이 흐려지며, 가까이 있는 대상은 더 크게, 더 선명하게 보인다. 원근법이 바로 이러한 원리 위에서 작동한다.
La pittura sol si estende nella superficie de' corpi, e la sua prospettiva si estende nell'accrescimento e decrescimento de' corpi e de' lor colori; perché la cosa che si rimuove dall'occhio perde tanto di grandezza e di colore quanto ne acquista di remozione.
그러므로 회화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과 깊이 연결된 학문이다. 사물이 멀어지면 작아지고 가까이 오면 커진다는 사실은 우리가 시각적으로 세상을 경험하는 가장 기본적인 법칙 중 하나이며, 회화는 이를 활용하여 현실감을 만들어낸다.
Adunque la pittura è filosofia, perché la filosofia tratta del moto aumentativo e diminutivo, il quale si trova nella sopradetta proposizione; della quale faremo il converso, e diremo: la cosa veduta dall'occhio acquista tanto di grandezza e notizia e colore, quanto ella diminuisce lo spazio interposto infra essa e l'occhio che la vede.
회화를 비난하는 것은 자연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화가는 자연을 그대로 모방하기 때문이다. 회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연의 원리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Chi biasima la pittura, biasima la natura, perché le opere del pittore rappresentano le opere di essa natura, e per questo il detto biasimatore ha carestia di sentimento.
회화는 단순한 정지된 이미지가 아니라, 변화와 움직임을 담아낼 수 있다. 원근법뿐만 아니라 빛과 그림자의 변화, 인물의 동작과 감정까지도 회화는 표현한다. 이러한 점에서 회화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도구다.
Si prova la pittura esser filosofia perché essa tratta del moto de' corpi nella prontitudine delle loro azioni, e la filosofia ancora lei si estende nel moto.
말로만 전달되는 지식은 사라지기 쉽다. 하지만 회화는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으며,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단어와 문장은 해석이 필요하지만, 회화는 보는 순간 이해된다.
Tutte le scienze che finiscono in parole hanno sí presto morte come vita, eccetto la sua parte manuale, cioè lo scrivere, ch'è parte meccanica.
회화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회화를 공간을 창조하는 도구이자, 자연의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보았다. 이 글에서 그는 원근법을 예로 들어, 회화가 어떻게 깊이와 거리감을 형성하며 현실을 재현하는지 설명한다.
멀리 있는 것은 작아지고 색이 흐려지며, 가까운 것은 커지고 선명해진다. 우리는 이 원리를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사실 이는 회화가 현실을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는 이유다. 다빈치는 이를 두고 회화가 철학과 닮아 있다고 말한다. 철학이 사물의 변화와 원리를 연구하듯, 회화도 공간과 움직임을 탐구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회화를 부정하는 것은 자연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화가는 자연의 원리를 따라 그림을 그리며, 이는 곧 자연을 재현하는 행위다. 따라서 회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연의 원리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다름없다.
회화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말과 글은 해석이 필요하지만, 이미지는 즉각적으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다빈치는 이를 두고 회화는 말보다 강력하고, 기록으로서 더욱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다빈치의 논리를 오늘날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노트북 컴퓨터, 옥외 광고, 영화관, SNS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이미지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고 해석한다. 다빈치가 강조한 "회화의 본질"은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 글을 읽으며,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우리가 보고 만드는 이미지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다빈치는 회화를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세상을 탐구하는 방식이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이미지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있을까?
레오나르도 다빈치와의 대담은 GPT-4o를 활용합니다. 실제 과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철학이나 생각을 온전히 대변하지 못할 수 있지만, 「Trattato della Pittura」를 새로운 방식으로 읽는 즐거움 정도로 여겨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나 | 선생님,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회화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라고 하셨죠. 하지만 철학이라면 개념과 논리를 통해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인데, 회화 역시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사람들은 종종 철학과 회화를 전혀 다른 것으로 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철학이 논리를 통해 세상을 설명하려 한다면, 회화는 시각적 인식을 통해 자연의 법칙을 탐구하는 것이오.
나는 원근법을 연구하면서 깨달았소. 사물이 멀어질수록 작아지고 색이 흐려진다는 것은 단순한 감각적 현상이 아니라, 빛과 공간이 작용하는 방식이오. 이는 경험적 관찰을 바탕으로 한 진리이며, 이를 회화로 표현하는 것은 철학적 사유와 다르지 않소.
나 | 그러니까 회화는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을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말씀이군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그렇소. 회화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보는 방식 자체를 연구하는 과정이오. 인간의 시각이 공간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빛이 어떻게 사물에 영향을 미치는지, 이를 통해 우리는 단순한 모방을 넘어 자연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소.
하지만 회화는 단순한 과학적 분석에 머무르지 않소. 빛과 공간의 법칙을 아는 것만으로는 훌륭한 화가가 될 수 없소. 화가는 그 원리를 이용해 감정을 표현하고, 시각적 경험을 설계해야 하오. 나는 최후의 만찬에서 단순한 장면 묘사가 아니라, 인물들의 감정과 긴장감을 전달하려 했소. 표정, 몸짓, 시선 하나하나가 전체 분위기를 형성하지 않소?
나 | 그렇다면 회화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고 탐구하는 도구라고 할 수 있겠군요. 하지만 결국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이상, 원근법이나 빛의 변화 같은 요소는 고정된 물리적 원리에 의해 결정되지 않나요? 회화가 철학이라면, 단순한 기법을 넘어서 어떤 보편적인 원리를 탐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좋은 지적이오. 하지만 보편적인 원리를 탐구하는 것이 꼭 수학적 방식이나 논리적 체계로만 이루어질 필요는 없소. 과학은 숫자와 실험을 통해 법칙을 도출하지만, 회화는 관찰과 경험을 통해 같은 진리에 도달할 수 있소.
나는 해부학을 연구하며 인간의 몸을 정확히 묘사하려 했소. 하지만 단순히 근육과 뼈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움직임과 조화로운 비율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했소. 마찬가지로, 원근법을 통해 공간을 표현하는 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연구하는 것이오.
과학이 정량적 방법으로 자연의 법칙을 설명한다면, 회화는 자연을 감각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소. 수학적으로 원근법을 계산할 수는 있겠지만, 화가는 그 공식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조절하여 시각적 균형을 만들어내야 하오.
나 |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회화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이며, 감각적 탐구를 통해 과학과 맞닿아 있다고 보실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과학은 실험과 검증을 통해 반복 가능성을 확보하는 반면, 회화는 창작자의 해석이 들어가기에 같은 풍경을 그려도 매번 다르게 표현되지 않나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그것이 바로 회화가 독창적인 이유요. 과학은 동일한 실험을 반복하여 동일한 결과를 도출해야 하지만, 회화는 같은 대상을 보고도 화가마다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소. 하지만 이것이 곧 회화가 비체계적인 것이란 뜻은 아니오.
같은 풍경을 두 화가가 그린다고 해도, 붓질의 흔적, 색의 조합, 빛을 해석하는 방식이 다르게 나타나지 않소? 심지어 동일한 화가가 같은 장면을 다시 그린다 해도, 원본과 완벽히 동일한 작품을 만들 수는 없소. 하지만 원리는 같소. 공간은 일정한 규칙에 의해 표현되며, 빛과 색채의 변화는 자연의 법칙을 따른다오.
나 | 결국, 회화는 자연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방식이지만, 과학처럼 하나의 정답을 추구하기보다는 다양한 해석을 허용하는 특성이 있군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맞소. 하지만 자네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소. 회화는 단순한 감각적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오.
나는 회화를 단순히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어떻게 배치해야 사람들의 감각이 자연스럽게 반응하는지 연구하는 과정이라 보았소. 원근법도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시선을 어디로 유도할지 결정하는 중요한 도구이오.
그러니 회화는 단순한 창작이 아니라 탐구이며, 세상을 보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힘을 가지오.
나 |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회화가 자연의 원리를 탐구하는 과정이라면, 그 지식이 후대에도 전수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과학은 이론과 실험을 통해 후대에 축적되지만, 회화는 개별적인 감각과 창작자의 경험에 의존하는 부분이 크지 않나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그것이 바로 회화가 독특한 학문인 이유요. 원리는 정리될 수 있지만, 그 표현은 언제나 변하게 되어 있소.
나는 Trattato della Pittura에서 원근법, 빛과 그림자의 관계, 인체의 비례 등을 연구하고 기록했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가들이 내 연구를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오. 같은 원리를 배운다 해도, 각자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고 표현할 수밖에 없소.
과학적 법칙은 실험을 반복하면 같은 결과를 도출해야 하지만, 회화는 그렇지 않소. 같은 풍경을 여러 화가가 그린다고 해도, 모두 다르게 표현될 것이오. 그러니 회화는 단순한 기술의 축적이 아니라, 새로운 해석이 쌓이는 과정이오.
나 | 그러면 선생님께서 연구하신 원근법 같은 원리는, 단순한 기법이 아니라 화가가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지 결정하는 틀을 제공하는 것이군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맞소. 원근법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고 보는 사람의 시선을 어디로 유도할 것인지 결정하는 도구요.
화가들은 과거의 기법을 익히면서도,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각자의 선택이오. 그러니 회화는 단순히 전수되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거치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되는 것이라 할 수 있소.
나 | 그렇다면 앞으로 회화는 어떻게 변할까요? 예전에는 회화가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디지털 기술이 등장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 시대에 따라 회화가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도구가 바뀌어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오.
내가 원근법을 연구한 이유도, 단순히 공간을 더 정확하게 그리기 위해서가 아니었소. 인간이 공간을 어떻게 지각하는지 이해하려 했기 때문이오. 새로운 기술도 결국 인간의 시각적 경험을 바탕으로 발전할 것이니, 회화가 사라질 일은 없을 것이오.
나 | 결국, 기술이 변하더라도 사람들의 시각적 경험을 조율하는 방식은 계속 중요하겠네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그렇소. 그리고 자네가 고민해야 할 부분도 그거요. 오늘날 회화는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의미를 전달해야 하는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시각적 언어는 무엇인가?
나는 내 시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탐구를 했소. 이제 자네 시대에서는 자네가 찾아야 할 것이오.
나 | 선생님과 이야기하다 보니, 회화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보는 방식 자체를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고 보여주는 방식까지 결정하는 거니까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그렇소. 단순히 붓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회화요. 같은 사물도 다르게 보이고, 같은 풍경도 화가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밖에 없소.
나 | 그래서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회화가 의미를 가지는 거겠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변하더라도, 결국 사람은 무언가를 보고 이해하려는 본능이 있으니까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바로 그거요. 시대에 따라 표현 방식은 달라질지 몰라도, 사람들이 시각적으로 세상을 해석하려는 본질적인 태도는 변하지 않소. 회화는 그런 인간의 본성을 반영하는 것이오.
나 | 결국 중요한 건, 단순히 남기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가 하는 문제겠네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맞소. 그리고 그것이 자네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오. 오늘날에는 내 시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새로운 기술과 도구가 많지 않소? 그런 변화 속에서 회화는 어떤 역할을 가질 것인지, 자네 시대의 화가들이 찾아야 할 것이오.
나 | 그 답은 아마 쉽게 나오진 않겠죠. 하지만 오늘 대화를 통해, 적어도 고민해야 할 방향은 잡힌 것 같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 고민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일이오. 그리고 무엇보다, 고민하면서도 계속 그려야 하오. 생각만 한다고 그림이 완성되지는 않으니까.
나 | 그렇겠죠. 오늘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 언제든 다시 이야기 나눌 수 있길 바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