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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모방될 수 없는 학문, 회화

「Trattato della Pittura」제4장

by 혀노hyono

<다빈치, 디자이너, 그리고 GPT>는 GPT를 활용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회화론, Trattato della Pittura」을 국문으로 번역하고, 그의 사유를 현대적 시각으로 탐구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디자이너로서 다빈치와 문답하듯 그의 통찰을 재조명하며, 오늘날 디자이너의 역할과 맥락을 탐구합니다.



모방할 수 있는 학문들에 대하여,
그리고 회화가 모방될 수 없는 이유와
그럼에도 여전히 학문인 이유
Delle scienze imitabili, e come la pittura è inimitabile
però è scienza


일부 학문은 일정한 원칙을 배우고 익히면, 누구나 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제자는 스승과 같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으며, 동일한 방식으로 성과를 낼 수도 있다. 이러한 학문은 배우는 사람에게 유익하지만, 단순히 지식으로 전수될 수 없는 학문만큼 뛰어난 것은 아니다.

Le scienze che sono imitabili sono in tal modo, che con quelle il discepolo si fa eguale all'autore, e similmente fa il suo frutto; queste sono utili all'imitatore, ma non sono di tanta eccellenza, quanto sono quelle che non si possono lasciare per eredità, come le altre sostanze.


그중에서도 회화는 특별한 위치에 있다. 수학처럼 누구에게나 가르칠 수 있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학은 스승이 설명하는 만큼 제자가 습득할 수 있지만, 회화는 그렇지 않다. 또한, 문학처럼 원본을 그대로 베낀다고 해서 같은 가치를 지닐 수도 없다. 문학은 원본과 사본이 동일한 가치를 가질 수 있지만, 회화는 다르다. 조각처럼 틀을 떠서 똑같이 만들어낼 수도 없다. 조각은 원형을 본떠 찍어낼 수 있지만, 회화는 그렇지 않다. 인쇄된 책처럼 무한히 복제될 수도 없다.

Infra le quali la pittura è la prima; questa non s'insegna a chi natura nol concede, come fan le matematiche, delle quali tanto ne piglia il discepolo, quanto il maestro gliene legge. Questa non si copia, come si fa le lettere, che tanto vale la copia quanto l'origine. Questa non s'impronta, come si fa la scultura, della quale tal è la impressa qual è l'origine in quanto alla virtú dell'opera. Questa non fa infiniti figliuoli come fa i libri stampati.


회화는 단 하나의 원본만이 존재하며, 그 가치는 오직 창작자에게 속한다. 따라서 회화는 독창적이며 유일한 작품으로 남는다. 복제가 불가능하기에 더욱 가치가 빛나는 것이다. 이러한 독창성이야말로 회화를 다른 학문과 구별하며, 더 고귀한 영역으로 만든다. 모든 곳에 널리 퍼질 수 있는 학문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Questa sola si resta nobile, questa sola onora il suo autore, e resta preziosa e unica, e non partorisce mai figliuoli eguali a sé. E tal singolarità la fa piú eccellente che quelle che per tutto sono pubblicate.


우리는 동양의 위대한 군주들이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가린 채 다니는 모습을 본다. 이는 자신의 모습을 쉽게 공개하면 명성이 줄어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신의 형상을 담은 성화(聖畵) 역시 값비싼 천으로 덮여 보관된다. 그리고 그것이 공개될 때는 성대한 종교 의식과 장엄한 음악이 먼저 울려 퍼진다. 그림이 드러나는 순간, 수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경배하며, 그 그림 속 성인에게 병의 치유와 영혼의 구원을 기원한다. 마치 그림이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신성한 존재 자체인 것처럼 말이다.

Ora, non vediamo noi i grandissimi re dell'Oriente andare velati e coperti, credendo diminuire la fama loro col pubblicare e divulgare le loro presenze? Or, non si vede le pitture rappresentatrici le immagini delle divine deità essere al continuo tenute coperte con copriture di grandissimi prezzi? E quando si scoprono, prima si fanno grandi solennità ecclesiastiche di varî canti con diversi suoni. E nello scoprire, la gran moltitudine de' popoli che quivi concorrono, immediate si gittano a terra, quelle adorando e pregando per cui tale pittura è figurata, dell'acquisto della perduta sanità e della eterna salute, non altrimenti che se tale idea fosse lí presente ed in vita.


이러한 경배와 감탄은 다른 어떤 학문이나 인간의 작품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혹자는 "이는 화가의 능력이 아니라, 단순히 그림이 묘사하는 대상이 신성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사람들은 굳이 힘들게 순례길을 떠날 필요 없이, 침대에 누워 그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기꺼이 힘들고 위험한 순례길을 떠난다.

Questo non accade in nessuna altra scienza od altra umana opera, e se tu dirai questa non esser virtú del pittore, ma propria virtú della cosa imitata, si risponderà che in questo caso la mente degli uomini può satisfare standosi nel letto, e non andare, ne' luoghi faticosi e pericolosi, ne' pellegrinaggi, come al continuo far si vede.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움직이는가? 그것은 바로 그 성화(聖畵)다. 단순한 글이나 다른 표현 방식으로는 이런 감화를 불러일으킬 수 없다. 그렇기에 신성한 형상은 회화를 통해 표현되는 것을 더 선호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그것을 사랑하고 경배하는 이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치유를 선사하는 듯 여겨진다. 적어도 그것을 믿는 사람들의 눈에는 말이다.

Ma se pure tali pellegrinaggi al continuo sono in essere, chi li muove senza necessità? Certo tu confesserai essere tale simulacro, il quale far non può tutte le scritture che figurar potessero in effigie e in virtú tale idea. Adunque pare ch'essa idea ami tal pittura, ed ami chi l'ama e riverisce, e si diletti di essere adorata piú in quella che in altra figura di lei imitata, e per quella faccia grazie e doni di salute, secondo il credere di quelli che in tal luogo concorrono.






해설 | GPT-4o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Delle scienze imitabili, e come la pittura è inimitabile, però è scienza에서 회화가 다른 학문과 본질적으로 다르며, 모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고귀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수학이나 문학이 완전히 복제 가능하지만, 회화는 절대적으로 독창적이며 작가의 개별적 감각에 의존하기 때문에 전수될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회화는 단순한 기예(技藝)가 아니라, 독자적인 학문적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이 글은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의 위치를 고려할 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중세까지 회화는 장인의 작업으로 여겨졌지만, 다빈치는 이를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려 했다. 그의 주장에는 회화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자연의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적 과정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러나 그는 회화의 고유성을 강조하는 데 집중한 나머지, 학문 일반의 본질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제시하지는 않는다. 회화가 다른 학문과 다르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학문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기준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현대적 시각에서 보면, 다빈치의 논리는 부분적으로 타당하면서도 한계를 가진다. 오늘날 우리는 학문을 단순한 반복 가능성과 전수 가능성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문학이나 디자인 같은 분야도 체계적 연구와 개념 정립을 통해 학문으로 인정받고 있다. 회화 역시 특정 기법과 원리를 학습할 수 있으며, 미학이나 예술사 연구를 통해 지식이 축적되고 발전한다. 결국 다빈치의 논지는 회화가 학문이 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학문이 무엇이며 그 기준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이런 점에서 다빈치의 저작은 예술과 학문의 경계를 고민하게 만드는 중요한 텍스트다. 그는 회화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이론과 탐구를 요구하는 학문적 활동임을 강조하며, 예술이 지적 영역에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오늘날 디자인이나 시각 예술이 학문으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에서도 유사한 논의가 지속되고 있다. 다빈치의 논리는 완전한 해답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예술을 학문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하는 출발점으로서 여전히 유효하다.






레오나르도 선생님과의 문답

레오나르도 다빈치와의 대담은 GPT-4o를 활용합니다. 실제 과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철학이나 생각을 온전히 대변하지 못할 수 있지만, 「Trattato della Pittura」를 새로운 방식으로 읽는 즐거움 정도로 여겨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나 | 선생님, 저는 선생님께서 이 글에서 하신 말씀이 무척 흥미로웠어요. 회화는 본질적으로 모방될 수 없는 학문이기에 다른 학문보다 더 독창적이고 가치 높다는 말씀이셨던 것 같은데요. 그런데 저는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모방될 수 없다’는 점이 회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요소일까요? 사실 학문이란 단순한 반복이나 재현을 넘어, 연구자의 해석과 발견이 개입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수학이나 기하학도 단순히 기존 법칙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가 새로운 공식을 발견하고 기존 개념을 확장하면서 발전해 왔죠.

그렇다면 연구자의 개별적인 해석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모방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회화뿐만 아니라 수학이나 과학도 같은 논리로 ‘모방 불가능한 학문’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자네가 흥미로운 지적을 했구려. 분명 학문이란 연구자의 개별적인 해석과 발견을 통해 발전하지. 하지만 중요한 건 그 과정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차이요.

수학을 예로 들어보지. 같은 공식을 사용하면 누구나 동일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소. 하지만 회화는 다르오. 같은 풍경을 두 화가가 그린다고 해도, 붓질의 흔적, 색의 조합, 빛을 해석하는 방식이 다르게 나타나지 않소? 심지어 동일한 화가가 같은 장면을 다시 그린다 해도, 원본과 완벽히 동일한 작품을 만들 수는 없소.

바로 이 점에서 회화는 수학과 다르며, 독창성이 중요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소.


나 | 그렇다면 과학은 어떤가요? 과학에서도 연구자의 독창성이 필수적인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뉴턴의 역학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확장되었듯이, 과학적 탐구 과정에서도 연구자의 개별적인 해석이 중요한 역할을 하잖아요. 그렇다면 과학도 같은 맥락에서 ‘모방될 수 없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과학과 회화는 근본적으로 다른 특성을 지니오. 과학적 발견은 실험과 검증을 통해 반복 가능해야 하오. 연구자의 해석이 들어간다 해도, 같은 실험을 반복하면 동일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어야 하오. 하지만 회화는 다르오.

같은 풍경을 그린다 해도, 빛의 각도, 붓의 터치, 심지어 창작자의 감정 상태에 따라 작품이 달라질 수밖에 없소. 과학의 본질이 동일한 법칙을 찾아가는 것이라면, 회화의 본질은 변화와 해석의 여지를 갖는 것이오.

자네도 알겠지만, 물리학에서 중력의 법칙은 어디서나 동일하게 적용되지만, 회화에서 빛과 그림자의 표현 방식은 시대와 화가의 시각에 따라 달라지지 않소?


나 | 하지만 예술에서도 기술적인 재현이 가능하지 않나요? 르네상스 시대에도 많은 화가들이 거장들의 작품을 따라 그리면서 기법을 익혔고, 현대에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서 원작과 거의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한 복제도 가능하잖아요.

그렇다면 회화 역시 과학처럼 일정한 기법과 방법론을 체득하면 재현 가능한 학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물론, 화가들은 선배들의 작품을 모사하며 기술을 익히고, 현대 기술을 통해 원작을 거의 완벽하게 복제할 수도 있소. 하지만 핵심은 단순한 기술적 복제가 아니라, 창작자의 내면에서 비롯된 고유한 해석과 표현 방식이오.

자네도 알다시피, 같은 피아노 곡을 연주한다고 해서 연주자마다 미묘한 차이가 없을 수 없소. 손의 압력, 리듬감, 감정의 미세한 변화까지 완벽히 동일하게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겠소?

회화도 마찬가지요. 같은 기법을 배운다고 해도, 작가의 손길과 감각이 완전히 같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는 없소. 반면, 과학은 동일한 원리를 적용하면 언제나 같은 결과를 낼 수 있소.


나 | 결국, 원본성과 개별적 경험이 회화의 핵심이라는 말씀이군요. 그런데 음악은 어떨까요? 악보를 통해 남겨져 연주될 수도 있고, 녹음된 형태로 재생될 수도 있지만, 여전히 감동을 주는 것은 변함없어요. 오히려 여러 연주자가 같은 곡을 연주하면서 각기 다른 감각을 만들어내기도 하고요.

회화는 왜 그런 방식으로 완전히 복제될 수 없는 걸까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음악은 본질적으로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예술이오. 같은 악보라도 연주자의 해석과 연주 환경에 따라 다르게 들리며, 듣는 이의 감정 상태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지 않소?

하지만 회화는 한 순간을 고정된 형태로 담아내는 예술이오. 특정한 순간과 장소에서 직접 경험될 때 그 가치가 극대화되지.

물론, 그림도 디지털로 복제되거나 인쇄될 수 있소. 하지만 그것이 원본과 완전히 동일한 경험을 제공하지는 못하오. 캔버스 위의 물감의 질감, 빛의 반사, 붓질의 깊이 같은 요소들은 복제본에서는 전달되기 어렵소. 오히려 음악은 회화보다 더 복제와 변형이 용이한 예술이기에, 원본성이 덜 중요할 수도 있소.


나 | 저는 선생님의 논리를 이해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해요. 원본성과 유일함이 회화의 중요한 특성인 것은 맞지만, 그것이 회화를 학문의 영역에서 완전히 분리시키는 요소는 아니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글쓰기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같은 단어와 문법을 사용한다고 해서 동일한 글이 나오는 건 아니죠. 하지만 언어학이나 문학 연구는 체계적으로 학문화되었고, 전승과 연구가 가능해졌어요. 저는 회화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개별적인 감각이 중요한 예술이라 하더라도, 선생님께서 시도하신 것처럼 그 원리를 정리하고, 개념을 구조화하면 학문으로 자리 잡을 수 있죠.

그러니까 중요한 건 ‘모방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체계적인 탐구와 전승이 가능한가’라고 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 아주 흥미로운 관점이오. 자네는 학문이 단순한 반복 가능성과 재현성의 문제가 아니라,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전수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보는군. 하지만 그렇다면 질문 하나 하지.

자네는 학문이 반드시 언어나 기호로 전수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오? 즉, 말과 글로 정리되지 않으면 학문이 될 수 없다는 뜻이오?


나 | 꼭 그렇다고 단정 짓고 싶지는 않아요. 학문이 반드시 언어적인 형태로만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학문으로 자리 잡으려면 최소한 체계적으로 정리된 개념과 전수 방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선생님도 같은 맥락에서 회화를 연구하고 기록으로 남기셨잖아요? 만약 회화가 정말로 전수될 수 없는 영역이라면, 왜 그렇게 원근법을 연구하고, 빛과 그림자의 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려고 하셨나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좋은 지적이오. 나는 회화가 단순한 직관이나 감각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밑바탕에 있는 원리를 이해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화는 수학이나 논리학처럼 명확하게 언어화될 수 없는 요소가 많소.

자네도 알겠지만, 원근법을 이해했다고 해서 누구나 뛰어난 화가가 되는 것은 아니오. 색채 이론을 익혔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아름다운 색의 조합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소?


나 | 맞아요. 하지만 그건 자연과학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누구나 물리학 법칙을 배운다고 해서 아인슈타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리학이 학문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학문의 핵심은 ‘전수 가능성’입니다. 예를 들어, 해부학을 연구해서 인체를 더 정확하게 묘사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잖아요? 그러면 후대의 화가들은 단순한 감각에 의존하지 않고, 체계적인 방법을 통해 좀 더 정확하고 설득력 있는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죠.


레오나르도 다빈치 | 그렇다면 자네는 학문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 ‘전수 가능성’이라고 보는 것이오?


나 | 네, 하지만 단순한 반복 학습이 아니라, ‘지식의 구조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음악도 단순한 감각적 경험이 아니라, 화성학, 리듬 이론, 음향학 같은 체계가 존재하잖아요. 그리고 이런 원리를 배운 사람이 그걸 바탕으로 자신만의 해석을 더해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어요.

회화도 마찬가지로, 단순히 ‘직관적인 창작’이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는 원리를 연구하고 후대에 전수할 수 있도록 정리할 수 있다면 학문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그러니까 자네의 입장은, ‘체계적 지식과 전수 방식이 정립되면 학문이 될 수 있다’는 것이군. 하지만 그렇다면,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예술이나, 말로 설명되지 않는 직관적인 창작 과정도 학문으로 인정할 수 있겠소?


나 | 저는 즉흥적인 창작 그 자체는 학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즉흥성을 연구하고, 어떤 원리가 작용하는지를 분석하고, 반복해서 실험할 수 있다면, 그건 학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선생님께서 원근법을 연구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공간을 직관적으로만 인식했죠. 하지만 선생님이 연구한 덕분에, 이제는 원근법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체계가 만들어졌어요. 이처럼 즉흥적이고 직관적인 과정도 연구를 통해 그 원리를 밝혀낼 수 있다면, 충분히 학문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 그렇다면 자네는 결국 모든 지식이 체계화될 수 있다는 입장이군. 하지만 모든 분야가 그렇게 명확히 정리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소?


나 | 물론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리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학문이란 본질적으로 ‘더 나은 소통과 전수’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과학처럼 엄밀한 검증이 가능한 분야도 있지만, 인문학과 예술처럼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분야도 있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개념과 용어가 불분명한 상태로 남아 있으면 오히려 발전이 더뎌지겠죠. 선생님이 회화의 원리를 연구하고 문서화한 이유도, 후대의 사람들이 보다 명확하게 개념을 익히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해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그렇다면 자네가 생각하는 ‘체계화된 학문’의 예로 현대에서 가장 가까운 사례는 무엇이오?


나 | 사실 여전히 철학과 물리학이 가장 모범적인 학문 체계라고 여겨요. 대신, 저는 현대에도 여전히 체계화 과정에 있는 분야에 주목하는데, 바로 디자인이에요. 회화보다 학문으로서의 역사도 짧은 만큼, 완성된 학문이라기보다는 지금도 학문으로서의 체계를 잡아가고 있는 단계거든요.

회화나 시처럼 과거에는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활동으로만 여겨졌던 디자인이, 점점 더 연구와 분석을 바탕으로 정리되고 있어요. 하지만 다른 학문처럼 보편적인 공통 용어나 개념 체계가 완성되었다고 보긴 어렵죠. 아직도 분야별로 디자인의 개념이 다르게 쓰이고, 연구 방법론도 제각각이거든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모든 학문이 처음부터 완벽한 체계를 갖춘 것은 아니니까. 자네가 말하는 것처럼, 학문이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자, 그것을 구조화하는 과정이오. 디자인이 학문으로 자리 잡으려면, 아직 정리해야 할 것들이 많다는 뜻이겠군.


나 | 맞아요. 디자인이 학문으로 자리 잡기 위해선, 먼저 그 본질적인 개념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어요. 지금은 분야마다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다르게 쓰고 있지만, 본질적인 공통점이 분명히 존재하거든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그 공통점이 무엇이라 생각하오?


나 | 처음엔 저도 명확한 답을 찾기 어려웠어요. 제품 디자인, 그래픽 디자인, AI 인터페이스 디자인처럼 각 분야가 너무 달라 보이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역으로 디자인과 무관한 영역까지 확장해서 생각해봤어요. 요리, 음악, 도시 설계 같은 분야에서도 디자인적인 사고가 적용될 수 있을지 말이에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아주 흥미로운 접근이오. 그리고, 무엇을 발견했소?


나 | 공통점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디자인이 존재하는 곳에는 항상 어떤 목적이 있더라고요. 그냥 멋있게 만드는 게 아니라, 무엇을 해결하거나 표현하려는 의도가 있어야 하더라고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그 점은 나도 동의하오. 회화도 단순한 형상의 모사가 아니라, 어떤 본질을 포착하려는 시도였소.


나 | 그리고 디자인은 항상 감각적인 경험을 다룬다는 점도 분명했어요. 우리가 직접 보고, 듣고, 만지고, 조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죠. 시각적이든 청각적이든 촉각적이든, 디자인은 결국 감각을 통해 전달돼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그렇다면 조각이나 건축과도 연결될 수 있겠구려.


나 | 맞아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디자인은 한 번에 완성되는 게 아니라 반복적인 실험과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도 중요한 특징이었어요. 초안을 만들고, 테스트하고, 피드백을 반영해서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빠지지 않더라고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그렇다면 자네가 말하는 디자인이란, 단순히 외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설계하는 것이라는 뜻이겠구려.


나 | 네, 디자인을 조형적인 행위로만 보는 건 너무 좁은 해석 같아요. 형태를 만드는 건 수단일 뿐, 본질은 인간이 어떻게 경험할지를 설계하는 거죠.


레오나르도 다빈치 | 내가 회화를 연구하면서 빛과 원근법 같은 원리를 정리했던 것처럼, 디자인도 본질적인 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오.


나 | 네, 하지만 그 과정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게 디자인의 현실이에요. 그래서 디자인을 학문으로 정립하려면, 개별 분야의 연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부터 더 깊이 탐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그렇다면 자네가 생각하는 디자인의 연구 방법론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오?


나 | 저는 디자인이 학문으로 자리 잡으려면, 심리학이나 인지과학, 데이터 분석 같은 연구 분야와 더 밀접하게 연결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지금까지는 감각적인 직관에 의존해온 부분이 많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방식을 좀 더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디자인의 원리를 더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그러니까 자네는 디자인을 보다 논리적이고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 학문화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군.


나 | 네. 창의성과 감각적 요소를 배제하자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그것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보다 체계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디자인이 단순한 직관이 아니라, 연구와 탐구를 통해 발전할 수 있는 학문이라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더 명확하게 정리하는 것이 아닐까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나도 자네의 이야기를 들으며 디자인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더 깊이 생각해볼 기회를 가졌소. 학문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연구되고 발전하는 것이니까. 자네의 노력이 디자인을 더욱 깊이 있는 학문으로 자리 잡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소.


나 | 오늘 대화가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선생님 덕분에 디자인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 오늘의 대화가 내게도 새롭게 생각할 기회를 주었소. 자네가 탐구하는 길이 단순한 이론적 논의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로 디자인의 미래를 개척하는 과정이 되길 바라오. 앞으로도 계속 탐구를 이어가길 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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