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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진실을 보는 눈, 회화

「Trattato della Pittura」제6장

by 혀노hyono

<다빈치, 디자이너, 그리고 GPT>는 GPT를 활용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회화론, Trattato della Pittura」을 국문으로 번역하고, 그의 사유를 현대적 시각으로 탐구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디자이너로서 다빈치와 문답하듯 그의 통찰을 재조명하며, 오늘날 디자이너의 역할과 맥락을 탐구합니다.



그림은 사물의 표면과 색, 형상을 담아낸다.
Come la pittura abbraccia le superficie,
figure e colori de’ corpi naturali,



그리고 철학은 그 속에 숨은 본질과 원리를 탐구한다.

e la filosofia sol s’estende nelle lor virtú naturali.


그림은 자연이 창조한 모든 것의 겉모습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지만, 철학은 그 속으로 파고들어 사물이 지닌 고유한 성질과 원리를 탐구한다.

La pittura si estende nelle superficie, colori e figure di qualunque cosa creata dalla natura, e la filosofia penetra dentro ai medesimi corpi, considerando in quelli le lor proprie virtú.


철학은 그림이 전달하는 진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여긴다. 그러나 화가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며, 우리가 직접 보는 것이야말로 가장 명확한 진실에 가깝다. 왜냐하면 우리의 눈은 개념이나 이론보다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진실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Ma non rimane satisfatta con quella verità che fa il pittore, che abbraccia in sé la prima verità di tali corpi, perché l’occhio meno s’inganna.






해설 | GPT-4o


르네상스 시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회화가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자연의 진실을 포착하는 학문적 탐구라고 주장했다. 그는 철학이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지만, 논리와 개념에 의존하는 한 완전한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고 보았다. 반면, 화가는 눈으로 본 것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며, 시각적 경험을 통해 직접적인 진실을 담아낸다.


다빈치는 “눈은 속지 않는다”며, 회화가 자연의 ‘첫 번째 진실(prima verità)’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는 도구라고 말했다. 철학이 개념적으로 사물을 해석하는 동안, 그림은 자연의 형태와 색을 왜곡 없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는 회화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자연을 가장 직접적으로 연구하는 방법이라는 그의 신념을 보여준다.


그러나 다빈치의 이 믿음은 지금도 유효할까? 현대 사회는 오히려 ‘눈은 속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매일 경험하고 있다. AI가 생성한 이미지, 필터로 조작된 사진, 알고리즘이 가공한 데이터 속에서 우리는 무엇이 진짜인지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는 시각적 정보도 검증이 필요하며, 현대의 진실은 ‘보이는 것’과 ‘해석된 것’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문제로 변모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다빈치가 살아 있다면, 그는 어떻게 진실을 구분하고자 했을까? AI와 디지털 기술이 만든 이미지 속에서도 여전히 육안으로 진실을 파악할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눈앞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새로운 탐구 방식을 고민했을까?


“눈은 속지 않는다”는 믿음이 흔들리는 이 시대, 우리는 무엇을 ‘첫 번째 진실’로 받아들여야 할까?






레오나르도 선생님과의 문답

레오나르도 다빈치와의 대담은 GPT-4o를 활용합니다. 실제 과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철학이나 생각을 온전히 대변하지 못할 수 있지만, 「Trattato della Pittura」를 새로운 방식으로 읽는 즐거움 정도로 여겨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나 | 선생님, 우리는 지난 대화에서 회화가 철학처럼 진리를 탐구할 수 있다는 점을 논의했죠. 하지만 탐구 방식이 다르다는 점도 인정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철학이 개념적으로 탐구하는 진실과 회화가 시각적으로 포착하는 진실 중 어느 것이 더 신뢰할 만한가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철학은 언어와 개념을 통해 진리를 설명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논리적 해석이 개입할 가능성이 크오. 반면, 회화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고, 시각적 인식을 통해 직접적으로 전달하려 하지요.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는 회화가 단순한 형상의 모사가 아니라, 세상의 구조와 질서를 시각적으로 탐구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확인했소. 회화는 보이는 것의 재현을 넘어, 그것이 보이는 방식을 연구하는 것이오.


나 | 그렇다면, 회화가 철학보다 더 신뢰할 만한 진실을 담는다고 볼 수 있을까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신뢰하는 방식이 다르오. 철학은 개념적으로 본질을 분석하지만, 시대와 문화에 따라 해석이 변하지요. 반면, 회화는 빛과 형태, 색채와 공간의 관계를 기반으로 하며, 감각적으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진실을 제공할 수 있소.

철학이 본질을 설명하려 하지만, 해석이 개입될 수밖에 없듯이, 회화도 보는 이의 시각적 경험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소. 하지만 차이가 있지요. 철학적 개념은 해석 없이는 존재할 수 없지만, 회화는 해석 없이도 존재하고 이해될 수 있소.


나 | 하지만 같은 그림을 보고도 사람마다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잖아요. 그렇다면 회화도 철학처럼 주관적이지 않나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물론이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철학은 논리적 해석이 없으면 성립할 수 없지만, 회화는 직관적으로 경험될 수 있다는 것이오.

철학적 개념은 논증과 토론을 통해 정리되지만, 회화는 설명 없이도 감각적으로 이해될 수 있소. 원근법이 적용된 그림을 보면 직관적으로 공간감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말이오.


나 | 결국, 철학은 논리적 사고를 통해 진실을 탐구하고, 회화는 감각적 경험을 통해 진실을 드러낸다는 차이가 있군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그렇소. 그리고 철학적 탐구는 무한히 확장될 수 있지만, 회화는 하나의 순간을 포착하여 진실을 보존할 수 있는 힘을 가지오.

철학적 논쟁은 시대가 변하면 다른 해석이 가능하지만, 회화는 특정한 순간과 공간에서 관찰된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에, 철학보다 더 영속적인 진실을 제공할 수 있소.


나 |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회화는 철학보다 더 완전한 진실을 담을 수 있다고 보시는 거군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완전한 진실이라는 개념을 정의하기란 어려운 일이오. 하지만 철학적 논증 없이도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진실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회화 속에 담긴 자연의 질서요.

자네도 그렇지 않소? 철학책을 읽으며 논리를 탐구하다가도, 한 장의 그림을 보며 단숨에 진실을 깨닫는 순간이 있지 않소?


나 | 맞아요. 어쩌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보이는 것에서 출발해, 보이지 않는 것을 탐구하는 과정을 거치는지도 모르겠어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바로 그것이오. 자네 시대에도 복잡한 개념들이 발전하고 있을 것이지만, 나는 여전히 이렇게 말할 것이오. 우리의 "눈은 쉽게 속지 않는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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