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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May 14. 2019

립싱크와 노예 계약

90년대 아이돌에게 더 심했던 노예 계약 

지나고 보면 참 그때 같은 호시절이 없다 싶지만, 그 시절을 지날 때는 그게 좋은 시절인지 모른다. 90년대도 그랬다. IMF가 닥치기 직전까지 우리는 호황을 누리면서도 그게 호황인줄 몰랐다. 

90년대 가요계도 그랬다. 김건모, 신승훈이 음반을 내면 100만장은 기본, 200만장까지 팔아제끼는 시절이었다. 밀리언셀러라니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한 일이었지만, 그때는 그게 기적인줄 몰랐다. 

지금 가요계 사람들이 90년대를 대단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당시엔 70~80년대를 동경하고, 지금 가요계는 썩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댄스 가수들이 주류였음에도 진정한 음악인 대접을 못 받았고, 외모와 인기로 청소년들의 코 묻은 돈이나 뜯어가는 가수로 폄하되었다. 


그랬던 이유가 있었다. 

소방차를 시작으로 아이돌그룹의 전성시대가 시작된 지도 어언 10여년이 넘었을 때라 곪을대로 곪은 문제들이 터져나왔는데, 가장 큰 두 가지 문제는 립싱크와 노예계약이었다. 

아이돌 가수들이 음악방송에 나와서 노래를 부르지 않고, MR(반주만 녹음된 테이프)대신 AR(목소리까지 녹음된 테이프)을 틀어놓고 춤만 춘다고 비난받았다. 앨범 녹음할 때도 한 곡을 완창하지 않고 부분부분 녹음해 따붙이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높은 음 안올라가는 멤버들의 목소리를 여러번 녹음해 괜찮은 부분들끼리 짜깁기했다. 그러니 라이브를 못하는 게 당연했다.

기획사들이 얼굴만 보고 사람을 뽑아서 노래의 기본기가 안되는 사람이 가수가 된 것도 이유겠지만, 잠잘 시간도 없이 하루종일 스케줄 소화하느라 연습할 시간이 태부족해서 그렇기도 했다. 

립싱크에 대한 비난이 일자 모든 음악프로들이 갑자기 MR을 틀어대기 시작했다. 높은 음에서 삑사리가 나고, 과연 오늘은 누가 실수할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TV를 봐야했다. 사실 음악방송 프로그램 자체도 준비가 미흡했다. 마이크나 음향, 반주를 제대로 준비 안해놓고 가수들에게만 비난이 쏟아지도록 만든 측면도 있었다.


립싱크와 함께 또 하나의 문제는 노예계약이었다. 

가수들이 데뷔할 때 기획사와 10년이 넘는 계약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음반 인세, 음악프로 출연료 등을 한푼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월급도 못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기획사 입장에선 생짜 신인을 데려와 먹여주고 입혀주고 음반 내주고 스케줄 잡아주는데 드는 비용이 어마어마하므로 1집이 성공하더라도 그 이익은 고스란히 비용으로 들어간다고 주장했고, 가수들 입장에선 인기란 한 시절인데 노예계약 때문에 1집뿐만 아니라 2, 3집까지 10여년을 피고름 쪽쪽 빨리다가 인기 없을 때 내쳐진다는 주장이었다. 그 인기의 대부분이 자신들의 매력과 노력과 능력 덕분인데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고 싶어하는 건 당연했다. 


Ref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도 제작사인 팀기획과 9년인가 하는 어마어마한 기간을 계약했는데, 그룹이 예상외로 너무 크게 대박을 쳤고, 음반도 꽤 많이 팔렸다. 한 시절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댄스그룹이 노예계약에 묶여 형편없는 돈과 대우를 받고 있었다.

‘이별공식’, ‘상심’ 등이 수록된 1집과 ‘찬란한 사랑(상심2)’ 등이 수록된 2집을 내고, 3집까지 내야 노예계약에서 풀려날 수 있었는데, 기획사에선 3집 대신 2.5집이라는 이상한 음반을 발표했다. 2집의 노래들이 절반 이상 들어가 있는 리믹스 앨범이었다. 그렇게 내도 팔리니까 낸 것이고, 3집을 내면 얘들을 풀어줘야 되니까 궁여지책으로 낸 게 아닌가 싶다.


Ref는 2.5집을 내고 활동을 하던 중 미국으로 공연을 간다. 그리고 거기서 잠적해버렸다. 

기획사와 연락이 안되는 와중에 언론을 통해 기획사와 노예계약을 했으며 앞으로는 함께 할 수 없다고 일방적으로 발표를 해버렸다. 

기획사는 뒤집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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