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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May 02. 2019

초상권 회사가 돈을 버는 방법

‘초상권’이라는 것은 사람의 얼굴에 대한 권리이다. 기본적으로 본인이 갖는 권리다. 타인이 함부로 그 사람의 얼굴(및 그 얼굴을 찍은 사진)을 이용할 수 없으며, 그럴 때는 초상권을 어느 분야에 써도 된다는 계약을 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자기 얼굴에 대해서 자기가 책임과 권리를 가진다. 

그렇다면 초상권을 관리하는 회사란 무엇을 하는 회사인가?

쉽게 말해서 우리 회사는 연예인 브로마이드를 팔아서 돈을 버는 회사였다. 연예인들은 우리 회사에 팬클럽 관리라는 골치 아픈 일을 공짜로 떠맡기면서, 대신 한두 달에 한번 정도 와서 사진을 찍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사진을 대형 브로마이드와 소형 브로마이드, 때로는 화보집으로 만들어 전국 문방구에 내려 보냈다. 그러니까 팬클럽 관리 대금 대신 초상권을 준 것이다. 

전속 사진가가 있고, 스튜디오도 있었다. 바쁜 연예인들은 한달에 한 번 시간을 내기도 힘들었고, 한가한 연예인들은 어차피 사진을 찍어봐야 팔리지도 않으니 굳이 자주 올 필요가 없었다. 이 세계도 승자독식이다.    



담당 연예인이 사진을 찍으러 오는 날은 담당자가 야근하는 날이다. 사진 찍을 때 보통 1~2시간 정도 체류하는데, 그 사이사이에 눈치 봐서 궁금한 것도 묻고, 인터뷰도 하고, 때로는 목소리도 녹음하고, 사인도 받는다. 그 목소리를 사서함에 넣기도 하고, 인터뷰 내용은 회보에 들어가고, 사인은 브로마이드 만들 때 집어넣는다. Ref는 워낙 잘 나갈 때라, 온다고 했다가 스케줄이 꼬여 못오거나 미루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내가 담당자였지만 실제로 Ref를 본 건 몇 번 되지도 않는다.

물론 내 담당 연예인이 올 때만 야근하는 건 아니다. 어쨌거나 우리에게도 연예인이란 만날 기회가 없는 사람들이니 다른 담당자의 연예인이 와도 괜히 남아서 옆에서 얼쩡거리면서 일 돕는 척 하며 구경했다.

우리로선 의상을 몇 벌 들고 와 갈아입으면서 찍어주면 좋겠지만, 스케줄에 찌든 연예인들이 그걸 잘 챙기지 못한다. 이건 지난번 잡지에 나간 의상 아니냐, 이것 말고 다른 의상은 안 가져왔냐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브로마이드 사진은 잡지의 사진과는 좀 달랐다. 패션 화보나 잡지는 포토그래퍼의 역량에 따라 과감한 시도를 하거나 특이한 분장과 조명, 독특한 포즈를 요구할 때가 많지만, 브로마이드는 오로지 팬들을 위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오빠들의 얼굴이 잘 나와야만 했다. 그래서 정면 사진이 많고, 정면이 아니더라도 얼굴만은 잘 나와야 했다. 역동적인 동작을 할 수는 있지만 우리 오빠가 정확하게 잘 보여야 한다는 원칙을 깨면 안된다.

주로 스튜디오 사진을 브로마이드로 만들었지만, 때로는 팬미팅에서 공연하는 모습이나 사인하는 모습 등을 찍어 브로마이드로 제작하기도 했다. 야외 촬영 사진은 스튜디오 사진과 다른 현장의 맛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찍은 사진은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보정한 뒤 사인도 넣고 인쇄해서 브로마이드로 만들어졌고, 그 포스터들은 트럭에 실려 전국 각지의 문구점으로 나갔다.    



하지만 솔직히 말한다면 우리 회사의 최대수입원은 그렇게 합법적인 루트로 판매하는 브로마이드 대금이 아니었다. 더 큰 수입원이 따로 있었다.

지금도 영화, 음악 등의 불법 파일이 판을 치듯이 그때도 연예인의 얼굴을 불법으로 갖다 쓰던 사람들이 넘쳐났다. Ref와 계약을 하고 광고를 찍기에는 돈이 많이 드니까 대충 브로마이드나 잡지에서 찾은 사진을 자기들 전단지나 판촉물에 넣어서 광고했다. 규모가 작은 치킨집, 식당부터 학생들 대상의 학원까지 업종도 다양했다. 당시 인기 많던 그룹이라 학생들에게 홍보물로 나눠주는 부채, 티슈 같은 곳에도 그들의 얼굴이 나왔다. 자기들은 큰 업체도 아니고, 대규모로 전국에 뿌리는 게 아니니까 몰래 써도 모를 거라 생각하고 쓰곤 했다. 

그런데 어쩌나? 우리는 팬클럽이 있는 걸. 그것도 전국망으로 퍼져 있는 걸. 

우리는 팬클럽 회원들에게 그런 홍보물을 보면 지체없이 연락달라고 했다. 그건 불법이고, 오빠들의 이미지가 훼손되는 중요사안이기 때문에 오빠들을 사랑한다면 꼭 신고해야 된다고 단단히 교육시켰다. 

그렇게 팬들로부터 불법 광고물 신고가 들어오면 우리 회사의 영업이사님과 사장님이 직접 출장을 갔다. 인쇄물을 확인하고, 그 업체를 방문하여 초상권에 대해 알리고, 소송을 걸겠다고 하면, 사람들이 얼굴이 새하얘져 싹싹 빌었다. 대부분 합의를 원했고, 그러면 사장님과 이사님은 합의금을 조정해서 받았다. 그 합의금이 바로 우리 회사의 주 수입원이었다. 한 번씩 걸릴 때마다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이 들어왔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찍어낸 인쇄물의 부수와 회사 규모에 따라 그 액수를 달리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가보면 차마 합의금을 내라고 말하기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때는 사장님이 지방 출장 갔다 빈손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돌잡이 갓난아기를 둔 부부가 전 재산을 다 털어 치킨집을 열었는데, 아무 것도 모르고 썼다고 싹싹 빌면서 울면, 아기 얼굴을 보고 마음이 약해져 그냥 돌아오는 식이었다.    


불법은 아니었지만 비겁한 짓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먹고 살고 있다. 지금도 그렇다.   

몇 년 전, 겁에 질린 아이들을 자살로 내몰았던 저작권 위반 소송도 변호사들이 먹고 살기 위해 발견한 틈새 비즈니스였다. 무협지나 소설, 만화 등을 스캔해서 온라인 카페 등에 올린 사람들에게 고소장이 일괄적으로 접수된다. 그러면 경찰에서 형식적으로라도 조사가 들어가고, 경찰에 불려간 아이들이나 보호자가 놀라서 연락을 하면 합의금을 뜯어내는 일을 조직적으로 하는 변호사(혹은 로펌)가 있다고 들었다. 저작권 위반도 맞고, 복제 및 온라인 전송은 불법도 맞지만, 그걸로 돈 뜯어내고 그 수수료로 먹고 살고, 때로 아무것도 모르는 미성년자가 고민하다 자살까지 한 사건이었다. 이런 저작권 위반 소송은 출판사나 작가들이 주도하는 게 아니라 변호사가 주도한다고 들었다.

심지어 며칠 전에는 웹소설 원천 콘텐츠를 공동 소유하자는 사업가를 만났는데, 그 역시 웹소설 저작권을 가지고 있으면 복제하는 사람들을 걸어 합의금으로 먹고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부끄러움도 없이 우리(작가들) 앞에서 꺼내더라. 20년 전 우리가 회사가 하던 짓이 아직도 이쪽 방면에는 여전히 횡행하고 있구나 싶어 마음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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