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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May 29. 2019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미안해

Ref 사태에서 한 일 

사장님이 내게 전화를 해서 월요일 출근할 때는 우리 사무실이 아니라 팀기획 사무실로 가라고 했다. 팀기획이 바로 Ref의 기획사다. 나는 Ref의 처지에 동정을 느끼고 있었지만, 우리 회사에 돈을 주는 사람은 Ref 멤버들이 아니라 팀기획이었다. 그러니 이런 때에 우리가 도와야 하는 쪽도 Ref 멤버들이 아니라 팀기획이었다.


처음 가보는 팀기획에서 처음 보는 사장님(그때까지 팀기획 사장님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과 소파에 앉아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열심히 메모했다. 계약서도 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긴 계약기간이었다.) 

그룹을 끌고 다니며 운영하는데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들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사장님의 입장을 듣고 ‘Ref 사태에 대한 팀기획의 입장’이라는 글을 쓰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보도자료다. 태어나서 처음 써보는 보도자료였다. 회사로 돌아와 원고를 작성하고, 팀 기획에 보내 수정하고 컨폼을 받아 내 글은 여러 연예매체에 전달되었다. 그 시기 연예주간지 및 스포츠 신문에 실렸던 ‘Ref 사태에 대한 팀기획의 입장’이라는 글은 내가 썼던 글이다.


너무 오래 전 일이고, 스크랩을 해놓지도 않아서 내가 어떤 글을 썼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최대한 기획사의 입장에서 오해 없게, “우리도 할만큼 했다, 이렇게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라는 것을 설명하고, 오해가 있다면 돌아와서 대화로 해결하자고 썼다. 지금 연락도 없이 돌발행동을 한 것에 대해 넌지시 책임을 전가하면서 대화의 창구를 열어놓는 식이었다. 


그런 글을 쓰면서도 나는 Ref의 편이었다. 나도 회사로부터 돈을 받는 월급쟁이 입장이었기에 그 긴 계약기간과 앨범 1장 팔아도 가수 1인당 돌아가는 수익이 10원도 안되는 계약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월급주는 회사에서 시키는 일이니 하긴 했지만, 내가 왜 내 담당 연예인들을 비난하는 이런 글을 써야 하나 자괴감도 들었다. 


Ref는 꽤 오래 미국에 있었고, 그들이 돌아오지 않는 바람에 나는 담당 연예인이 없어져 한가해졌고, 우리 회사는 Ref를 대체할 다른 연예인들을 발굴하느라 바빠졌다. 해외에서 잠적하고 사태를 키웠지만 Ref가 팀기획을 이기지는 못했다. 그들은 다시 돌아와 화해하고 3집도 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우리 회사가 잡지사로 바뀐 뒤였다. 


나는 요즘도 스캔들이나 사회적 물의를 빚은 연예인들이 사과문을 내면 언론에서 요약한 토막글 말고 소속사에서 낸 전문을 꼼꼼히 읽는다. 단어 하나에도 신경을 써서 대중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진심이 충분히 전달되도록 고민하며 머리 쥐어뜯었을 카피라이터들의 모습이 그 사과문 뒤에 어른어른 비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동병상련의 정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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