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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Jun 07. 2019

양군이 신인가수를 찾습니다

딱 두번 만들었던 매체 광고  

넓은 의미에서 카피라이터는 상업적인 모든 텍스트를 쓰는 사람이지만, 협의의 카피라이터는 광고문안 작성가이다. 나는 그 회사에서 팬클럽 회보도 만들고, 팬시상품에 들어갈 영어 문구도 쓰고, ‘Ref 사태에 대한 팀기획의 입장’도 썼지만, 협의의 카피라이터로서 한 일은 딱 한번 밖에 없었다. 

연예주간지에 나갔던 ‘양군이 신인가수를 찾습니다’ 광고였다.


서태지와아이들이 공식해체한 뒤 서태지는 미국으로 떠났고, 양현석과 이주노는 각자 연예기획사를 차려 홀로서기를 했다. 

당시 이주노의 기획사에선 영턱스클럽을 키워서 인기를 얻으며 성공 가도를 달리는 중이었고, 양현석의 기획사인 현기획에서 나온 킵식스는 인기가 없었다. 우리 회사는 두 그룹의 초상권 관리를 다 맡았는데, 킵식스는 브로마이드가 거의 나가질 않았다.


그래서 양현석은 다시 신인가수를 키우기 위해 신인가수 찾는 광고를 잡지에 내보겠다고 했다. 나는 신이 나서 온갖 헤드카피를 쓰고, 바디카피를 쓰고, 광고 기획을 해서 가져갔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제2의 서태지와아이들을 찾습니다’라거나 ‘진흙 속의 다듬어지지 않은 진주를 찾습니다’류의 카피를 써갔던 것 같다.

내가 쓴 서브카피와 바디카피는 살아남았지만, 헤드카피는 양군이 쓴 대로 바뀌었다. 

‘양군이 신인가수를 찾습니다.’


너무나 평범한 카피에 나는 힘이 쭉 빠졌다. 저것보다는 내가 쓴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광고판에서 20여년을 굴러온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서태지 이름을 떼고 혼자 힘으로 일어서고 싶었던 양군에게 ‘제2의 서태지와아이들’ 운운하는 카피는 꼴보기 싫었을 것 같다. 그 카피가 맞지 않아서라기보단 광고주의 마음을 읽지 못한 카피였다. 또한 양군이라는 이름의 가치가 크다고 생각하는 광고주 입장에선 저런 직선적인 카피가 더 잘 먹힐 거라고 확신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게재된 광고가 부끄러웠다. 선글라스를 낀 양현석의 사진을 큼직하게 넣고 ‘양군이 신인가수를 찾습니다’라고 내보낸 광고가 나의 첫 잡지 광고라니!! 이렇게 촌스러울 수가!! 싶었다. 의외로 광고는 성공적이었다. 그 광고를 보고 오디션 테이프를 보낸 사람들이 많았고, 1년 뒤 현기획에선 지누션이 나와 성공했다. 그리고 기획사의 이름도 MF기획, 양군기획 등으로 바뀌다가 지금은 아시다시피 YG엔터테인먼트가 되었다. 


당시 만들었던 드림 콘서트 광고 


1년 뒤 생애 두 번째 매체 광고를 만들었다. 

이번에는 신문광고로, 당시 인기를 끌었던 수많은 스타들을 대동한 대규모 콘서트 중 드림 콘서트 광고였다. 환경콘서트 ‘내일은 늦으리’가 인기를 끌면서 연예제작자협회에서 그것을 따라 만든 게 ‘드림 콘서트’였다. 당시 사장님과 연제협 대표님이 아는 사이라 광고를 만들게 됐는데, 그때도 역시 내가 머리를 쥐어짜내 써간 헤드카피는 다 날아가고 드림 콘서트 로고만 큼지막하게 박혀서 나갔다. 심지어 연예인 사진 한 장 들어가지 않았다. 


카피라이터라는 직함을 달고 매체 광고는 달랑 두 번 해봤는데, 그 두 번 다 내가 쓴 헤드카피가 날아가고 광고주의 입김에 따른 카피가 실리면서, 나는 기가 죽었다. 

광고교육원에선 나름 공부 잘한다고 했던 내가 알고보니 카피라이터로서의 재주가 없구나 좌절했다. 

카피라이터로 20년 동안 밥 먹고 살아온 이제와 돌이켜 보면 광고란 광고주 마음이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좌절할 필요도 없고 실망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드라마나 영화나 광고에서 보여주던 카피라이터의 모습이 너무 이상화되어 있어 내가 현실을 오해한 거였다. 그때의 나를 보게 되면 그게 옳았다고, 그러니 니가 좌절할 필요는 없다고 어깨나 툭툭 두드려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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