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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Aug 23. 2019

콘서트의 재미를 알려준 신해철과 윤도현

자유콘서트 취재기 

팝을 하나도 모르던 내가 해외 내한 가수들 취재를 다니며 팝을 알아갔듯이 매달 공연장이나 대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콘서트도 내 담당이라 일을 하다보니 라이브 콘서트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나는 학창시절 락음악을 안좋아했다. 남자 가수들이 치렁치렁한 머리에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나와 거친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댄다는 것이 락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었다. ‘콘서트’라고 하면 록커가 바로 연상되었으므로 당연히 콘서트도 즐기지 않았다.

잡지기자가 되기 전까지 유일하게 갔던 콘서트가 김광석 콘서트다. 대학 시절, 대구를 무대로 활동했던 김광석이 콘서트를 자주 열었고, 우리 학교에도 한번 왔었다. 김광석이 그렇게 말을 재밌게 하는 줄 몰랐고, 왜 그를 ‘콘재(콘서트 재벌)’라고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김광석은 록커가 아니었고, 포크 계열의 가수였기에 일반 락콘서트에 대한 선입견은 깨지지 않았다.


내가 대규모 콘서트의 재미를 느끼게 된 것은 신해철 덕분이다. 

락음악을 싫어한다면서도 무한궤도 시절의 신해철을 좋아했다. 내가 기자를 할 무렵엔 무한궤도는 해체되고 신해철이 넥스트라는 팀을 꾸린 뒤였다. 우리 회사에 넥스트가 와서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는다는 소식에 담당기자에게 읍소를 하며 나도 껴서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졸랐다. 선배기자는 평소 그런 부탁을 일절 하지 않던 내가 그러자 신기했는지 알았다며 인터뷰할 때 동석을 허락했다. 

드디어 인터뷰 시간이 되었다. 넥스트가 들어왔고, 선배는 내 등을 두드리며 “얘가 신해철 씨 팬이래. 악수나 한번 해줘.”해서 나는 신해철의 축축한 손을 잡고 악수도 할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신해철이 자기들끼리 노는 판을 한번 벌여봤으니 5월에 고려대에서 하는 ‘자유’라는 콘서트에 놀러 오라고 했다. 신해철의 초대를 받았는데 안 갈 수가 있나. 당연히 가야지. 자유 콘서트는 첫 회였지만 신해철이 기획을 했고, 윤도현, 김경호, 시나위 등 한국의 내로라하는 락가수들이 총출동했기에 시작하기 전부터 핫이슈였고, 콘서트 자체도 성공적이었다. 제목이 ‘자유’였던 이유는, 당시 대중음악계의 큰 이슈였던 대중가요 검열철폐를 주장했던 콘서트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잡지에도 지면을 4p나 확보할 수 있었다.

자유콘서트에 참여했던 가수들의 면면


그렇게 5월의 어느 밤에 고려대 노천극장에 갔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신해철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윤도현에게 홀딱 빠졌다. 그 자리에 가기 전까지 나에게 윤도현이란 ‘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무대 위를 뛰어다니는 요상한 노래 <타잔>을 부르는 가수였다. 노래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전혀 관심 없었고, 그냥 그 노래 자체가 이상했다. 전혀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런데 TV 화면을 통하지 않고 직접 무대에서 라이브로 노래하는 그는 정말 멋졌다. 다들 한 노래하는 가수들이 모였는데도, 그 중에서 군계일학으로 노래를 잘했다. 성량 풍부해, 노래 잘해, 카리스마 작렬해! 그는 무대 위에서 관객들을 쥐락펴락했고, 객석을 흥분의 도가니탕으로 들끓게 만들었다. 평소 찌질하기 짝이 없는 노래라고 생각했던 <타잔>마저 라이브로 들으니 너무 멋진 노래였다.

나와 함께 취재하러 간 사진기자는 남자였는데도 윤도현에게 홀려서 필름 한 롤을 온통 윤도현만 찍어댔다. 가수들이 10팀 이상 나오는데 윤도현을 너무 많이 찍어댄 바람에 나중에 필름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밴드명을 윤도현밴드에서 YB로 바꿀 무렵의 윤뺀^^

TV에선 가수의 노래 실력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모니터에 클로즈업 되는 외모, 눈웃음, 춤, 조명 같은 것들로 커버된다. 하지만 라이브 콘서트에선 노래를 잘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가수의 생짜 매력도 중요하다. 윤도현을 보면서 TV를 거치느냐 아니냐에 따라 사람의 매력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하는 걸 그때 알았다.

나는 이후 10여년 정도를 윤도현의 팬으로 살았다. CD가 나오는 족족 샀고, 윤도현이 출연하는 뮤지컬을 봤으며, 그의 콘서트에 줄기차게 쫓아다녔다. 그래서 김제동이 방송에 나오기도 전에 김제동을 알았고, 윤도현 덕분에 전인권과 강산에와 김씨도 알게 됐다.

넥스트의 김세황의 매력을 알게 된 것도 자유 콘서트 덕분이었다. 언제나 보컬 외에는 눈여겨 보지 않는 내가 김세황의 기타 리프에 뻑이 갔다.




이렇게 자유 콘서트를 통해 콘서트의 매력에 흠뻑 빠진 나는 이후 기회만 되면 콘서트 취재를 다녔다. 소극장에서 하는 콘서트는 소극장에서 하는대로 매력이 있었고, 야외 공연장에서 하는 콘서트는 야외대로 매력이 있었다. 방송에선 인형처럼 딱딱하게 모범적인 소리만 늘어놓던 가수들이 무대에선 얼마나 귀엽고 솔직해질 수 있는지도 알았다.


내가 기억하는 콘서트는 홍대 앞 어느 지하 극장 겸 공연장에서 사람들 틈에 짓눌려 봤던 어어부밴드의 공연 (날개 달린 옷을 입고 ‘짬뽕’을 외쳐댔던 장영규의 땀 뻘뻘 흘리던 모습이 기억난다), ‘자탄풍’이라 불리던 자전거 탄 풍경이 티켓값과 노래 곡수를 환산하여 본전 뽑게 해드리겠다며 무려 30곡을 메들리로 불러젖혔던 대학로 소극장 콘서트, 63빌딩에서 열렸던 삐삐롱스타킹 콘서트에 갔다가 내 키만한 스피커 앞에 앉아 고막 찢어질 뻔 했던 일 등이다.


자유콘서트의 대대적인 성공으로 환경콘서트, 드림콘서트 등 비슷한 대규모 콘서트가 기획되었다. 하지만 자유콘서트만큼 재미는 없었다. 대체로 아이돌들이 출연하다 보니 라이브로 음악을 연주하기 보단 MR을 트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심하게는 AR을 틀어놓고 춤추고 입만 벙긋거려서 TV방송과 별 다를 게 없는 무대를 선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DJ DOC쯤 돼야 돌발행동도 하고 돌출발언도 하지 아이돌들은 그렇지 않았다. 다만 그때도 잠실주경기장을 가득 메운 팬들의 함성과 열렬한 응원만은 분위기를 북돋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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