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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Aug 30. 2019

자우림이라는 이름을 싫어했던 자우림

자우림은 나에게 특별한 가수였다.

연예기자들은 직업적으로 TV 가요 프로그램을 본다. 자기 담당 취재원이 방송에서 어떤 행동을 하고 말을 했는지 모니터하는 것이다. 그렇게 봤던 가요프로그램에서 자우림을 처음 봤다. <꽃을 든 남자>라는 영화의 주제가인 ‘헤이헤이헤이’를 불렀는데, 김윤아의 매력이 장난 아니었다. 그녀의 눈두덩이에 보랏빛으로 빛나던 아이샤도우 색깔까지 아직 선명하다. 그 눈빛이 TV 모니터를 뚫고 나올 것 같았다. 

자우림의 데뷔 무대. 나는 김윤아에게 홀딱 반했지.


다음 날 회사 가서 자우림 봤냐고, 걔들 대형 신인이 될 것 같다고 얘기했고, 선배들이 전화 몇 통 돌린 끝에 자우림의 기획사를 알아냈다. 연예계 보다는 연극계에서 알려진 기획사였다. 대학로에 적을 두고 콘서트나 운동권 공연, 국악 등을 하는 곳이었다. 대중가요 기획사가 아니었고, 메이저기획사도 아니었으므로 자우림은 나에게 배당되었다.

처음 4명의 멤버였던 자우림. 

처음 방송국에서 자우림을 만난 날을 기억한다. 대기실에서 녹화를 마치고 나온 김윤아는 적이 실망스러웠다. TV에서 보던, 사람 빨아들일 것 같은 매력이 실제로는 전혀 없었다. 연예기자를 하며 실제로 연예인을 만나면 그들이 얼마나 말도 안되게 예쁘고 아름다운지 놀랄 때가 많다. TV에선 평범해 보이는 연예인도 실제로 만나면 너무나 예쁘다. 그런데 김윤아는 TV보다 실제가 못했다. 그런 연예인은 처음이었다. 

나중에서야 그게 무대 위에 올라가면 뿜어나오는 아우라였단 걸 알게 됐다. 평소에는 그냥 우리처럼 일반적인 사람이고, 무대에 올라가야 카리스마가 뿜뿜하는 천생 가수였던 것이다.

이들은 아이돌과 달리 나이대가 좀 있었다. 

원래 CCR(유명 외국밴드 이름이지만, 알고보면 ‘초코크림롤’의 약자였다)이라는 밴드를 남자 세 명이 하고 있었고, 여기에 솔로 데뷔를 하려고 준비 중이던 김윤아가 보컬로 들어가면서 자우림이 탄생했다. 

이들은 자우림이라는 밴드명을 낯부끄러워했다. ‘보랏빛 비가 내리는 숲’이라는 뜻으로 ‘헤이헤이헤이’를 부르느라 급조한 이름이었다. 매번 자기들 밴드명을 설명하면서 겸연쩍어 했다. 자기들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 낯부끄러운 이름으로 무려 25년 이상 밴드 활동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솔직히 그때 김윤아가 바로 솔로 데뷔를 할 줄 알았다. 나머지 멤버들과 색깔이 맞지 않는 것 같았고, 밴드가 아니라도 김윤아는 충분히 대성할 인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도 그 이름으로 여전히 활동 중이다. 세상 일이란 참 알 수가 없다. 함께 시작했던 것도 아니고 기획사에서 붙여준 멤버들이었는데, 어지간히들 마음이 맞았으니 지금까지 별 문제 없이 함께 해오고 있는 것 아닐까?

우리 잡지에 수록된 사진


연예인이라기보단 일반인 같던 그들은 인터뷰하러 와서 빵이나 간식을 사다놓으면 되게 반가워하면서 먹었다. 우리 잡지사 이름을 대면 “아..거기 가면 먹는 거 많아서 좋아요.”하기도 했다. 이선규, 김진만, 구태훈. 그 중에서도 구태훈 생각이 많이 난다. 넷 중 유일하게 지금은 활동하지 않는 멤버지만, 구태훈은 나와 동갑이었고, 원래 회사원이었다가 노래를 하겠다고 회사를 그만둔 사람이었다. 그 회사가 연하나로라는 이벤트 회사였다. 나와 함께 광고 공부를 했던 동기 중 하나가 연하나로에 입사했기에 나중에 그 친구를 만났을 때 구태훈 이야기를 꺼냈더니, “구대리님”이라고 지칭하며 반가워했다. 대리님이 가수가 될 수 있다니! 신선한 발견이었다. 

물론 그들의 무대는 최고임! 너무 잘함!

연예인들은 처음부터 우리와 다른 종이라고, 어릴 때부터 노래와 춤에 빠져 연예인을 꿈꾸다가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우림을 보면서 회사원이었다가도 가수가 될 수 있고, 자기들끼리 좋아서 밴드 하다가 TV에 나올 수도 있고, 그렇게 헐렁하게 만든 밴드가 무려 25년을 가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어쩐지 좋다. 특히나 요즘처럼 초등학교 때부터 기획사의 연습생으로 길러지거나 방송국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눈물 나는 사연팔이를 해야만 겨우 기회가 있을까 말까 하는 이 시대에 자우림은 존재만으로도 위안이 된달까. 좋아하는 거 꾸준히 열심히 하고, 좀 늦은 나이에 데뷔해서도 이렇게 오래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거. 그걸 보여주는 밴드라서 좋다.


P.S _ 물론 나가수 때 다들 느꼈겠지만, 워낙 잘하는 밴드이기도 하다. 이 바닥에서 재능은 기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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