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요 Aug 13. 2019

최애배우 김현주

두번째 이야기 

담당기자(=나)와 사이가 좋다보니 우리 잡지에는 매달 김현주의 화보나 소식이 실렸다. 어느 달엔 청담동 골목길에서 남자배우와 현주가 스토리 형식의 화보를 찍은 적이 있다. 그 화보를 찍던 현장에 내 담당 댄스그룹 구피가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차문을 열고 인사를 했다. 평소 나와 크게 친했던 것도 아닌데 굳이 인사를 하고 가는 게 이상했지만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다음 호 구피의 인터뷰 때 멤버 중 한 명이 넌지시 내게 말했다. 그날 청담동에서 사진 찍던 여자가 누구냐고. 신인배우 김현주라고 했더니 연락처를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첫눈에 반했다는 것이다. (어쩐지...평소답잖게 굳이 썬팅된 차문을 열고 인사를 하고, 친한 척을 하더라니!!) 나는 잠시 고민하다 어차피 청춘남녀들의 연애사업에 이 정도 다리는 놓을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어 삐삐번호를 건넸다. 

그리고 다음 달 인터뷰 때 현주에게 그 소식을 전했다. 구피의 누구누구가 너를 좋아하더라, 그날 청담동에서 우리 화보 찍는 거 보고 첫눈에 반했다더라, 그래서 너의 삐삐번호를 줬는데 혹시 연락 왔니? 물었더니 연락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 구피 인터뷰 때는 번호 받아가 놓고 왜 연락을 안했냐고 물었고, 그는 그게 쉽게 되는 게 아니라며 수줍게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니 연예인들도 좋아하는 여자에게 연락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구나 싶었고, 장난으로 가볍게 번호를 받은 건 아니구나 싶어 적이 안심이 됐다. 

그 다음 인터뷰 때는 현주가 휴대용 CDP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나타났다. 자기가 무슨 음악 듣는지 아느냐고 묻더니, 배시시 웃으며 구피 신보를 듣는다고 했다. 

“언니한테서 구피 이야기 듣고 나니까 관심이 가잖아요? 그래서 CD 샀어요. 노래 좋더라구요.”

아...정말이지 찬란한 청춘들이었다. ㅎㅎㅎ 둘이 따로 만나 연애를 했는지, 아니 연락을 주고받기는 했는지 나는 전혀 모른다. 그저 예쁘고 어린 선남선녀들의 큐피드가 되어 이 소식과 저 소식을 슬쩍슬쩍 전해주면서 그들의 속마음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당시 청담동에서 찍었던 스토리텔링 형식의 화보 

그렇게 나는 솔직하고 발랄한 배우 김현주의 팬이 되었다.

연예계를 떠나온 뒤에도 현주가 출연하는 드라마라면 다 챙겨봤고, 간간이 소식이 들리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현주는 내 기대보다 훨씬 크게 성공했고, 한 때는 시청률의 여왕으로 불리기도 했다. 어떤 과장된 캐릭터를 맡아도 김현주가 연기하면 일말의 진정성이 느껴져 거기에 업히게 된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만큼 부침도 겪었다. 언젠가 휴먼다큐 프로그램에서 현주가 매니저에게 괴로워하며 한편으로는 미안해하며 “내가 성질 드럽다는 이야기 듣는 것 잘 안다, 나도 그게 너무 속상하지만 바쁘고 피곤할 때면 어쩔 수 없다”는 하소연 하는 모습을 봤다. 그녀의 성격은 좋으면 좋았지 결코 나쁜 성격이 아닌데 어쩌다 스스로 저렇게 이야기할 정도가 되었나 안타까웠다. 신인시절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청량한 미소를 짓던 사람, 자기가 나서서 함께 공연했던 배우들과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모임도 만들고 주도적으로 이끌던 낙천적이고 쾌활하고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jtbc 드라마 '판타스틱'에서 현주는 시한부 드라마 작가 역할로 나왔다. 

잡지사를 관두고 5~6년 후, 나는 드라마 작가 지망생이 되었다. 시나리오 강좌를 들으며 드라마와 시나리오를 썼다. 그때 나의 꿈은 내 시나리오의 주인공으로 김현주를 캐스팅해서 작가와 배우로 다시 만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데뷔는 쉽지 않았고, 회사를 다니며 시나리오를 쓰며 훌쩍 10년의 시간이 흘러버렸다. 딱 한번, 현주가 출연하면 좋을만한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사에 판 적이 있지만, 그 영화는 제작되지 않은 채 시나리오 상태 그대로 제작사의 책상 서랍 속에 잠자고 있다. 그 시나리오를 팔고 얼마 지나지 않아 TV를 틀었더니 내가 쓴 시나리오와 같은 설정의, 시한부 판정을 받은 드라마 작가 역할로 현주가 출연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느꼈던 실망감이란!!

나의 꿈은 실현되지 못하고 꿈으로 끝나겠구나 거의 단념하고 있었는데, 올해 예기치 않게 방송국 드라마 공모전에 당선이 되었다. 내가 방송국 공모전에 응모하기 시작한 지 17년 만이다. 나는 요즘 인턴작가로 매달 2편의 드라마를 써내느라 허덕거리고 있다. 이 인턴작가 기간을 잘 보내고, 기회가 온다면 언젠가는 김현주가 출연하는 드라마를 쓰고 싶다. 그렇게 작가와 배우로 다시 만나고 싶다. 꿈은 끝나지 않았다.


이전 18화 최애배우 김현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