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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Jul 30. 2019

같은 옷의 원빈으로 6페이지 채운 썰

가끔 정말 혜성처럼 등장하는 신인들이 있다.

내가 연예기자를 할 때는 원빈이 그랬다.

주말 저녁에 하는 버라이어티쇼 ‘슈퍼선데이’의 한 코너에서 교복입은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단막극 형식으로 방영되었는데, 거기 잠깐 스쳐가는 조연으로 원빈이 처음 얼굴을 드러냈다. 눈 밝은 시청자들, 그 중에서도 10대들은 “저 남자 누구냐? 너무 잘 생겼다.” 난리가 났고, 당연히 연예잡지 기자들의 레이더도 움직였다. PD 역시 그 반응을 몰랐을 리 없고, 한번 출연시켜본 원빈의 비중은 매주 늘어갔다. 

그리고 그는 곧 버라이어티쇼의 한 코너가 아니라 밤 10시대 트렌디 드라마에서 비중있는 조역을 맡게 된다. 당시 드라마퀸이던 김희선 주연의 드라마 <프로포즈>에서 골든 리트리버를 끌고 다니는 신비한 동네청년으로 정식 드라마 데뷔를 한다. 이게 불과 한두 달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원빈이 슈퍼선데이에 얼굴을 비춘 그 주에 우리는 바로 섭외를 진행했고, 다행히 아직 신인이던 원빈은 우리 잡지사에 와서 사진을 찍고 인터뷰하기로 약속했다. 매니저가 오기 전에 연락해서 촬영용 의상을 몇 벌 준비하면 되냐고 물었는데, 아직 신인이라 1p가 배정되어 있었으므로 한 벌만 가져오시면 된다고 대답을 했다. 시간을 되돌리는 시계가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 최소 4벌은 준비해오시라 했을 것이다. 그랬어야만 했다. 대체 내가 무슨 배짱으로 한 벌만 준비하라고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속상하다. 매니저도 내 대답을 듣고 속상했음이 틀림없다. 한 벌만 가져오라는 건 몇 페이지 안준다는 뜻이었으니 김샜다는 듯이 알았다며 냉랭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 매니저는 연예인의 인기를 등에 업고 위세 떠는 걸로 유명했다. 그런 사람에게 옷 한 벌만 준비해도 된다고 말할 때 얼마간 통쾌하기도 했다. 물론 그 통쾌함은 곧 내 발등을 찍는 도끼로 둔갑했지만...^^;;

이 기사는 내가 썼지만 낯뜨거워서 다시 읽을 수가 없다.ㅠ.ㅠ

실제로 본 원빈은 정말 잘 생겼고, 정말 과묵했다.

얼마나 과묵했냐면 뭘 물어도 “예” 아니면 “아니오”였다. 그에 대한 부연설명이 없다. “예”와 “아니오”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에는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좋아하는 영화를 물으면 “테러리스트.” 끝. 그 영화가 왜 좋았냐고 물으면 “최민수 형이 멋있으니까요” 끝. 이런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 질문은 점점 장황해지고 설명조가 되어갔고, 그러든가 말든가 그의 대답은 언제나 한 마디 안에서 끝났다. 매니저가 대신 대답해주기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잘 생긴 얼굴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이냐며 이렇게 비협조적인 인터뷰이는 처음이라며 투덜거리게 되었다.

다행히 1p라 짧은 인터뷰를 토대로 기사를 써서 넘겼고, 잘 실렸다.


문제는 그 다음달.

원빈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졌고, 편집회의에서 원빈에게 최소한 8p는 줘야한다는 결론이 났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당장 전화했더니, 매니저는 거들먹거리며 시간이 없어 인터뷰 못하겠다고 거절했다. 콧대높은 매니저가 전달에 그 수모를 당했는데 곱게 인터뷰해주겠다 할 리 없다. 

간혹 매니저나 코디네이터처럼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고 24시간 붙어 다니다보면 내가 그인지 그가 나인지 경계가 흐려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연예인을 과보호하고 “우리 언니(혹은 오빠)가 안좋아한다”, “싫어한다”면서 연예인의 입장은 물어보지도 않고 앞서서 쉴드치고, 일의 진행을 막는다. 그 정도면 괜찮은 편이고, 때로는 자기가 그 연예인이라도 된 양 까탈스럽게 굴고 특별대우를 바라는 경우도 많다. 밤늦게 촬영하니까 배고플까봐 연예인을 위해 피자를 시켜놨는데, 코디들이 다 먹고, 먹으면서도 이 피자는 맛이 있네 없네 불평하고, 그 상황을 연예인이 대신 사과하는 경우도 있었다. 기자들은 돌아서서 분통을 터뜨리곤 했다.

촬영용 옷 한 벌이면 족하다고 했을 때부터 마음이 상했던 매니저는 원수를 갚아줄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미안하다는 기색도 없이 귀찮아하며 거절했고, 이후로도 거듭 연락했지만, 급기야는 내 전화를 피하기 시작했다. 마감은 다가오는데, 어떤 수를 내도 방법은 없고, 까딱하면 8p를 빵꾸내게 생겼다. 

편집장은 일단 ‘우리들의 이야기’ 현장취재를 나가라고 했다. 그러면 얼추 2p 정도는 채워질테고, 나머지 6p는 니가 발로 쓰든, 소설을 쓰든 메꿔내라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안개 자욱한 어느 초겨울 아침에 일산의 허허벌판에 내렸다.

그날 따라 안개가 자욱한데, 버스에서 내린 곳은 추수가 끝난 논바닥이었다. 그래서 내게 일산의 첫 이미지란 안개와 허허벌판이다. 지금의 발전한 일산을 생각해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렇게 해서 찾아간 곳은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본 것 같은 서양식 단독주택 마을. 요즘의 펜션 같은 집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당시에는 펜션이라는 숙소 형태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 집들을 뭐라 불러야 할지 몰랐다. 그저 “와...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사는 집 같다.”했다. 이제까지 봐온 한국의 집들과 달랐다. 높은 담벼락 대신 나무 울타리라니! 삼각형 지붕이라니! 게다가 마당의 빨간 우체통은 다 뭐야? 마치 헐리우드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그 집들 사이에서 원빈과 진재영이 단막극을 찍고 있었다. 촬영 현장에서 틈을 내어 인터뷰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원빈은 자기 촬영이 끝나면 바로 차에 들어가 모습을 감췄다. 나뿐 아니라 수많은 매체의 기자들이 벌떼처럼 와 있었고, 그들 모두가 원빈과 인터뷰를 원했으니 특정 매체만 인터뷰할 바에야 아무하고도 인터뷰를 안하는 게 나았다. 

결국 나는 거기서 원빈의 촬영 장면만 보고 인터뷰는 진재영과 했다. 얼추 촬영 스케치를 꼼꼼하게 쓰는 걸로 겨우 2p를 메꿨다.

이것이 문제의 팥죽색 수트와 청록색 배경지 ㅠ.ㅠ 

그러고도 6p가 남았다. 미칠 것 같았다.

그 짧은 한 번의 인터뷰로 1p를 채우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추가된 인터뷰는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같은 내용으로 6p를 채우라니, 소설이라도 써야할 판이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그 짧은 인터뷰의 행간에서 뭔가 놓친 것이 없나 살펴보고, 그달 이후 TV에 출연한 원빈의 모습을 미사여구 동원하여 스케치해서 넣고, 하여튼 온갖 방법을 동원해 어찌어찌 6p를 메꿨다. 편집장도 인터뷰 할 수 없었던 저간의 사정을 알고 있기에 가타부타 말없이 오케이했다.

문제는 기사가 아니었다. 사진이었다. 인터뷰를 하지 못했다는 건, 새로 찍은 사진 대신 지난 달에 썼던 사진을 재탕해야 된다는 얘기다. 그것도 옷을 한 번도 갈아입지 않고 똑같은 옷 입은 사진을 무려 6p에 걸쳐 실어야 한다. 아무리 포토샵을 하고 뭘 만들어붙여도 밋밋할 수밖에 없고, 같은 업계 사람들이 보면 대번에 “얘네 인터뷰 못했네. 지난달 사진 재탕했네.” 할 것이고, 연속 2달 동안 잡지를 사는 독자 역시 “뭐야? 지난달이랑 같은 옷이네?”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원빈의 팬은 더 이상 우리 잡지를 살 일이 없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 달에 원빈은 청록색 배경지 앞에, 체크무늬 소파를 두고 이러저러한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팥죽색이 살짝 가미된 회색 양복에 티셔츠를 받쳐 입고, 데뷔 당시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한쪽 눈을 가리는 긴 앞머리 상태였다. 촬영 현장에서 볼 때도 저 촌스런 양복와 티셔츠의 매치는 뭐지 싶었고, 배경지와 소파도 패션과 안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한번 보기도 싫은 그 총체적 난국의 사진을 무려 두 달 동안, 7p나 보고 있으려니 속이 쓰렸다.

이후 원빈은 우리 잡지에 나오지 않았다. 우리도 마음이 상할대로 상했기에 원빈의 팬은 놓고 가기로 했다. 이런 일을 겪고 보니 각 매체마다 어떤 일로 특정 연예인과 관계가 틀어지고, 이후에 그 연예인은 그 매체에 나오지 않는 일이 꽤 자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몰랐다가 내가 한번 겪고 나서 눈에 보이게 된 사실이다. 


내가 노련한 기자였다면 지난달, 매니저가 전화했을 때 옷을 서너벌 가져오라고 해서 갈아입고 찍게 했을 것이다. 그 중 가장 나은 사진으로 실었을 것이고, 정작 잡지가 나와서 1p 밖에 안실렸다고 매니저가 항의전화를 하면, 그건 편집장 권한이라 내가 힘이 없어 죄송하다며 넘겼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유도리를 가지기에 너무 경력이 모자란 기자였고, 당시 싸가지 없기로 유명한 원빈 매니저와 기싸움을 했고 패했다. 이 기록은 바로 그 완패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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