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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Jul 23. 2019

신입기자가 신인가수 만나서 눈물 흘린 썰

리아와 장혁의 신인시절 

신입기자에게 배당되는 연예인은 대체로 신인들이다.

나는 잡지사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담당기자’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한 연예인에 대한 기사를 형편에 따라 돌아가며 다른 기자가 쓴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연예인에게는 매체마다 담당 기자가 있다. 거꾸로 말하면 기자들에게는 담당 취재원이 있다. 한 매체에서 특정 연예인은 특정 기자와만 인터뷰를 한다. 사람의 일이란 관계를 통해 발전해나가기 때문에 얼굴을 알고 친한 기자에게 속내를 털어놓게 되지, 처음 보는 낯선 얼굴과 스스럼없이 대화하기는 힘들다. 더구나 조그만 일도 침소봉대하여 소문이 부풀려지는 연예계에선 더욱 그렇다. 기자들 입장에서 봐도 담당 연예인이 있다면 그 사람에 대한 공부만 하면 되는데, 모든 연예인을 맡고 있다면 모두에게 관심을 쏟고 공부해야 하니 에너지 낭비다. 

그래서 처음 잡지사 기자가 되었을 때는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 이를테면 박진영, 신해철, 이적 등을 인터뷰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차 있었다가, 그들에게 담당 선배기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했다. 거물들은 선배 기자와, 나는 신인들과 일해야 했다. 하지만 선배들도 현재의 슈퍼스타들이 신인일 때 맡아서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같이 커나갔으니, 나 역시도 언젠가는 대형 스타가 될 신인들과 함께 커나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맡았던 신인 중 가장 유명해진 사람은 배우 김현주인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은 리아와 장혁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리아

요즘은 리아라고 하면 아이돌그룹 '있지'의 멤버를 떠올리는 사람이 더 많겠다. 내가 취재했던 리아는 솔로 가수로, 조그만 체구에 폭발적인 가창력이 유명했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폭발적인 가창력을 자랑하는 가수들은 목청이 크고 내지르는 편인데, 리아는 창법도 목소리도 일반적인 한국 가수들과 달랐다. 독특한 음색에, 데뷔 당시부터 머리를 빡빡 밀고 나와 유명했다. 

그녀의 노래를 들어본 적도 없을 때, 선배 기자가 누구의 부탁을 받고 취재를 하기로 했다가 스케줄이 꼬여 대신 나더러 취재를 가라고 했다. 헐레벌떡 방송국으로 뛰어가던 당시 내가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노래를 굉장히 잘 하는 신인이 나왔다는 사실 뿐이었다.

리아는 갑자기 유명해져서 하루에 수많은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밥 먹을 시간이 없다 했다. 신인은 대체로 잡지사 스튜디오로 찾아와 촬영하고 인터뷰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어 스케줄과 스케줄 사이의 대기 시간에 방송국에서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할 정도였으니 엄청 바빴다. 저토록 가녀리고 체구도 작은 애가 밥도 못먹고 일한다는 말에 나는 울컥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뭔 일을 밥도 안먹이고 시키는 거야?’ 싶었다. 

그래서 힘들겠다고 이야기했더니, 리아가 갑자기 “기자님, 지금 혹시 우는 거예요?”하는 게 아닌가? 헐.... 나도 모르게 안구에 습기가 찬 것이다. 조금만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눈물을 배출하는 고장 난 수도꼭지가 이번에도 여지없이 고장 난 것이다. 눈물방울을 떨어뜨린 건 절대 아니지만 눈에 살짝 맺혀 있긴 했다. 못 보고 대충 넘어가길 바랐는데 그걸 들켜버렸다.  

신인가수 앞에서 노련한 기자인 척 하고 싶었던 나는 너무 창피했다. 얼른 수습하고 인터뷰 진행하느라 애를 먹었다. 울면 자동적으로 목소리가 떨리게 마련이라 이후 질문할 때 목소리가 떨려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녀나 나나 둘 다 신인이었다. 나 역시도 서울에 혼자 올라와 자취하면서 누가 밥을 챙겨주지도 않고 혼자 알아서 해야 했고, 그러자니 밥 한끼 굶으면 배고픈 것보다 서럽다는 생각이 먼저 밀려오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밥도 못먹었다는 신인가수의 말에 과도하게 공감해버린 거였다.


당시 촬영했던 장혁 이미지

장혁은 배우 정우성의 기획사에서 데뷔했다.

‘제2의 정우성’이라는 닉네임이 붙을 정도로 정우성과 외모가 흡사했다. 요즘 보면 장혁과 정우성이 어디가 닮았나 싶지만, 데뷔할 때만 하더라도 누구나 보기만 하면 바로 정우성을 떠올릴만큼 비슷했다. 사실 ‘장혁’이라는 이름도 정우성 매니저의 이름이다. 하지만 장혁네 기획사 사장님은 ‘제2의 정우성’이라는 말을 싫어했고, 기사가 나갈 때도 “제2의 정우성” 운운하는 말은 꼴도 보기 싫으니 절대 그 워딩은 넣지 말아달라고 했다. 

첫 인터뷰 때 장혁은 매우 내성적이었다. 숫기없는 신인들이 대체로 그렇기는 하지만, 말이 없어 인터뷰는 장혁보다는 장혁을 따라온 매니저와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각각의 동작을 촬영해서 포토샵으로 이어붙인 이미지. 열심히 촬영했었다. ㅎㅎ

그런데 다음 달, 두 번째 인터뷰를 할 때는 다른 사람이 왔나 싶을만큼 태도가 돌변했다. 

우리는 길거리, 지하철 등 야외에서 흑백필름으로 사진을 찍어 반항아 같은 컨셉으로 싣기로 했는데, 사무실에 온 장혁은 “신인배우 장혁, 열심히 하겠습니다”를 마치 군대에서 구호 호령하듯 외쳤다. 선배들이 “뭘 열심히 할 건데?” 물으면 윗몸일으키기든 팔굽혀펴기든 시키는 건 뭐든 하겠다며 사무실 시멘트 바닥에서 진짜 팔굽혀펴기를 시전했다.

촬영에 들어가서도 지하철이나 길거리 등 행인들이 지나다니는 데서 포즈 취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사진기자가 원하는대로 포즈를 할 뿐 아니라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바닥에 퍼질러 앉거나 누우며 “이렇게 해볼까요? 저렇게 해볼까요?” 했다. 뭐가 그를 달라지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간 뭔가 느낀 바가 있었구나 싶었다.

장혁은 고향이 부산이다. 부산에서 연예관련 학과를 다녔고, 서울 올라와서 모델로 활동하다 발탁된 케이스다. 서울 와서 뭐가 좋았냐고 물었더니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볼 때가 좋다고 했다. 

아마도 이런 느낌 아니었을까

“압구정에서 옥수역 구간에 한강을 지나잖아요? 그때 지하철 창가에 서서 노을지는 한강을 보는 게 정말 좋아요. 막 해가 져서 하늘이 잉크 푼 물처럼 보일 때, 되게 좋아요.”

나는 그때 심쿵했다. 연예인들은 나와 근본부터 다른 사람들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토록 나와 비슷한 감성이라니! 

나 역시 서울 올라와서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지날 때 언제나 창밖으로 한강을 보면서 가슴이 뛰었다. 고향에는 한강처럼 너른 강도 없을뿐더러, 그 강 위를 지하철이 지나간다는 건 상상도 못해본 일이어서, 그 순간 창밖을 보면 내가 서울에 있구나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연예인 장혁도 지하철에서 한강을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니 한순간 통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때 우리는 다들 신인이고, 신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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