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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Jul 04. 2019

뷔페는 신라호텔

내한가수들의 쇼케이스 추억 

신입기자로 나에게 할당된 취재는 음반(CD) 소개와 해외 가수 내한 소식, 콘서트 실황 등이었다. 연예기자가 되면 바로 유명 연예인과 인터뷰를 하게 될 줄 알았던 나는 하기 싫어서 입을 툭 튀어낸 채로 “저는 팝을 전혀 모르는데요.”라고 했다.

나의 10대 시절, 음악을 좀 듣는다 하는 아이들은 죄다 외국 팝가수와 락그룹을 좋아했다. 요즘처럼 한류가 주축이 아니었다. 라디오를 듣더라도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김광한의 팝스다이얼, 김기덕의 두시의 데이트 등을 들었는데, 나는 아무도 듣지 않는 영화음악 프로그램을 듣거나 예쁜 여배우들이 DJ를 하는 가요 프로그램을 들었다. 너바나, 레드제플린 등의 전설적 록그룹은 물론이거니와 아하, 뉴키즈온더블록 등의 아이돌 슈퍼스타조차도 잘 몰랐다.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런 나에게 해외 가수 내한 취재라니....

내가 입을 툭 튀어내고 있자 선배들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해봐. 곧 재밌어질 거야.”     



해외가수의 내한 행사는 제법 자주 있었다. 

글로벌 음반회사(EMI, 소니뮤직 등)에서 가수의 새 음반이 나오면 전세계 투어 일정을 짜면서 한국도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끼워 넣는다. 보통 일본 다음으로 우리나라에 온다.

대체로 호텔의 연회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쇼케이스라고 해서 신곡을 한두곡 연주하거나 들려준다. 이후 사진 촬영을 하고, 촬영이 끝나면 뷔페를 먹는다. 내한행사는 주로 하얏트호텔, 신라호텔, 힐튼호텔 등 남산 쪽에 있는 호텔에서 자주 열렸다. 

자취생활을 하던 나에게 호텔 뷔페란 포식할 수 있는 행복한 기회였고, 내한 행사에 자주 가다 보니 어느 호텔의 뷔페가 더 맛있다는 감식안까지 생겼다. 하얏트가 호텔도 훨씬 넓고 전망도 좋지만, 음식은 신라호텔이 짱이었다. 가짓수가 몇 가지 없어도 음식이 다 정성스럽고 맛있었다. 

팝에 문외한이라 팝가수 취재는 못하겠다고 툴툴거렸던 나는 어느새 해외가수의 내한을 기다리는 기자가 되었다. “이번에는 신라호텔에서 하면 좋겠다.” 입맛 다시면서 혼잣말을 하곤 했다. ㅎㅎ     



대체로 호텔을 빌리지만 간혹 특이한 곳에서 쇼케이스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파이어하우스(Fire House)가 청담동 하드록 카페에서 쇼케이스를 했다. 

그곳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드록 카페의 서울 지점으로, 지금은 없어졌지만 2천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영업을 했다. 워낙 힙한 곳이라 쭈글이 기자는 가볼 일이 없었는데, 파이어하우스의 쇼케이스 취재를 위해 가게 되었다. 

보통의 쇼케이스는 많아 봐야 한두곡을, 그것도 실제 연주하기보단 MR 틀어놓고 들려주는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파이어하우스는 거의 미니 콘서트 형식으로 1시간가량 쇼케이스를 했다. CD에 수록된 노래 대부분을 불러줬다. 나는 이름도 못들어본 가수였는데, 노래를 들어보니 아는 곡이 굉장히 많았다. “우와...이 노래도 저 사람들이 불렀어?” TV CF나 라디오에서 자주 들었던 음악들이었다. 

그들은 앵콜도 받았고, 앵콜이 끝난 후에는 바에 앉아 기자들과 관계자들과 술도 마시면서 흥겨운 분위기를 이어갔다. 그날의 분위기가 넘나 흥겹고 좋아서 나는 그날 받은 파이어하우스 CD를 마르고 닳도록 들었다. 지금도 가지고 있다.

파이어하우스 멤버들


쇼케이스에서 라이브 연주를 해준 팀 중에 ‘핸슨’도 기억에 남는다. 핸슨은 친형제 3명으로 이루어진 밴드로 ‘음밥(mmmbop)’이라는 노래가 세계적으로 빵 떠서 인기를 얻었다. 3형제가 다들 10대로 제일 나이 많은 맏이가 17살, 막내는 고작 12살이었다. 그들은 호텔에서 쇼케이스를 했는데, 드럼과 기타 등 악기를 공수해 와서 직접 세팅하고 연주하며 라이브 공연을 했다.  막내의 귀여움이 기억에 남는다.  

핸슨 귀염둥이들

   

내한행사에서 제일 꼴보기 싫은 기자는 아리랑TV 기자였다. 그들은 어떤 행사에서도 모든 질문을 영어로 했다. 통역사가 엄연히 붙어있고, 대부분이 한국 사람들만 모여있는 그곳에서 왜 그렇게 영어를 못해 안달인 건지...그게 통역사의 일을 줄여주는 것도 아니다. 한국어 질문을 영어로 바꿔줄 필요야 없겠지만, 영어 질문을 한국어로 통역해야 되니까 도찐개찐이다.

그곳만 그런가 했더니, 부산영화제 같은 국제 행사 GV에서 그렇게나 영어로 질문을 해대는 관객들이 있더라. 주최측에서 질문은 한국어로 해달라고 부탁을 해도 들은척 하지 않고 자기 영어(혹은 일어) 실력을 과시하기 바쁘다. 내한 인사와 그렇게도 직접적으로 통하려는 마음은 알겠으나, 제발 매너를 지켜주면 좋겠다. 영어 질문은 영어권 나라에서 플리즈~ 


P.S _ 이 에피소드에 대해선 아리랑TV가 영어방송이니까 영어 질문이 당연한 거 아니냐는 댓글이 달려 약간 더 자세한 설명을 첨부한다. 아리랑TV가 외국인을 위한 영어방송인 건 나도 안다. 그렇기 때문에 내한가수들은 무조건 아리랑TV와 개인인터뷰를 한다. 그리고 그 인터뷰를 주로 방송에 내보낸다. 모든 기자들이 모여있는 내한기자회견 현장을 방송에 내보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니 영어로 그렇게 질문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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