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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Jun 18. 2019

이것은 이름인가? 흑역사인가?

잡지 이름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며칠 전 친구가 “아이돌 그룹 중에 아이, 티, 제트, 와이라는 이름이 있어. 이거 어떻게 읽게?” 물었다. 나는 I.T.Z.Y.의 알파벳을 한자 한자 떠올리며 골똘히 생각하다가 “아이지? 잇즈?” 했더니, “있지란다. 있지.”라고 했다. 하하하...있지. 거참 발랄하구만.

그러자 90년대에 아저씨와 오빠를 구분하는 기준이 HOT를 ‘핫’으로 읽냐, ‘에쵸티’로 읽냐 였던 게 떠올랐다. 그때도 우리는 “아니, 핫이라고 써놓고 웬 에이치오티? 말이 되냐?” 했다. 

 ‘HOT’가 ‘Highfive Of Teenager’의 약자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무슨 좋은 뜻이 있어 만든 이름이 아니라 '핫하다' 할 때의 '핫'을 써놓고는 어거지로 말을 만든 케이스다. 

가수들도 자기들 그룹명을 남부끄러워했다. 이런 예는 수도 없다. 

핑클도 ‘Fine Killing Liberty’의 약자로 자유를 억압하는 것을 죽이겠다는 뜻이라는데, 문법이나 맞는 건지... 이효리가 부끄러워할 만 했다. 내가 맡았던 그룹 중엔 UP가 있었다. 이 역시 ‘업’으로 읽으면 안되고 ‘유피’라고 했다. Ultra People의 약자란다.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

대체로 그룹명은 매니저들이 지었는데, 멋있어 보이는 단어나 발음을 늘어놓고 거기에 어거지로 영어를 맞춰 뜻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하하하하....우리 잡지 제호 ㅠ.ㅠ

내가 이런 말을 늘어놓는 이유는 바로 우리 잡지의 제호 때문이다. 

잡지사 등록을 하러 갈 때 사장님은 위(We)프로덕션에서 만드니까 당연히 ‘위(We)’로 등록하려고 했는데, 이미 같은 제호의 다른 잡지가 있었거나 제호가 너무 짧았거나 하여간 무슨 이유 때문인지 ‘We’로는 등록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WeWe’로 고쳤다. 그런데 그마저도 뭔가(보통명사를 두개 붙인다고 제목으로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든가 뭔가) 문제가 있어 그대로 안받아줘서 약자로 처리하여 겨우 등록할 수 있었다고 한다. WEWE는 ‘We Entertainer We Enjoy’의 약자라고 했다. 아아아악~ 낯부끄러워. 저게 뭔 소리야...@.@ 나뿐 아니라 모든 기자들이 부끄러워했다.


어쨌거나 잡지 표지에는 원문 대신 약자인 WEWE로 들어가면 되니까 괜찮겠지 했는데, 창간호 표지에는 제호의 원문이 다 들어가야 된다고 했다. 2호부터는 약자로 들어가도 되지만 창간호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그게 실정법이라고 했다. 허걱... WEWE만 박을 생각으로 약자는 대충 갖다붙인 건데, 어쩌란 말인가. 그때부터 시름이 깊어졌다.

창간호에 원문을 눈에 안띄는 조그만 크기로 박고, 2호부터 제대로 약자로 쓰면 되지 않겠나 싶지만, 제호는 단지 제목이 아니라 표지에 박히는 로고다. 킨포크라고 하면 그 얇은 서체를 우리가 바로 떠올리듯이, tvN하면 그 빨간색 살짝 삐딱한 로고를 떠올리듯이 창간호에 박혀 나간 제호는 우리 잡지의 첫인상이기 때문에 중요하고, 2호부터 바뀌어 버리면 신뢰감도, 통일성도 없어진다. 잡지는 창간호에서 실패와 성공이 판가름 나는데, 창간호를 대충하고 2호부터 제대로 쓴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우리 잡지 창간호 표지  (출처 : 서태지 아카이브) 

사장과 편집장과 디자이너가 머리를 모아 수십 수백개의 폰트를 갖다 얹어 보고, 디자인해보고 밤을 새웠다. 그런 끝에 색종이로 오린 것 같은 펑키한 서체의 중간에 흰줄이 들어가는 글자체가 만들어졌다. 아이돌 잡지인데도 뭔가 세련되고 패션지 같은 느낌이 났다. 그렇게 만들어진 로고는 창간호에 올라갔고, 이후에도 색깔만 표지에 따라 살짝 바뀌면서 변함없이 폐간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하하, 우린 엔터테이너다~ 우린 즐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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