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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Jun 18. 2019

우리도 잡지는 처음이라...

좌충우돌하며 배운 잡지 편집  

사장님도, 나도, 우리 회사의 디자이너도, 포토그래퍼도 잡지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편집부 기자들이 모든 것을 가르쳐주었다. 


사장님은 기자들을 맞아들인다고 거금을 들여 대당 기백만원하는 고가의 애플 매킨토시를 편집부 책상마다 한 대씩 얹어 놓았다. 정식 출근하기 전에 오리엔테이션하러 온 기자들은 자기 자리에 놓인 매킨토시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이런 비싼 걸 사셨어요? 기사 쓸 때는 아래아 한글만 돌아가면 족해요. 저희는 매킨토시 쓸 줄도 몰라요. 이거 반품하고 중고 PC 들이세요.”

나름 기자들 온다고 신경 썼던 사장님은 마음이 상한 것 같았지만 한 대에 수백만원짜리 컴퓨터 대신 몇십만원짜리 중고컴퓨터가 훨씬 낫다는데 어쩔 수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 맥은 디자이너들이나 쓰는 물건이었지 글쓰는 사람들에겐 복잡하고 불편하기만 한 기계였다. 새끈하고 아름답던 맥컴퓨터는 중고PC로 교체되었다.




내가 기사를 써서 프린트해서 디자이너에게 넘기고, 디자이너가 그걸 보며 맥 자판으로 다시 치는 꼴을 보던 기자들의 눈이 또다시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니네 지금 뭐하는 거니? txt파일 몰라? 쩜 티엑스티로 저장하면 바로 변환되잖아? 설마 지금까지 그렇게 작업해온 거니?”

그 얘기를 듣는데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설마 그렇게 작업해왔으니까. 그런 간단한 방법을 몰라, 말 안듣는 디자이너 붙들고 왜 오타를 내냐, 내가 치겠다며 디자이너 자리에 앉아 자판 두드렸던 게 쪽팔렸다.


새로운 상황을 맞아 뺑이 친 게 나 하나만은 아니었다. 포토그래퍼와 디자이너들도 힘들었다.

언제나 정면샷 위주로 정직한 브로마이드 사진만 찍던 사장님의 친척인 포토는 매번 사진을 찍을 때마다 기자들에게 지청구를 들었다. 내가 봐도 사진기자들이 찍은 멋진 사진과 우리 포토가 찍은 정직한 사진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너무 못 찍었다.

잡지 사진은 스튜디오 사진과 현장 사진으로 나뉘는데, 스튜디오 사진은 편집 회의를 통해 콘셉트를 잡고, 소품과 의상과 화장까지 완벽하게 준비하여 찍는 일종의 예술이다. 현장 사진이라면 다른 매체 기자들과 몸싸움을 해가며 앞자리를 차지해 멋진 컷을 건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 포토는 이도저도 아니었다. 실력도 없었지만 몸싸움하는 근성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선배 기자들은 이 포토와 일하기 싫어했고, 막내기자인 나에게 딸려 보냈다. 나도 멋진 사진 찍는 선배 사진 기자들과 일하고 싶었지만 같이 가라는 데야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짝이 되어, 일은 힘들고 페이지는 얼마 안되는 해외 스타 내한, 대학로 공연 등에 주로 같이 다니고, 신인들 촬영을 주로 했다. 




그마나 취재기자와 사진기자는 새로 채용했지만, 편집 디자이너는 우리 회사에 둘이나 있었기 때문에 신규채용을 하지 않았다. 브로마이드 만들 때야 디자이너들이 아이돌그룹 이름 박아넣고, 잡티 없애는 정도만 하면 됐지만, 잡지는 완전히 달랐다. 텍스트와 사진을 배치하는 방식부터 서체 지정까지 센스가 뛰어나야 했고, 일하는 속도도 빨라야했다. 


그 중 디자이너들이 제일 싫어한 일이 바로 누끼 따기다. 누끼란 사진에서 배경과 사람을 분리해내는 작업인데, 스튜디오에서 제대로 찍은 사진이라면 누끼 딸 필요가 없지만, 아이돌이 바빠서 스튜디오에 올 시간이 없어 방송국이나 야외에서 촬영하면 뒷배경에 간판, 전깃줄 등의 지저분한 것들이 많이 걸려 사람 모양으로 누끼를 따서 깨끗한 배경과 합성하게 된다.

진짜 바쁜 아이돌의 경우, 잡지 사진 찍을 시간이 없다며 기획사에서 자기들이 찍은 사진을 일괄적으로 돌리기도 하는데, 똑같은 사진이 이 잡지, 저 잡지에 실리면 “이 잡지사는 따로 인터뷰도 못잡을 정도로 힘이 없구나.”하게 된다. 그런 말을 안들으려면 배경색이라도 바꿔야 했다. 그럴 때도 누끼를 따야한다. 


제호 위에 손을 얹기 위해서 사람 실루엣에 따라 전부 누끼따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표지 사진의 경우 잡지 제호와 모델의 머리통이 충돌하기 때문에 제호 위로 머리가 올라오도록 하려면 섬세하게 누끼를 따야 했다. 

요즘은 타블렛과 펜이 있어 펜으로 사진 모양 따라 쓱쓱 그리면 쉽게 누끼 딸 수 있지만, 당시에 도구라곤 마우스뿐이었다.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누끼를 따느라 디자이너들은 마감만 되면 밤을 꼴딱 새우곤 했다. 

아이돌 그룹은 멤버수도 많은데다, 당시 유행하던 헤어스타일이 번개머리라 각 멤버들의 삐죽삐죽 솟은 머리카락을 한올한올 누끼 따려면 눈알도 빠질 것 같고, 내가 지금 이게 뭔 짓인가 회의감도 든다. 매월 누끼 따느라 밤새는 디자이너들을 보면 처량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이렇게 몇 달 동안 우리는 잡지판에 적응해가며 아마추어에서 프로 기자로 서서히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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