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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Mar 25. 2019

촌뜨기는 어떻게 연예계에 입성하게 되었나?

모집 공고에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외에 서태지와아이들, Ref 등 현재 위프로덕션에서 관리하고 있는 연예인에 대한 글을 써서 보내라고 되어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가요계의 지형도 바꾸어놓았지만 문화계 전체를 바꾸어놓았다. 그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문화비평서가 여러권 출판됐고, 한국에서 ‘팬덤’이라는 것이 그들 때문에 생겼다. 그러니까 서태지와 아이들에 대한 담론은 차고 넘쳤다는 소리다. 나는 서태지와 아이들 대신 Ref로 글을 쓰기로 했다.


Ref 멤버인 이성욱, 성대현, 박철우는 유명한 클럽 DJ출신들이다. 나는 그들의 1집도 가지고 있었는데, 가수를 좋아했다기보단 그들의 노래를 좋아했다. 당시 메가히트를 기록했던 Ref의 <<이별공식>>은 윤성희 작사가의 가사가 일품이었다. 

‘이별 장면에선 항상 비가 오지, 열대우림 기후 속에 살고 있나?

긴 밤, 외로움과 가을, 또 추억은 왜 늘 붙어다녀? 무슨 공식이야?’ 

캬~ 이렇게 센스쩔고 현실 비트는 가사라니!!


‘햇빛 눈이 부신 날에 이별해봤니? 비오는 날 보다 더 심해. 작은 표정까지 숨길 수가 없잖아. 흔한 이별노래들론 표현이 안돼, 너를 잃어버린 내 느낌은. 그런데 들으면 왜 눈물이 날까?’ (웬일이니? 나 20년 된 노래 가사를 아직도 이렇게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깜놀!!)

하여튼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가사였다.


나는 가사가 좋은 노래들을 즐겨 들었고, 그런 노래를 부르는 가수를 좋아했다. 그 중에는 DJ DOC도 있다. 아예 그룹명에 DJ라고 되어 있는만큼, 멤버인 이하늘, 김창렬, 정재용도 역시 클럽 DJ 출신이었다. 

Ref와 DJ DOC를 클럽 DJ출신의 가수로 묶은 뒤 그들이 성공한 이유는 클럽 현장에서 익힌 감각과 대중성 때문이라는 요지의 글을 썼다. 

그 글과 이력서, 자기소개서를 봉투에 넣고 우표를 붙여 보냈다. 요즘에야 클릭 몇 번이면 이력서가 휙 날아가지만, 당시에는 이메일 접수라는 통로 자체가 없었다. 이력서는 무조건 우편으로 부치는 것이었고, 다른 방법이라고는 직접 갖다 내는 방법뿐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연락이 왔다. 면접 보러 오라고 했다.

다니고 있던 회사에는 어떤 핑계를 댔는지, 지금은 가물가물하다. 아파서 결근한다고 했던 것 같다.  

강남구 신사동 한국 야구르트 빌딩 뒤의 회사를 찾아갔다. 지금은 한국 야쿠르트라고 대문짝만하게 적혀 있지만, 당시만 해도 빌딩 이름을 적어놓지 않아 야쿠르트 빌딩을 눈 앞에 두고도 야쿠르트 빌딩을 찾아 주변을 뱅글뱅글 돌았다. 당시엔 구글맵이나 카카오맵 따위 없었으니까.

연예인들과 일하는 회사라면 화려할 것이라는 내 예상을 뒤엎고, 학교 앞 문방구처럼 샷시문 곳곳에 연예인들 브로마이드가 붙어 있는 창고를 지나 사무실로 들어갔다. 나중에 들어봤더니 서태지와 아이들 화보집이 나온 날, 그 창고 앞에 수킬로미터의 줄이 늘어졌고, 경리 직원은 출근 직후부터 밤이 될 때까지 하루 종일 아무 일도 못하고, 허리 한번 못펴고 돈만 셌다는 전설이 전해내려오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수더분한 시골 아저씨 인상의 사장님이 맞아주었다. 고향이 어디이며, 서울 올라와서는 어디서 사는지 묻더니, 회사에 대해 궁금한 건 없냐고 하셨다. 

나는 이것이 면접인가 헛갈렸다. 자고로 면접이란 회사에 지원한 이유, 나의 장점 어필, 회사에 들어와 이런저런 일을 하겠다는 포부 등을 묻는 자리 아닌가? 그런 건 1도 묻지 않고 어디서 사냐, 자취하냐 하더니 회사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으라니...이거야 원....

“저기....저에 대해서는 더 물어보실 게 없나요?”했더니 사장님이 시크하게 말씀하셨다.

“글 잘 썼잖아. 글 보니까 알겠더만.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어요?”

이렇게 나는, 연예계의 변방에 입성하게 되었다.


P.S1 _ 들어온 이력서 중에 서태지와아이들에 대한 글이 아니었던 건 내 글뿐이었다고 한다. 서태지와아이들에 대한 글은 신물이 날 정도로 많이 봤던 사장님 눈에 다른 연예인을 주제로 쓴 내 글이 돋보였던 것이다. 역시 예상이 적중했다! ㅋㅋ
P.S2 _ 사장님이 나에 대해 매우 궁금하게 생각했던 것은 어떻게 지원할 수 있었냐는 사실이다. 채송아가 숙명여대 출신이라, 채송아처럼 일 잘하는 사람을 뽑고 싶었던 사장님은 숙명여대 취업센터에만 구인공고를 냈다. 그런데 경북대 출신인 내가 어떻게 알고 지원했는지 궁금해 하셨다. 그래서 광고교육원 후배에게 정보를 알게 되었다고 이실직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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