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리달 Mar 25. 2020

임산부 교직원 일기 1: 입덧과 코로나

바야흐로 새학기가 시작되었다.

한참 활기 넘쳐야 할 캠퍼스는 모든 문을 걸어잠갔고, 학생들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이런 시국에 임신 사실을 알게되었다. 


코로나와 입덧...환장의 조합이다.


일단 임산부라서 건강위험자로 분류되어 재택 근무를 일주일에 두번 내지 세번 정도 하고있다. 

재택근무의 장점은 일하다가 힘들면 잠깐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울 수 있다는 것.

누구 눈치 안보고 먹고 싶은 간식 와구와구 먹을 수 있다는 것. 

그렇지만 쾌적하지 않은 환경에서 일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테이블 위에 노트북 하나 놓고 일하려니 어깨도 아프고 눈도 아프고, 키보드도 자꾸 다른 키가 눌리고... 게다가 퇴근 시간이 되어도 자꾸만 미련을 가지고 하던 일을 두번 세번 돌아보게 된다. 사무실이었다면 일단 미련 없이 컴퓨터를 꺼버렸을 것을!!


그 와중에 입덧이 찾아왔다. 


임신 6주차부터 찾아온 입덧은 처음에는 울렁울렁 배를 탄듯 시작되었다. 아무 것도 먹기 싫고, 그나마 과일류만 조금 당겨서 먹고 나면 또 음식은 쳐다도 보기 싫어지고...이걸 일주일 정도 반복했더니 7주차에는 이제 과일도 먹기 싫어졌다. ㅠㅠ 그나마 시시때때로 생각나는 음식들을 먹으면 좀 괜찮은데, 먹기 싫은 음식을 먹었다가는 대번에 탈이 났다. 심지어 먹고 싶었던 음식이라도 조금만 배부르게 먹으면 소화 불량에 걸리기 일쑤였다.


차라리 코로나사태로 재택근무를 해서 다행인가? 라고 생각할 때쯤 매일 혼자 집에만 있다보니 나타나는 무력감과 우울감이 찾아왔다. 내 몸인데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고, 속이 안좋아서 아무 것도 못하겠고, 너무 금방 피곤해져서 무언가 조금만 해도 쓰러져 자야하고, 친구들도 만날 수 없고 먹고 싶은 것도 없고 ㅠㅠ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임신이 힘든 건줄 알았다면 조금 더 생각해봤을텐데, 하는 생각도 수십번 했다.

남편도 원망스럽고, 먼저 애낳고 이렇게 힘들다고 말해주지 않은 친구도 원망스럽고, 나 빼고 재미나게 놀러다니는 것 같은 다른 친구들도 원망스럽고, 어리석은 나도 너무 미웠다. (사실 현재 진행중이다)


8주차에는 출근길에 급격히 속이 안좋아져서, 마침 남편이 차로 데려다주던 중이었는데, 일하는 건물 앞에 다 와서는 차를 세워놓고 하수구에 토하기도 했다. 그렇게 분수처럼 토를 해본 건 내 인생 처음이었다. ㅠㅠ 그날 아침에 먹은 요거트와 딸기를 다 게워내고나니 차라리 속이 편한 것도 같았다. 8주차 일요일에는 엄마가 만두를 빚어준다고해서 친정집에 가서 얻어먹고는 또 체해서 9주차 화요일까지 내내 속이 좋지 않았다. 그러다가 먹은 것도 없는데 위액까지 토해내고, 퇴근하는 남편 앞에서 엉어 울기도 했다. 


평소라고 속이 편한건 아니지만, 행여나 잘못 먹으면 속이 더 불편해지니 뭘 먹어도 조심조심. 안먹어도 속이 안좋고, 먹어도 속이 안좋아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의 나날이다. 


이제 겨우 11주차. 조금 괜찮은가 싶으면 또 다시 울렁거리고, 살기싫어질 때쯤에 다시 조금 나아진다. 


그래도 우리 교수님들께서 임신했다고 배려도 많이 해주시고 사무실에서도 신경 많이 써주셔서 근근히 버티고 있는 나날들.


코로나만 아니었어도 지금쯤 대학 캠퍼스가 학생들의 웃음소리로 넘쳐났을텐데, 한없이 조용한 캠퍼스가 아쉽기만 하다. 

특히 외국에서 와야하는 학생들은 비행편이 모두 막혀 올 수 없다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행정팀으로서는 차라리 이번학기 휴학을 권유할 수 밖에 없는 답답한 상황이다. 아무도 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언제쯤 잦아들지 모르니 무엇인가를 보장할 수가 없는데, 학생들도 답답하니 자꾸만 학교에 언제쯤 대면강의를 실시할 것인지, 자신이 언제 입국하면 되는지 답을 내놓으라고 하는 마음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건강이니 학생들도, 교수님들도, 직원들도 모두 안전하게 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기를. 입덧하면서 느낀 건데, 건강만큼 소중한 게 없는 것이다. ㅠㅠ


그리고 지하철에서 임산부석 앉아서 뱃지 보고도 안비켜주는 양심없는 여성분들 때문에 하루하루 인류애를 잃어가고 있다. 본인들도 나중에 임신을 하게 될텐데, 그때 어쩌려고 그러시는지들? 내가 그 앞에 서있다가 앉아있는 분 정수리에 토하기라도 하면, 나한테 노발대발 할거면서?ㅠㅠ


쓰다보니 넋두리가 되어버린 글을 이만 마무리해야겠다.

제정신이 아닌 몸과 마음으로 글을 쓰기란 어려운 것. 그래도 이시기의 기록을 남겨본다.


다들 화이팅!!!






작가의 이전글 교직원일기4: 졸업사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