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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학 Jun 12. 2018

어떤 분위기의 팀을 만들 것인가?

민감한 팀워크와 소통 문제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수직적이다. 그리고 이런 조직문화의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 군대를 꼽는다. 일부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장유유서의 유교문화를 꼽기도 한다. 


나도 군대를 현역으로 다녀왔고, 수직적 조직문화의 원인은 군대의 상명하복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뉴스에서 대학 선후배 간의 문자를 보고 군대가 원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군대도 안 다녀온 저것들은 왜 저러는 걸까? 생각해보니 나도 대학교 1학년 때 신입생 환영회 전초 행사로 고등학교 1년 선배들에게 집합당해서 열심히 캠퍼스를 뛰고 술 마시러 갔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군대가 원인이라면 왜 여자끼리 모인 조직도 그렇게 위아래를 따지는가? 일하던 업종 때문에 디자이너 언니들을 좀 알게 되었는데, 그 동네야 말로 언니들에게 끽소리도 못한다. 또 희한한 건 우리나라 사람이지만 미국 시민권자인 사람들(군대에 안 다녀옴)도 우리나라에서 일할 때는 수직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외국인을 대하며 영어로 말할 때랑, 한국 사람들에게 한국어로 말할 때랑 태도가 다르다. 


어떻게 보나 군대는 수직적 조직문화의 근본 원인이 아닌 것 같다. 다만 그런 문화를 강력하게 증폭(?) 시켜주는 최적(?)의 환경일 뿐이다.   


결국 친구가 되지 못했던 우리 


중국에서 일하던 시절 아끼는 직원이 있었다. 동기들 중에서도 눈에 띄는 친구였다. 좋은 평가도 받고, 특진도 시켜줬었는데 비전과 커리어 문제로 결국 퇴사하게 되었다. 퇴사 후에도 두어 번 만나서 같이 식사를 했다. 어느 날, 이 친구가 나보고 ‘친구'하고 싶다고 했다. 중국에서는 나이 차이가 어느 정도 나더라도 자연스럽게 서로 친구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나도 그러고 싶었는데 결국 우리는 친구가 되지 못했다. 내 머릿속에는 여섯 살 어린 친구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나와 비슷한 레벨의 사람'의 범위가 너무 좁다. 왜일까? 내 생각에 수직적 조직문화의 근본 원인은 '존댓말'이다. 한국어만큼 언어 전반에 높임과 낮춤의 개념이 배어있는 언어도 없는 것 같다. 직접 체험하고 싶으면 평소에 존댓말을 쓰는 사람과 영어로 한번 대화해보라. 이야기하는 자세부터 바뀔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한 학년만 차이가 나도 존댓말을 쓰도록 강요당한다. 군대에서도 한 달 단위로 선임/후임이 나뉘며, 회사에 들어가도 동기는 정말 동시에 입사한 사람들만 동기일 뿐이다. 어떤 조직에 있든지 그 조직에서 나와 수평적 관계에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나머지는 전부 내 위거나 내 아래이다. 


하도 어렸을 때부터 이런 관계 속에서 살다 보니, 일단 누군가를 만나면 그가 나보다 위인지, 아래인지 교통정리가 되어야 편하게 대화를 할 수 있다. 나보다 조금이라도 위거나 아래일 것 같은 사람과 갑자기 '수평적'으로 지내라고 하면 굉장히 어색해한다. 


같이 일하던 어느 부장님이 있는데, 학부를 한국에서 졸업하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딴 뒤에 미국에서 십여 년을 더 일하다 2~3년 전 한국에 귀국한 분이다. 이분과 조직문화에 대한 대화를 하다가 인상 깊은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 사람들은 윗사람에게 아무 말도 못 하다가, 수평적으로 지내자고 하면 갑자기 '대든다'. 수평적으로 지내자고 한 것뿐인데 수평적인 것과 대드는 것의 차이를 잘 모르는 것 같다."
"무언가 의견을 내보라고 해서 의견을 냈는데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자기 의견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수직적' 문화라서 자기 의견이 무시되었다고 생각한다."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자고 하면 눈을 마주치는 것이 아니라 '노려보는' 것 같다." 


물론 이 분이 일부 사례를 너무 일반화하셨을 수는 있지만, 나도 어느 정도 공감이 된다. 우리는 윗사람과 수평적으로 지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요즘도 중학교에 들어가면 한 살 위에 선배들에게 존댓말을 써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나 혼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마음 같아서는 무슨 전 국민 캠페인을 벌여서라도 적어도 위아래 세 살 정도까지는 서로 반말을 쓰자고 하고 싶다. 어릴 때부터 한 살 차이도 위아래가 있다고 세뇌당하고 자란 사람들에게 다 커서 수평적으로 소통하자고 하는 것은 굉장히 어색한 일이다. 


최근엔 여러 회사들에서 직급을 부르지 않고 서로를 '님'으로만, 혹은 영어 이름으로만 부르는 움직임이 있는데, 도움이야 되겠지만 여전히 부하는 상사에게 존댓말을 쓰고 상사는 부하에게 반말을 쓰는 상황이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요즘에도 부하에게 반말 쓰는 사람이 있나요?'라고 한다면 아직도 꽤 많다. 영어와 달리 한국어는 호칭뿐만 아니라 언어 전반에서 위아래가 드러나기 때문에 호칭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존댓말을 쓰는 환경(아니면 정말 모두가 서로 반말하든지...)에서만 수평적인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다. 


소통을 가로막는 상사의 리액션 


회사에서 듣고 싶지 않은 또 다른 소리가 "아 됐고~", "내가 맞다니깐~" 하는 것이다.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제삼자에게 하는 것이어도 듣기가 싫다. 


물론 어떤 일을 좀 더 오래 하다 보면 경험이 생기고, 경험이 쌓이면 직관이 된다. 상사는 정보가 충분히 모이지 않은 상태에서도 부하보다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부하직원이 하는 말이 혹시 직관과 어긋나더라도 말을 중간에 끊으면서 무안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 당신 말이 정말 맞을 수도 있지만, 언젠가 당신이 틀렸을 때도 그 부하는 아무 말 못 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일단 말을 다 들어주고 이야기 하자.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고 한 데에는 다 조상의 지혜가 담겨있다. 


그리고 대화할 때 부하 직원과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늘 윗사람 앞에 '눈을 깔고' 살아와서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외국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하면 뭔가 켕기는 것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서 신뢰에 영향을 미친다. 예전에 중국에서 근무할 때 인상 깊었던 점 중 하나는 신입사원들도 당당하게 윗사람의 눈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한다는 것이었다. 그럼 재밌게도 눈을 마주치는 것이 불편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윗사람이 딴 곳을 보며 눈을 피한다. 


이렇게 쓰고 있는 나도 한국사람인지라 습관적으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이야기를 할 때가 많다. 그냥 노트북을 쳐다보면서 자기 할 일 하면서 옆사람과 대화를 한다거나,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면서 이야기한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이야기하다 보면 미묘한 비언어적 신호들을 놓치게 되고 같은 말을 하더라도 서로 오해할 여지가 커진다. 아까 캠페인을 벌여서라도 어릴 적에 한 두 살 차이끼리는 존댓말을 쓰지 않게 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캠페인에는 나이를 불문하고 '눈 깔아'를 없애는 것도 포함된다. 


눈치 보는 팀원, 무례한 상사 


많은 사람들이 원칙이 엄격한 회사를 자율적이지 않은 회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의 많은 회사들이 자율적이지 않은 이유가 회사에 원칙이 너무 많고 엄격해서라고 보는가? 우리 회사의 원칙이 무엇인지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자율적이지 않은 회사의 특징은 원칙이 아닌데 지켜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상사가 퇴근하기 전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상사가 회식하자고 하면 선약을 취소하고 무조건 참석한다.  

공식적인 팀 미팅 자리에선 절대 상사의 의견에 반박하지 않는다. 

미팅할 때 임원분들은 생수병을 가져다 놓는다.  

심지어 임원마다 생수 취향도 있다. 

하다 못해 점심 메뉴도 상사 눈치를 보며 고른다. 


그 어느 회사도 이런 것을 원칙으로 지정해 놓지 않는다. 그렇지만 문구로 적혀있는 원칙보다도 칼같이 지켜진다. 원칙도 아닌데 눈치껏 지켜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 보니 당연히 자율적일 수 없고 회사생활이 하루 종일 눈치만 보다가 끝난다. 


이런 분위기가 더 심해지면 과다한 의전으로 흐른다. 높으신 분들의 편의를 위해 아랫사람이 무슨 집사처럼 상사의 동선부터 시작해서 온갖 것들을 챙긴다. 군대에서는 원스타 아들 과외시켜 줬다는 병사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는데 회사에는 없는지 모르겠다. 의전 또한 회사의 원칙으로 박혀있지 않다. 의전을 받는 사람, 하는 사람 모두 늘 그렇게 하다 보니 당연한 듯 생각할 뿐이다. 


그래서 '상사가 원하는 것을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사람'이 무섭다. 


물론 상사가 챙기지 못한 일들을 알아서 챙겨주는 부하는 상사에게 이쁨 받고 실제로 팀의 업무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업무에 필요하지만 미처 챙기지 못한 일이 아니라 '상사가 차마 말은 못 하지만 부하가 알아서 해줬으면 하는 일들'은 어떨까? 


그룹의 비리가 적발되어 총수가 수사를 받는다고 하자. 총수는 백 프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모르고, 경영진들이 알아서 한 일'이라고. 그럼 국민들은 '그럴 리가 있나' 생각하지만, 나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미 '총수가 말하지 않아도 총수가 원할만한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 경영진까지 올라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총수는 말할 필요가 없다. 당연히 시킨 적도 없다. 과도한 충성심의 결과일 뿐이다. 


실적이 안 좋아지면 회장이 시키지 않아도 인사담당 인원이 알아서 임금을 동결하고 구조조정을 실시하겠다고 보고한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회장은 시킨 적 없다고 발뺌한다. 윗사람의 눈에 들기 위한 과도한 충성은 조직 전체를 병들게 한다. 그리고 그 칼은 언젠가 그런 조직문화를 만든 바로 그 윗사람에게 돌아가게 되어있다. 


이제 갓 리더가 된 사람도 주의해야 한다. 처음 리더가 되었을 때는 그나마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아랫사람에게도 강압적으로 대하지 않으려 하고, ‘팀장 달더니 달라졌다' 소리 듣지 않으려 당분간은 겸손히(?) 지낼 것이다. 그러다 알아서 내 눈치를 봐주는 사람이 생기면 왠지 그 사람을 편애하게 된다. 나 대신 다른 팀원에게 쓴소리를 하고 군기를 잡아주는 사람, 내 일정이나 귀찮은 행정 잡무를 챙겨주는 사람, 오후 서너 시쯤 눈이 감기려 할 때 ‘팀장님 커피 사다 드릴까요? 아메리카노? 라테?’ 물어보는 사람. 혹자는 이런 사람 더러 사회생활을 잘한다 이야기 하지만, 이런 사람들에게 대접받는 것이 익숙해지다 보면 점점 자기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 착각하게 되고, 남들이 자신을 떠받들어 주길 당연스럽게 요구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의전과 윗사람 눈치 보는 문화는 전염성이 있다. 자기 윗사람이 받았던 대접을 기억하면서 본인이 그 자리에 오른 순간 같은 대접, 혹은 그 이상을 아랫사람에게 요구한다. 본인을 스스로 높은 사람이라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레 점점 아랫사람을 무례하게 대하게 된다. 직장 내 예의에 대해 20여 년간 연구해온 크리스틴 포래스(Christine Porath) 미 조지타운대 경영학과 교수는 ‘무례하게 굴지 않으려면 스스로를 돌보는 것부터 신경 써야 한다'라고 조언한다.* 본인이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남들에게 함부로 대하기 쉽다는 것이다. 너무 업무가 많은 것은 아닌지, 충분히 잠을 자면서 스트레스를 관리하는지 주의해야 한다. 자신의 행동이 무례한지 아닌지 살펴야 하고, 일기를 써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것도 추천한다. 


* 직장인 62% "한 달에 한 번 이상 무례한 행동 경험" 예의 갖추면 업무 성과도 높아져… 행동규범 필요


직급은 사람의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다. 팀장이 되었다 해서 중세시대 귀족처럼 신분이 상승했다고 착각하면 곤란하다. 또 당신의 상사가 당신을 어떻게 대했든지 그것이 당신의 행동을 정당화시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윗사람에게 깨지고 와서 부하들에게 풀지 말라. 직급이 아무리 높아져도, 아버지가 회장님이어도 당신이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런 마인드로 아랫사람들을 대하는 시대착오적 인간들이 아직도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제발 지난 세대와 함께 보내 버리고 우리 세대부터는 그러지 말자.*

        

*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어떤 80년대 생의 갑질로 세상이 시끄럽다. 우리 세대도 이미 늦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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