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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흐 함 Jul 22. 2024

한국에서 서비스 연구 및 혁신 일을 찾기 어려웠던 이유

'변화를 만드는 업‘으로서의 디자이너

도시 서비스 기반으로 연구(Research & Devlopment) 및 전략 기획 일을 했고, 비슷한 일을 하는 커뮤니티와 사람들을 약 5년 동안 한국에서 찾아다녔다. 저번 주에 업로드 한, 04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기 어려웠던 이유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나의 일을 설명하는 것이 어려웠고 이는 자신감에 영향을 주었고 고립되었다.


각양각색의 디자인(인테리어, 산업, UX, 그래픽 등)부터 기술 연구, 건축, 디지털, 부동산, 경제, 경영 등 등의 산업에 대한 이해를 조각조각 모으고 이어 붙였다. 지도를 만들면 나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나의 위치를 찾으면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곳,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 내가 채워야 한 것, 나아가야 하는 방향의 실마리를 찾는데에 도움이 될 듯했다.


내가 했던 도시 서비스를 혁신하고 연구하고 전략을 만드는 일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우선이 이것의 핵심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였다.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의 리스크를 가지고 새로운 방향을 탐색하는 일이다. 비물질적인 것의 부가가치를 만드는 서비스업이기도 하다. 그리고 필요한 변화를 발굴하고 개선하는 일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산업구조에 따라서,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한 정의에 따라서 이 일은 효용이 없다고 판단되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업은 산업과 그 나라의 다음 세 가지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1.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본 경험

2. 혁신과 서비스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

3. 변화의 범위와 디자이너의 역할



1.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 본 경험

연구라던가, 혁신 분야, 특히 디자인의 주 역할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을, 디자이너로서 연구, 기획 전략을 만드는 일은 찾기가 어려웠다. 특히 공공업계는 더더욱 찾기 어려웠고, 대부분의 과학 기술에만 국한되는 경우가 많았다. 기술 과학 분야 외에는 새로운 방향을 연구하는 곳이 없을까?(혹은 적을까)라는 질문이 생겼다. 기술은 변화를 만드는데에 핵심이지만, 기술만으로는 변화를 만들 수 없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계 기업 중에 전략, 연구 팀을 한국에 두는 경우는 많이 보지 못했다. 적어도 디자이너로서는.


왜 없을까? (혹은 나는 못찾았을까?) 나는 그 이유를 감히 쿨한 키즈가 되고 싶지만 쿨함을 리드해본 경험 부족이라고 하겠다. "한국도 이제 선진국이다"라든가, "선진국도 000하기 때문에 한국도 따라야 한다"는 내러티브는 한국인에게 너무나도 익숙하고 사고방식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한국의 '선진국' 반열에 오르고 싶은 열망은 미디어에서 정부 발표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은 다른 사회가 경제 성장한 패턴을 답습하며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마냥 답습한 것이 아니라, 한국 맥락 속에서 변화시켜 적용하기는 했지만, 큰 맥락 속에서는 이미 서구와 일본의 성장 패턴을 조금씩 바꾼 정도이다.


반면, 이노베이션, 혁신은 미리 방향성을 탐색하고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연구(R&D)를 요구한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불확실한 미래를 그리는 일이기에 리더십도 리스크를 테스트하고 개선해 나가며 견딜 수 있는 많은 시간과 자본을 요구한다. 하지만 빠른 성장에서 연구와 그에 따른 리스크는 사치이다. 상하 명령 전달식은 의견 조율할 시간을 줄이고 더 빠른 결과물을 만들 수도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진행되는 연구는 여러 증거와 연구를 통해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역할보다는 소수의 의사결정권한에 타당성을 만드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물론 한국의 모든 것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민간 공공을 막론하고 산업 곳곳에서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들리는 '우리도 유럽같이 뭐 좀 해보지', '저희 사장님 좋아하는 것이라서요.'라던가 '담당자의 결정으로 어느 날 이미 만들어 놓을 것을 모두 바꾸는' 경우라던가, '연구는 윗사람의 입맛에 따라 타당성을 만드는 거죠'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연구가 제 역할을 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는 설정한 전제가 틀렸을 수도 있으며, 문제를 새로 정의해야 하는 일도 생긴다. 하지만 결론을 받아들일 여유도, 연구한 사람이 발견한 것에 대한 목소리도 낼 수 없는 의사결정구조라면,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사람의 익숙한 범위 내에서, 이미 다 아는 내용 안에서 다시 확인하는 정도밖에 못하는 정도밖에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닦아 놓은 길을 답습하는 경험이 대부분이라는 것은 새로운 위험을 마주하고 문제를 대처하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말과 동일하다. 즉슨, 위험을 안고 새로운 것을 개척할 자신감도 부족하게 된다. 한편, 항상 뒤떨어져 있고,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러기 때문에 부족함을 따라잡기 위해 좋아 보이는 것을 최대한 빠르게 따라 하는 것을 선택한다. 그렇기에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방식보다는 (problem-solving) 해외 사례의 벤치마킹이 더 지배적이다.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 본 경험, 문화가 있어야 이에 투자할 자신감도 기다릴 인내심이 생긴다


한국의 위치나 경제 성장, 그리고 한국 내부에서 샘솟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을 보면, 충분히 자신감을 가질 만도 한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구조와 분위기 속에서 이미 있는 것을 한국으로 들여오기만 하면 되는데, 굳이 새로운 방향성을 연구할 위험을 짊어질 이유가 없다. 대신 이미 한 것을 '더 크게' 이전과 없는 규모로 만드는 것으로 자신감을 회복시킨다. 그러니, 새로운 방향성을 만들고 연구하는 일에는 투자하기 꺼려질 수밖에 없다. 그러한 일을 하는 업을 찾기는 더더욱 어려웠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2. 혁신과 서비스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

연구도, 혁신도, 서비스도 성장할 수 있는 구조가, 위험을 감수할 환경이 있어야 투자도 하고 시도를 해보지 않겠나, 그런 환경이 아닌데 가능한가?라고 질문할 수도 있겠다. 한국의 서비스업 사업체 수는 전 산업 산업체의 85.5% 차지하고 경제 규모는 60%를 차지한다.(2019년 기준, 출처 : 대한민국 국가 지도집).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는 의료·복지·보건 서비스, 애플리케이션 등이 늘어나 이제는 "한국의 산업구조도 선진국화"라고 한다.(기사 링크). 하지만, 한국의 서비스 산업은 정보통신업이나 전문 과학 및 기술서비스업보다는 저부가가치 산업에 대부분이 분포되어 있다.


한국에서 연구 및 전략 용역을 하면서 의문이었던 것은 많은 예산 편성 방식도, 성과 측정도, 결과물을 얻고 기대하는 방식과 역할 분배도 의사결정 구조도 건설 제조업 기반의 구조이다(건설 제조업을 합쳐서 물질 산업 tangibles이라고 하겠다). 내 경험상 공공 영역은 더더욱 그러하였다. 간단한 예로, 많은 지자체의 지원 사업의 예산 편성에 본인의 인력에 대한 예산을 포함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예산 편성의 대부분은 물질 기반 결과를 납품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은 기준으로 예산이 구성되다 보니, 내가 참여한 연구 용역 결과물도 리포트 페이지 수로 가격이 책정되었었다(2022년, 2023년 기준). 서비스 산업도 물질 산업의 렌즈로 운영되고, 물질 산업과 같은 방식의 생산 과정과 성과를 기대하는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질 산업과 서비스업은 상품을 만드는 과정도, 수익구조도, 필요한 규모도, 예산 측정 방식도, 소비자와의 관계도 다르다. 따라서 조직의 규모도, 개개인의 역할도, 의사결정의 과정도 달라진다. 이런 차이 때문에 토스나 배민과 같은 많은 서비스 기반 조직에서는 기존 조직 구조 운영에 의문을 던지고 그들만의 방식을 만드는 모습을 종종 본다. 서비스 산업에서는 과정과 인력의 협력 구조 자체가 서비스 상품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이제까지 한국 경제를 성장시킨 건설 및 제조업은 물질 기반 산업은 과정과 조직 구조보다는 납품하는 상품 자체의 품질에 집중한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여전히 많은 것이 물질 기반 산업 기반으로 운영되고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사고 구조로는 조직 구조나 과정을 질문하거나 우선순위에 두고 바꾸기 어려운 환경이다.




3. 변화의 범위와 디자이너의 역할

내가 정의한 디자이너는 '만드는 기술'을 이용하여 기술, 사용자, 비즈니스를 연결하고 필요한 변화를 만드는 일을 하는 업이다. 직접 제조를 한다기보다는 제조를 위한 계획(design)을 하는 지식 노동자이다. 이러한 계획을 통해 디자이너는 그것이 물리적 공간이던 디지털 서비스이건 서비스이던 기존 제품에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역할이다. 특히 한국과 유럽의 여러 나라를 경험하고 동료들과 이야기하면서 나라마다 각기 다른 변화와 혁신의 성숙도에 따라 디자이너의 업무 구체성과 분업과 역할이 변화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변화의 단계는 표면적인 것을 바꾸는 것부터 구조적인 것을 바꾸는 것까지 다양한 깊이가 존재한다. 원하는 결과와 변화를 위하여 형태의 바꾸는 데에 집중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 서비스의 일관성과 질을 높이기 위해 조직 구성과 의사결정을 매끄럽게 하는 데에만 더 집중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혹은 아예 미래상을 바꾸고 목표하는 방향을 바꾸는 일을 필요로 할 때에도 있다. 이에 따라서 디자이너의 역할이 형태에 집중되기도 하고, 서비스 개선을 위해서 조직 협력과정을 가시화하고 이 사이를 조정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며, 가능할 법한 다양한 미래상에 대해 연구하며 이를 가시화하고 파트너들 혹은 클라이언트와 함께 논의하는 자리를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변화의 범위와 깊이에 따라서 디자이너의 역할이 달라진다. 하지만, 제조업의 관심사인, '상품 자체의 품질에만 집중'한다면, 디자이너의 역할도 상품의 마지막 마무리에만 집중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많은 경우가 형태로만 변화를 만들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이미 성공한 사례의 겉모습을 답습하는 데에 익숙하고 환경에서는 변화를 만드는 디자이너의 역할도 최종 상품의 형태를 변화시키는 데에만 한정되게 되지 않을까.



찾을 수 없었던 이유를 찾다보니 조직이나 개인 다위보다는 산업의 레벨에서 빈 부분, 아쉬운 점에 초점을 맞추게 된 경향이 있다. 빈 부분도 채워야 하는 채워야하는 부분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내가 하는 일이 지식 서비스 산업에 해당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나의 경험을 최대한 잘 활용할만함 곳을 찾기 위해 나의 일이 빛이 나는 지점과 보완할 점을 생각해 보았다.


다음 주에는 이 이야기를 이어서 내가 했던 일의 역할, 필요했던 곳, 빛이 나는 경우, 보완해야 할 점에 대해서 적어보려고 한다. (다른 생각이 먼저 나면 다른 이야기를 적을 수 도 있지만...)


여기까지 읽으신 당신, 감사합니다. 비슷한 경험이 있으신 분, 이 과정을 통해 다음 성장으로 나아가신 경험이 궁금합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코멘트나 인스타그램 DM(https://www.instagram.com/jjjjjujujujuju/)으로 메시지 언제든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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