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일을 언어화 한다는 것.
나는 디자이너이다. 하지만 어떤 디자이너냐고 묻는다면, 대답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지난 약 5년간 혹은 더 길게 이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매번 망설였다. 상대방이 나의 산업을 얼마큼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설명이 아예 달라지기 때문에 뭐부터 이야기해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하다 보면 우물쭈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누군가가 나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을 ‘부모님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직업’이라고 부르더라. 그래서 그런지 부모님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물어보시지 않고, 나의 교육자로서의 직업만 물어보시더라.
누군가는 나의 일을 왜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려고 하는지, 왜 중요하냐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인지되지 못하고 인지되지 못한 것은 마치 존재하는지 않는 것처럼 돼버린다는 것을 다년간 느꼈다. 대기업이나 잘 알려진 회사를 다녔다면,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아 삼성, 아 구글 이렇게 넘어가겠지만, 그것도 아니기에 내가 하는 일은 더더욱 미궁으로 빠졌다. 마치 물음표 상자로 남겨둔 채 지나치기로 한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언어로 똑 부러지게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자 나의 자신감도 떨어졌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에 잠재적 기회도 놓치고 있는 듯 하다. 내 일을 회사 밖으로 확산시키는 데에도 한계를 느끼면서 점점 더 고립되었다. 그래서 적어도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를 이해겠다고 생각했다. 원인을 알아야 나의 포지션을 파악하여 다르게 접근할 수 있을 듯했다. 보편적으로 알려진 '디자이너'와 내가 실제로 하는 일에는 간극이 있었다. 아래는 내가 포착한 내 일을 설명하기 어려웠던 이유들이다.
보편적으로 디자이너는 결과를 만드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은 결과를 만드는 방향, 환경, 과정을 만드는 일이다. 상대방은 답이 나오는 결과를 기대했는데 잡히기 어려운 과정만(예를 들어 질문, 활동, 규칙) 잔뜩 있는 것이다. 그러니,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결과물로서의 디자인과는 간극이 생기면 아무것도 만들지 않은 아리송한 사람이 된다. 무엇보다도 과정을 만든다는 것은 추상적으로 느껴지기에 이해하기 쉽지 않다.
디자인은 최종 소비자를 향한 경우가 많다. 즉슨 민간에서 많이 적용되는 분야이고 따라서 상업적인 목적을 띄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은 소비자보다는 비즈니스 혹은 조직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공공 목적이 대부분이었다. 최종 소비자를 위해 더 나은 스타일과 형태를 만드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로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는데, 나는 의사결정 과정이나 포지셔닝과 같은 다이어그램을 그리고 리서치를 하고 워크숍을 운영하였다. 다른 말로 설명이 잔뜩 필요하게 된다.
더하여, 내가 하는 일은 공공영역에서 특히 도시나 정책에 관한 기존의 디자인의 영역과는 거리가 있는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도시나 정책에서의 의사 결정 과정이라던가, 조직 구조 내에서 디자인이 관여하는 경우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공공에서의 디자인이 하는 역할은 과정보다는 주로 최종 의사결정을 시민과 소통하는 최종 결과물에 주로 몰려있다. 그렇기에 디자이너로 도시 정책과 관련된 일을 한다고 하면, 아리송하다는 얼굴을 종종 마주하게 된다.
내가 하던 일은 지식기반 산업이며, 특히나 앞단인 혁신과 연구하는 조직에 있는 포지션이다. 이는 전통적인 제조업 산업과는 다른 구조와 속도를 가진다. 지식 기반, 디지털 중심의 서비스 산업은 비교적 새로운 분야로 새로운 단어들도 많은데 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는 사람마다 나라마다 세분화, 구조, 성숙도 등등의 정도가 모두 다르다. 이에 따라서 이 역할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아예 존재하지 않는 단계일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내가 하는 일은 존재하지 않거나 조직 구조와 일을 하는 과정상 필요 없는 경우가 많았다. (참고로 나는 한국에서 영국 회사로 비대면로 출근하였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영국 회사이다.)
내가 이 일을 하기 전에 나는 이 일을 하기 전에 ‘무엇이 되고 싶다’라기보다는’ 무엇을 하고 싶다‘라고 생각을 하고 일을 찾은 경우이다. 내가 하는 일의 조각조각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설명하면서 더듬더듬 내 일이 어떤 분야라고 불리는지 어떤 산업에 주로 몰려있는지를 실무를 하면서 찾았다. 물론 이 일이 내가 쌓아오며 '해온 일'과는 다르지는 않았지만, '이름'이 달랐다. 조각조각 더듬더듬 모아온 나의 울퉁불퉁한 길 옆에 단단하게 일구어 온 세상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하는 것과 비슷한 그 일은 방식, 언어, 구조, 과정 모두 이름이 있었다. 다만, 내가 하던 일은 울퉁불퉁하기에 거칠고 이름이 없어 이미 구축된 일과는 다른 언어를 쓰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마치 나는 갈라파고스에 혼자 동떨어져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찾은, 내가 하는 일과 가장 비슷한 분야는 사실 멀리 있었던 것도 모르는 분야도 아니었다. 다만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는 것과 같이 나는 그 분야를 잘 알기도 못하기도 했었고 ‘내가 하고 싶은 것‘과는 다른 영역에서 주로 활동하는 것을 보았기에 넘겨짚었었다. '무엇을 한다’부터 시작한 나의 일은 무엇을 맞추는지도 모른 채, 일단 무조건 조각을 모으고서 더듬더듬 이리저리 맞춰보고 나서야, 조각을 이리저리 맞춰보고 나서야 내가 찾던 분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원인을 파악하고자서야 내가 하는 일을 개인이 아닌 산업의 시점으로 다시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나의 일은 서비스 산업, 지식 산업에 위치해 있다. 위치를 파악함으로서, 왜 내가 하는 일이 설명하기 어려웠는지 구조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도움이 되었던 것은 이 일을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이 일을 가진 사람 모두가 겪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었다. 업계 사람이 아니라면 비교적 신생 업계인 나의 일은 비교적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더하여 한국에는 특히나 아직 자리잡지 못한 분야이며 한국의 현재 구조상 성장에 더욱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발견하였다. 지도가 있는지부터 어떤 지도를 봐야하는지 알아야 나의 위치를 찾을 수 있던 것처럼, 적어도 나의 지도를 찾은 기분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주에 산업의 관점에서 이 일이 왜 자리 잡기가 어려운지, 왜 설명하기가 어려운지를 이어서 하겠다.
비슷한 경험이 있으신 분, 이 과정을 통해 다음 성장으로 나아가신 경험이 궁금합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코멘트나 인스타그램 DM(https://www.instagram.com/jjjjjujujujuju/)으로 메시지 언제든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