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반의 한국 생활과 그 다음
4년 반. 길면 길고 짧다면 짧다. 4년 반 전에 거주하고 일하는 나라도 바뀌었고 그동안 하는 일도 크게 변하였다. 많은 현재 모습들이 이전에는 구체적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또다시 한번 나라를 바꾸고 4년 반 동안 용기 있게 뛰어든 일을 정리하면서 다음 경로를 만들고 있다. 현재는 상상하기 어려운 많이 부분들이 상상 그 이상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면서 이번 연재를 정리하려고 한다.
1. 4년 반 돌아보기 총 5년
2. 그다음 5개년 계획
1. 4년 반, 총 5년 돌아보기
4년 반전에 한국에 돌아가면서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기 어렵고 불확실성과 참고할 사람이 없음에 불안감에 눈물과 긴장감으로 안절부절못한 매일을 보냈다. 3년만 참으라는 작은할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을 겨우 붙잡으며 후들거리며 나를 쥐어짜 냈다. 분 단위로 짜인 내 일정과 매번 이 도전이었던 일을 보면 아찔하게 느껴지게 하면서도 하고 싶은 일을 잔뜩 하며 가지고 있던 의문들이 풀리고 있다는 생각에 재미도 있었고 뿌듯하기도 했다.
4년 반이라는 시간은 코로나가 포함되어 짧게 느껴지면서도 무시 못할 시간이다. 부모님은 더 나이가 드셨고 30대 초반이던 어느새 나도 후반이 되어가고 있고, 나만의 가족도 생겼다. 길다면 길고 짧으면 짧은 그런 시간이다. 어찌 보면 길었던 십 년, 그 이상의 진로 고민을 한 번 정리되는 기회이지 않나 싶다.
몸이 안 좋아지기도 하고 그만두기 좋은 시기라 다음이 준비되지 않았지만 작년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간 무작정 달린 시간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그만둔 후 나를 설명하기 어렵고 계속되었던 고립감을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그동안 쥐어짰던 나를 보듬기 위해, 이리저리 몸부림쳤다. 홀로 서보기도 하며 나의 정체성과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방향을 더듬거리며 스스로를 시험해보고 있다. 동시에 4년 반 동안의 한국에서 다시 이어졌거나 새로운 인연을 돌아보며 나와 남편의 한국 생활을 돌아보기도 하였다. 참 운이 좋았던 고마운 시간이었다.
이후 영국에 오고, 우리들만의 집으로 이사하고 한국에서 보낸 우리 짐도 도착하였다. 내 휴대폰 번호도, 계좌도 생겼다. 밤낮이 바뀌었던 한국에서의 리듬과는 다른 새로운 생활 리듬도 만들어 가고 있다. 하나둘씩 새로 일할 곳도 새로운 인연도 오래된 인연도 조금씩, 천천히 새로 만들거나 다시 이어가고 있다. 좀 정리가 되었을 때쯤 꽤나 긴 가족 여행을 가게 되면서 일상에 쉼표를 찍을 수 있었다. 이제야 붙잡고 있던 나의 지난 5년을 이제야 소화하고 놓아주고 있다. 이제야 다음 5년을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2. 그다음 5개년 계획
하나가 매듭지어지면 그 다음이 시작된다.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상황도 변화할 수 있다는, 혹은 변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 나이가 되었다. 5년 후에는 내 나이도 4로 시작하게 된다. 부모님도 친구들도 5년 더 나이가 들고, 그만큼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무한한 잠재성 대신, 어떤 길로 결정되어 버린다는 점에서 두려웁다. 그 결정된 모습이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닐까 봐. 하지만, 사회에 막 나왔을 때에 비교하거나 축적된 것이 비교적 적어 어떤 결정이나 판단하기도, 나를 보여주기도 어려웠 때와 달리, 나이만큼 생긴 경험 데이터는 재료가 풍부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설레기도 한다.
이전과 같이 내가 원하는 곳에 어떠한 경로로 도달할지는 미지수이고, 여전히 바라는 것은 추상적이다. 다만, 어디를 바라보고 싶은지를 지침 삼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은 당장 알 수는 없어도 원하는 바람을 적어두면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이루어질 바라면서, 그리고 나중에 돌아보기 위해 적어보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곳에 서서 그곳의 전문가, 정체성을 가지고 애정하는 공간과 디자인을 더 마음껏, 더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스무 살 때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좇던 내가 생각한 공간 다자이너가 되어 있기를 바란다. 새로운 곳에서 좀 더 자신 있는, 당찬 아시안 이민 여성 디자이너가 되기를 바란다. 좀 더 자랑스러운, 마음 놓을 수 있는 딸이 되고 싶다. 더 당찬, 더 여유로운, 더 많이 연결된, 더 풍부한 이야기를 가진, 더 많은 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5년 후에는 되어 있기를. 계속 궁금한 것을 좇을 수 있는 사람이기를, 5년 후 내게 바란다.
구체적으로 바라는 것은 왠지 쑥스러워서 속으로만 되새겨 두었다. 생각나는 것들을 미래의 나에게 적었더니 ‘더, 더, 더’로 가득 차 버렸다.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단어 대신 ’더‘로 밖에 생각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무엇보다도 현재의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습 이상의 무언가가 되어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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